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5 (월)

이슈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보고 누락·대책없이 ‘퇴근’… 숨진 뒤엔 보안유지·자료삭제 급급 ['서해 공무원 피살' 최종 감사 결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감사원 “文정부, 은폐·조작” 결론

안보실, 李씨 표류 38시간 뒤에야 인지

통일부에도 안알리고 서훈 등 조기퇴근

해경·통일부·합참·국방부 등 모두 뒷짐

공무원들 기강해이 속 살릴기회 사라져

사망 알고도 ‘생존’ 허위 발표·수색작업

근거 불분명한데 “자진월북” 발표도

감사원 “수사내용 왜곡·짜깁기” 지적

7일 감사원이 공개한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 감사 결과는 문재인정부의 부실한 위기관리능력은 물론 북한군에 의해 해상에서 발생한 초유의 공무원 피살 사건을 의도적으로 감추기 위해 대국민 발표 내용을 조작하고 군 기밀정보를 삭제한 부도덕성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는 평가다.

사건 초기 자리를 지켰어야 할 공무원은 퇴근했고 시시각각 이뤄졌어야 할 보고는 곳곳에서 누락됐다. 관계 공무원들의 기강 해이 속 피격 공무원인 고 이대준씨를 살릴 기회는 사라졌다. 과정은 정부의 조직적인 사실 조작의 연속이었다. 결과는 돌이킬 수 없는 이씨 사망과 늦어진 진상규명이다.

세계일보

감사원이 2020년 9월 발생한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의 최종 감사 결과를 7일 발표했다. 사진은 피살된 공무원이 탔던 어업지도선 무궁화 10호에서 지난해 9월 진행된 추모 노제. 연합뉴스


◆보고누락에 ‘조기퇴근’

이 사건 발단은 2020년 9월21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날 오전 1시58분 어업지도선에 타고 있던 이씨는 소연평도 남방 2.2㎞ 지점에서 실종됐다. 그는 22일 실종지점에서 27㎞ 떨어진 곳에서 북한군에 최초 발견된 뒤 38㎞ 떨어진 곳까지 표류했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합동참모본부로부터 이 소식을 접한 때는 같은 날 오후 5시18분이다. 이미 이씨가 약 38시간 동안 바다를 표류하고 있어 조속한 구조가 절실했다.

그런데 안보실은 이 사실을 통일부에 전파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위기상황의 심각성과 대응방향을 검토하는 ‘최초 상황평가회의’도 열지 않았다. 안보실 내 국가위기관리센터장은 북한이 이씨를 구조하면 상황이 종결될 것으로 보고 그날 오후 7시30분 퇴근했다. 서훈 당시 안보실장은 이에 앞서 퇴근한 것으로 조사됐다.

세계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해경은 오후 6시 안보실로부터 관련 내용을 공유 받고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손 놓고 있었다. ‘보안 유지’가 이유였다.

통일부 A국장은 청와대가 이씨 발견 소식을 접한 지 약 40분 뒤에야 국가정보원으로부터 관련 내용을 접했다. 그러고도 장·차관에게 보고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씨 구조 및 생존 여부에 대한 파악 없이 오후 10시15분에 퇴근했다. 그는 당시 납북자 관련 대북정책 총괄부서장이었다. 이씨 발견 사실을 가장 먼저 파악했던 합참과 국방부 역시 ‘통일부 사안’이라며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씨 숨지자 바빠진 文정부

이씨는 그날 오후 9시40분까지만 해도 살아있었다. A국장이 퇴근하기 불과 35분 전이었다. 이후 북한군이 이씨를 해상에서 사살하고 시신을 소각했다. 이씨가 해상에서 파도와 사투를 벌이고 있을 무렵 사실상 무대책으로 일관하던 문정부는 이씨가 숨진 뒤부턴 분주히 돌아갔다. 주안점은 보안 유지와 관련 자료 삭제에 찍혔다.

23일 오전 1시 국방부는 관계장관회의에서 안보실로부터 보안 유지 지침을 하달받은 직후 합참에 비밀자료 삭제를 지시했다. 합참은 오전 3시30분 실무 직원을 출근시켜 밈스(MIMS·군사정보체계)에 탑재된 군 첩보보고서 60건을 삭제했다. 보존 기간이 ‘영구’로 지정된 기밀자료들이었다. 군사작전이나 다름없었다. 이후 생산된 비밀자료 123건은 밈스에 탑재도 하기 전에 삭제됐다.

세계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국방부는 오전 10시에 다시 열린 관계장관회의에서 안보실의 추가 지시를 받고는 오후 1시30분 마치 이씨가 여전히 실종(생존) 상태인 것처럼 언론에 거짓으로 발표했다. 오후 4시35분엔 이씨가 생존해 있을 땐 보내지 않던 대북 전통문을 발송했다. 동시에 이씨가 여전히 살아있는 것처럼 위장하기 위한 해상 수색작업은 지속했다.

문정부 청와대 안보실이 다음으로 한 일은 이씨의 ‘자진 월북’ 보고서를 만들라는 지시였다. 합참은 군 첩보상으로도 이씨의 자진 월북 근거가 불분명한데도 안보실의 지시를 따랐다. 국정원은 이와 반대되는 분석을 하고도 관계장관회의에서 보고하지 않았다. 이후 안보실과 국방부는 해경 수사 진행 중에 합참으로 하여금 이씨의 자진 월북을 언론에 발표하도록 했다. 국방부도 국회에 이씨의 자진 월북으로 판단된다고 보고했다. 이후 해경 역시 같은 취지의 수사결과를 내놨다.

감사원은 “해경은 수사내용을 왜곡하고 수사로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월북 동기로 작성해 발표했다”고 했다. 이어 “일부 전문가(2명) 답변을 임의로 짜깁기해 ‘정신적 공황상태에서 현실 도피의 목적으로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발표했다”고 지적했다.

배민영·김병관 기자 goodpoint@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