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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7 (토)

[이상언의 논설위원이 간다] 보수 진영이 하나회 숙정하고 김오랑에 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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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의 논설위원이 간다] 보수 진영이 하나회 숙정하고 김오랑에 훈장



영화 ‘서울의 봄’ 역사를 보다



중앙일보

이상언 논설위원


“군복 대신 검사의 옷을 입고, 총칼 대신 합법의 탈을 쓰고 휘두르는 검사의 칼춤을 본다. 군부독재만 그러했던 것이 아니라 지금의 검찰 독재도 모습과 형태만 바뀌었을 뿐 언제든지 국민들은 탱크로 밀어버리면 되는 존재로 여기는 ….”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지난달 27일에 한 말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지난 4일 북 콘서트 행사에서 “하나회가 정권을 잡아 ‘대한국군’을 만들었다면 지금은 검찰 전체가 수사권과 기소권으로 ‘대한검국’을 만들고 있다. 현재와 같은 ‘신검부’ 체제는 종식돼야 한다”고 했다. 그는 신군부에 빗댄 신검부라는 조어를 사용했다.



야권 “군부독재 대신 검찰독재”

여당 “전두환 같은 이재명” 응수

김준철 ‘김오랑 추모회’ 사무처장

“민주당 무관심, 유승민이 도움 줘”

민주당의 아전인수 해석은 모독

유튜버 ‘좌파 영화’ 딱지는 오독

중앙일보

영화 ‘서울의 봄’에서 오진호 소령(특전사령관 비서실장)이 반란군 습격에 대비하는 모습. 배우 정해인씨가 연기했다. 이 장면은 반란군에 맞서 싸우다 전사한 김오랑 소령(훗날 중령으로 특진 추서)의 비극이 모티브가 됐다. [사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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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울의 봄’을 이용한 야권의 윤석열 정부 비판이 잇따랐고, 여당은 반격했다. ‘영화 속 전두환을 보면서 계속 이재명이 떠올랐습니다. 권력을 찬탈하기 위해 무력을 동원해 쿠데타를 자행한 전두환과 대권을 위해 온갖 불법과 범죄를 저지른 이재명은 쌍둥이 같습니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이 페이스북에 쓴 글이다. 같은 당 장예찬 최고위원은 “상대를 몇십 년 지난 군사정권과 결부시켜 악마화하는 것은 나쁜 정치다. 입만 열면 ‘탄핵’을 말하는 분들이 이 영화나 계엄 얘기를 꺼낸다. 그분들에게 같은 감독이 만든 영화 ‘아수라’를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문재인 “분노가 현실 바꾸는 힘 되길”

정치권의 ‘서울의 봄’ 언급 릴레이에 문재인 전 대통령도 참여했다. 그는 지난 5일 ‘불의한 반란 세력과 불의한 역사에 대한 분노가 불의한 현실을 바꾸는 힘이 되길 기원한다’고 페이스북에 썼다. 문 전 대통령은 영화에서 특전사 사령관 비서실장 오진호 소령으로 등장한 김오랑 중령(1990년에 중령으로 특진 추서)의 부인 백영옥씨를 만났던 과거사를 소개하기도 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영화 관람 인증샷을 속속 SNS에 올렸다. 단체 관람도 있었다.

이 영화를 통해 널리 알려진, 1979년 12월 13일 새벽 반란군에 맞서 싸우다 숨진 김오랑 중령에 대한 추모 사업을 이끌어 온 사람이 있다. 추모비 건립과 훈장 추서를 위해 20년 동안 노력한 김준철(56) 예비역 특전사 대위다. ‘군부독재를 끝내고 민주화를 주도했다는 민주당 정치인들은 과연 어떤 도움을 줬을까’라는 의문을 품고 지난 6일 그를 만났다. ‘참군인 김오랑 추모사업회’ 사무처장인 김씨는 학군단(ROTC) 28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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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국립서울현충원의 김오랑 중령 묘소를 찾은 시민들. 묘비 옆의 남성은 시민 추모 행사를 기획한 김종훈 오마이뉴스 기자.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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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김오랑 중령 추모 사업에 앞장서게 된 이유는.

A : “1996년에 전역을 하고 회사원 생활을 하면서 군 복무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병사의 가족을 후원하는 일에 참여했다. 그러던 중에 시민단체로부터 김오랑 중령 추모 행사에 초청받았다. 2004년께였다. 참여한 분이 많지 않았고 시민들의 관심도 많지 않았다. 특전사 선배라는 점에서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추모 사업을 도맡게 됐다.”

Q : 지금까지 어떤 일을 했나.

A : “17대 국회 때(2004∼2008년) 김 중령 추모비 건립과 무공훈장 추서를 위해 국회의원들을 만났다. 의원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18대 국회를 상대로도 비슷한 활동을 했다. 그러다가 19대 때 국방위원장인 유승민 의원이 적극적으로 나서며 의원들을 설득해 훈장 추서와 추모비 건립 건의안이 국회에서 의결됐다.”

Q : 유승민 전 의원이 나서게 된 계기는.

A : “김 중령의 삶을 기록하기 위해 내가 자료와 증언을 모아 쓴 책 『역사의 하늘에 뜬 별 김오랑』을 유 의원에게 전하고 추모비 건립과 훈장 추서 필요성을 얘기했다. 유 의원이 12·12 때 수도경비사령부(수경사) 소속 병사여서 군사반란 과정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2013년 국회에서 결의안이 채택돼 훈장이 추서됐는데 무공훈장이 아닌 보국훈장이었다. 훈장 추서에 반대하는 당시 국방부 관계자 및 일부 의원들과의 타협책이었다. 유 의원이 많이 안타까워했다.”

