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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7 (토)

‘킬러 수능’에 지방학력이 저격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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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과 2010년 성적 분석

서울을 제외한 모든 시·도의 수능 성적이 12년 전보다 상위권인 1·2등급 비율은 줄고, 하위권인 8·9등급 비율은 늘어난 것으로 분석됐다. 서울 아닌 지역 학생들의 ‘학력 추락’이 심각하다는 의미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7일 공개한 2023학년도 수능 성적 분석과 2011학년도 성적을 비교한 결과, 서울의 수능 응시생 중 국어에서 1등급 받은 비율은 2011학년도 12.4%에서 작년 12.7%로 0.3%포인트 증가했다. 하위권인 8·9등급 비율도 10.3%에서 9.4%로 0.9%포인트 감소했다. 수능에서 좋은 점수를 받은 학생들은 증가한 반면 공부 못하는 학생은 줄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나머지 15개 시도(세종 제외)는 국어 1·2등급 비율이 전부 감소했다. 제주의 경우 2011학년도 수능 1·2등급 비율은 15%로 전국 1위였다. 하지만 작년엔 7.9%로 절반 가까이 급감했다. 광주도 1·2등급 비율이 13.8%로 제주에 이어 전국 2위였지만 작년에는 7.3%로 뚝 떨어졌다. 강원(13.4->5.6%), 부산(11.2->7.7%), 경기(11.2->8.8%), 경남(9.4->5.3%) 등도 수능 고득점자가 대폭 줄었다. 반면 이 지역들에선 수능 최하위권인 8·9등급이 늘었다. 광주는 5.2%에서 12.2%로 두 배 이상 급증했고 부산(5.3->10.4%)과 충북(6.5->12.6%), 강원(8.4->15.7%) 등도 수능 바닥권이 크게 증가했다.

조선일보

그래픽=김하경


평가원은 2009학년도 수능부터 시도별로 수험생 성적을 분석해 발표하고 있다. 지역별 학생들의 학력을 점검해 맞춤형 교육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 목표다. 현재 홈페이지는 2011학년도 이후 성적 자료만 공개하고 있어 작년과 2011학년도 결과를 비교했다. 시도별 분석은 N수생은 제외하고 고교 재학생만 대상으로 한다. 특성화고(옛 직업계고) 학생들도 뺀다.

지방 학생의 ‘학력 추락’은 국어뿐 아니라 수학도 마찬가지다. 수학 영역에서 1·2등급 비율은 서울의 경우 2011학년도 12.6·12.9%(가·나형)에서 작년 14.9%로 증가했다. 반면 부산(10.5·10.7->8.3%)과 제주(16.6·16.2->6.9%), 전남(7.7·9.3->4.5%), 광주(13.3·14.3%->8.3%) 등 서울을 제외한 시도는 모두 1·2등급 비율이 감소했다. 과거 수학은 문·이과에 따라 가·나형으로 분리해 시험을 치다가 2022학년도부터 통합됐다.

전문가들은 서울과 지역 학생 간 학력 격차가 벌어진 이유로, 수능에서 갈수록 사교육 영향력이 커진 데다 지방 소멸로 인적·경제적 자원이 서울 등으로 계속 빠져나간 것과 관련이 깊다는 분석을 하고 있다.

서울의 경우 강남과 목동 등 학원 인프라가 발달한 곳은 어릴 때부터 수능을 대비한 사교육을 많이 시킬 수 있다. 실력 있는 강사도 많다. 반면 부산·광주 등 지방 대도시만 해도 사교육 인프라 수준을 서울과 비교하기 힘들다는 견해가 많다. 특히 수능 문제가 30년간 출제되면서 갈수록 어려워지고, 사교육 없이는 손도 대기 힘든 ‘킬러 문항’까지 등장했다. 배영찬 한양대 교수는 “지방에서도 인강(인터넷 강의)을 들을 수 있지만, 어릴 때부터 강남 학원 등을 다니며 선행 학습을 하고 현강(현장 강의)을 듣는 서울 수험생의 수능 준비와는 비교가 안 된다”고 했다. 충남 서령고 최진규 교사는 “10여 년 전만 해도 일선 고교에서 수능에 많이 나오는 EBS 교재를 놓고 방과 후에 학생들을 가르쳤다”고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학생 개인에게 맡겨 두는 분위기인데 최상위권 학생들은 알아서 공부하지만 나머지 학생들은 사실상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지역의 우수한 학생들이 일찌감치 서울 등으로 빠져나가는 문제도 심각하다. 부산의 한 고교 교사는 “부산에는 대학 진학 실적이 뛰어난 고등학교가 드물어 중학교 3학년 때 최상위권 학생들은 아예 서울로 이사를 가거나 전국 단위 자사고에 지원해서 다른 지역으로 떠나버린다”면서 “10년 전과 비교할 때 이런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우수 학생과 젊은 층이 빠져나가면서 지방 소멸은 가속화하고 다시 인재 유출과 경제 축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다.

과거 지방은 학원 인프라 열세 등을 극복하려고 일선 학교가 나서 방과 후 수업 등으로 수능 공부를 시키곤 했다. 그런데 2010년 진보 성향 교육감들이 대거 들어서면서 이런 분위기가 변했다고 한다. 진보 성향 교육감들은 야간 자율 학습을 없애고 ‘학생 부담’을 이유로 대규모 학력 평가도 거부했다. 광주가 대표적이다. 초·중·고교 때 학력 평가를 소홀히 한 것이 고교 때 수능 등급 추락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2010학년도부터 대입에서 수시 전형이 크게 확대한 것도 수능 등급 추락과 관련 있다는 분석이다. 지방에선 아예 수능 준비는 안 하고 수시 전형에 ‘올인(다걸기)’하는 학교와 학생이 늘었다는 것이다. 강원교육청 박세민 대변인은 “강원도는 춘천·원주·강릉 등을 제외하곤 학원뿐 아니라 스터디 카페도 없는 상황”이라며 “수능으로는 대학에 가기 힘드니까 학교 내신으로 진학하는 수시를 준비하는 학생이 많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수능 최저 학력 기준을 못 맞추는 학생들도 늘었다고 한다.

경제·사회 인프라가 서울에 집중할수록 지방은 쪼그라들고 학력 저하도 생기는 것이란 지적도 많다. 서울대 김경범 교수는 “서울과 지방의 부모 경제력 차이, 사교육 영향 등으로 지방 학생들 학력이 계속 추락하는 것”이라며 “최소 중학교 단계부터는 학생 기초 학력을 책임질 수 있도록 학교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방 학력 추락이 뚜렷해지자 최근 들어선 교육감들은 학력 올리기에 나서고 있다. 부산은 학교에서 방과 후 공부를 하는 학교에는 간식비를 지원하고 학교를 스터디카페로 바꿔줬다. 고3 학생들을 모은 뒤 우수한 공교육 선생님들이 주말에 가르치기도 한다. 강원도도 ‘강원도형 수능 문제’를 개발해 학생들에게 풀게 하고, 군 지역 학교에 스터디 카페도 만들었다.

교육부도 지방 소멸을 막는 데 ‘교육’의 역할이 크다고 보고 지방 교육 살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부모들이 선호하는 일반고를 많이 만들고, 지방자치단체와 교육청이 협력해 원하는 학교를 짓는 ‘교육 발전 특구’를 지정할 예정이다.

[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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