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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7 (토)

[조용헌 살롱] [1425] 죽음과 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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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님의 스타일을 보여주는 부분이 ‘미지생 언지사(未知生 焉知死)’라는 대목이다. 언(焉)은 ‘어찌’라는 뜻이다. ‘내가 사는 것도 잘 모르는데 죽음을 어떻게 알겠느냐’이다. 괜히 쓸데없이 ‘죽고 나면 어디로 가는가’ 하는 문제에 정력 낭비하지 말라는 이야기로 해석된다. 죽음 이후의 세계는 눈으로 볼 수도 없고 검증을 하기도 어려운 분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죽음에 결국 직면하게 된다. 공자가 이렇게 말했다고 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의문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더 나아가면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자각하느냐에 따라 삶의 태도가 달라진다. 임사(臨死) 체험을 해 본 사람들은 삶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는 것이 그 예이다. 태도 변화의 핵심은 죽기 살기로 환장해서 돈 벌고 권력 잡으려고 남들 짓밟는 행동은 안 한다는 점이다. 부질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기 때문이다.

나는 40대 중반에 공황장애로 시달린 적이 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수시로 몰려왔다. 그동안 읽었던 수많은 경전(經典)의 내용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때 도사를 만나는 꿈을 꾸게 되었고, 얼마 있다가 요가 마스터를 만나게 되었다. 이 양반은 7일 동안 혼이 육체를 빠져나가 있는 임사 체험을 해본 인물이었다. 그 태도와 눈빛, 그리고 말투가 달랐다.

“왜 이렇게 죽음이 두렵습니까?” “죽음은 없습니다. 개념에 지나지 않습니다.” “죽음이 눈앞에 있는데 왜 자꾸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죽었다가 다시 옵니다. 이것이 환생(還生)이고 부활(復活)입니다.” “믿어지지 않네요.” “푸루샴(필자의 산스크리트 이름)이 요가를 해서 머리 쪽(頭腦)에 있는 28개의 경락을 열면 마치 필름이 돌아가는 것처럼 스스로의 전생을 볼 수 있습니다. 보통 사람은 28개의 경락이 봉인되어 있어요.”

이 양반은 전생에 티베트 카일라스산 옆의 마나스로바 동굴에서 과일만 먹고 살았던 이야기도 해 주었다. 동굴 생활을 청산하고 중국으로 건너와 생계를 위해 차(茶) 장사를 했다는 전생담도 흥미로웠다. 본인이 30대 중반에 요가 도장을 열었을 때 25~26세 되는 여성이 도장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습이 스틸 사진처럼 찍혔다. 본인이 8세 때 죽은 어머니가 환생하여 처녀의 몸이 되어 아들을 찾아왔던 것이다. 전생의 아들인 줄 모르는 이 여성은 요가 선생이 좋다고 무조건 매달렸다. “전생을 아는 것도 불편할 때가 많습니다. 달래고 달래서 좋은 데로 결혼시켰습니다.”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컨텐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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