Q : 지난해 12월에 김 중령의 죽음이 순직에서 전사로 바뀌었다. 어떻게 된 것인가.

A : “2021년 말께 김 중령 친족과 함께 국방부에 재심을 요청했다. 12·12 때 육군본부에서 반란군 총격에 숨진 정선엽 병장 가족과도 함께 했다. 재심에서 ‘전사’가 인정됐다. 한남동 국방부 장관 공관에서 우리 군끼리의 총격 때문에 숨진 33헌병대 소속 박윤관 상병(일병에서 상병으로 사후 특진)은 아직 ‘순직’으로 돼 있다. 유족이 직접 요청을 해야 착수되는 재심 절차 때문에 그렇다.”

김준철씨 “민주당 단체 관람 초청 거절”

Q : 민주당이 영화 ‘서울의 봄’을 현재의 여권을 공격하는 소재로 활용하고 있는데, 김오랑 중령이나 정선엽 병장과 관련해 민주당은 어떠한 일을 했나.

A : “17대 국회는 민주당(당시 이름은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집권 시기이기도 했다. 의원들이 12·12와 5·18에 대해 말을 많이 했지만 김 중령 추모 건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최근 민주당 측에서 의원들의 ‘서울의 봄’ 단체 관람 행사에 와 달라는 제안을 받았는데 거절했다.”

Q : 왜 참석을 거부했나.

A : “영화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게 싫었다. 12·12를 단죄한 것은 김영삼 대통령이었고, 1990년에 김오랑 소령이 중령으로 추서될 때 당시 야당 지도자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힘을 썼다. 그 뒤 훈장 수여에 앞장선 것은 보수 진영의 유승민 의원이었다. ‘서울의 봄’은 보수나 진보 어느 한 편을 위한 영화가 결코 아니다.”

Q : 김 중령 추모 사업의 과제는.

A : “2013년에 국회에서 건의안이 결의됐지만 추모비는 아직 건립되지 않았다. 육사나 특전사에 김 중령 동상이 세워지길 바란다. 그리고 군의 교육 자료에 김 중령 스토리가 포함돼야 한다. 반란군에 가담하지 않고 자기 자리를 지킨 군인의 올바른 자세를 후배에게 전해야 한다.”

유승민 “국가가 김오랑 기리는 것 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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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울의 봄’을 함께 관람한 유승민 전 의원과 김준철 ‘참군인 김오랑 추모사업회’ 사무처장. [사진 유승민 전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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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전 의원에게 김 중령 추모 작업에 적극적으로 나선 이유를 물었다. 유 전 의원은 “2012년 가을에 김준철씨가 쓴 김오랑 중령에 대한 책을 받았다. 12·12 때 내가 수경사 33경비단 소속 일병으로 복무했던 데다가 김 중령의 죽음을 알고 있었기에 책에 눈길이 갔다. 이런 군인을 기리는 것은 국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답했다.

그는 “2013년에 국회 국방위원장으로 여야 간사를 한 자리에 불러 ‘무공훈장 추서 및 추모비 건립 촉구 결의안’이 통과되도록 해 달라고 당부했다. 무공훈장 수여에 반대하는 국방부와 군 출신 의원들에게 12·12는 대법원 판결로 군사반란으로 명백하게 정의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래도 반대가 있어 결의안에서 ‘무공’ 두 글자를 빼게 됐고, 이듬해 보국훈장이 추서됐다”고 설명했다. 유 전 의원은 영화 ‘서울의 봄’을 본 뒤 페이스북에 ‘일병으로서 현장에서 겪었던 충격적 기억들이 지금도 가슴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고 썼다.

12·12 군사반란 단죄와 군 사조직 ‘하나회’ 숙정은 김영삼 정부 때 이뤄졌다. 김영삼 전 대통령 회고록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나는 군 개혁이야말로 전광석화처럼 전격적으로 단행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모든 개혁에는 필연적으로 저항이 따르기 마련이며, 특히 군대 내에서 특수한 사조직으로 똘똘 뭉쳐 있는 경우, 언제라도 세력을 규합해 저항해 올 개연성이 높았다. 따라서 그들이 세력을 규합할 시간을 주지 않고 전격적으로 숙정을 단행하는 길만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운동권이 독점할 수 없는 영화

지난달 22일에 개봉한 영화 ‘서울의 봄’은 흥행 중이다. 10일 기준으로 약 650만 명이 봤다. 전두광을 비롯한 군사반란 주동자들과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위정자들을 향한 분노가 객석에 흐른다. 관객은 반란 세력의 무도함과 이에 맞섰던 군인의 용기를 보며 실제 역사를 떠올리기도 한다. 그 역사를 운동권 민주화 인사들이 독점할 수 없다. 이들의 아전인수식 ‘서울의 봄’ 해석은 영화에 대한 모독이다. 보수를 표방하는 유튜버가 이 영화에 ‘좌파’ 딱지를 붙인 것 역시 오독(誤讀)이자 오도(誤導)다. 군사반란 세력을 내란죄로 처벌하고 반란군에 맞선 올바른 군인을 기리는 일에 보수 측 정치인이 앞장섰다는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 있다. 내일이 44년 전 12·12 그 날이다. 유치한 정치 싸움을 멈추고 우리 민주주의가 어디까지 왔는지를 차분하게 생각하는 하루가 되길 바란다.

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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