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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7 (토)

[특파원 리포트] 개도국 눈높이 못 맞춘 K엑스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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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윤석열 대통령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부산엑스포 유치 실패 관련 대국민 담화를 위해 단상으로 올라서고 있다./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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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에 결과만 놓고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쉽다. 2030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를 놓고 나오는 비난들이 대체로 그렇다. 직접 보고 들은 것 대신 외신 몇 줄과 데이터 몇 개, 그리고 추론에 기반해 가시 돋친 말들이 날아든다. 유치전 현장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별로 개의치 않는 듯하다. 결국 구구절절 옳은 듯싶다가 어쩔 수 없는 현실과의 괴리를 드러낸다.

국민총생산(GDP)이 사우디의 1.4배에 이르는 한국이 ‘오일 머니’를 핑계 삼는다는 비판도 그중 하나다. 사우디는 왕과 왕실이 석유 수입을 독점해 막대한 비자금과 비선 조직을 굴리는 나라다. 반면 한국은 국민이 감시하는 예산과 조직을 제한된 규모로 운영하는 ‘민주국가’다. 경제 규모와 무관하게 두 나라가 동원 가능한 ‘수단과 방법’엔 압도적 격차가 있다. 양국이 파리에서 벌인 각종 유치 행사만 살펴봐도 그 호화로움과 ‘답례품’의 수준에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오일 머니는 핑계가 아닌 현실이었다.

차라리 돈으로 붙었더라면 참패는 면했을지도 모르겠다. 파리의 외교 현장에선 “한국의 득표 전략이 지나치게 이상적”이라는 쓴소리가 있었다. 우리 유치위원회는 사우디가 현금을 내세워 개도국 공략에 나서자 “물고기 대신 ‘물고기 잡는 법’을 주는 전략으로 차별화하겠다”고 했다. 1회성 지원보다 지속가능한 성장의 계기를 만들어 주겠다며 한국과의 산업 연계, 대기업을 통한 투자 등 중장기적 경제 협력을 내세웠다.

백번 맞는 말이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한 아프리카 외교관은 “내 임기 후에나 받을 ‘혜택’을 원하는 관료나 정치인은 드물다”며 “국가판 ‘자기개발서’를 내민 한국보다, 우리 눈높이를 맞춘 사우디가 더 반가웠다”고 했다. 한국이 ‘선진국이 됐다’는 오만에 빠져 개도국들을 너무 ‘내려다봤다’는 말로 들렸다.

현장에는 다른 비판도 있다. 일부 유치위 인사는 의전 업무를 양산하고, 기업에 갑질을 하는가 하면, 냉정해야 할 판세 분석을 주관적 판단으로 덧칠했다. 동료들이 고군분투하는 동안 여성 교민들과 술자리를 벌이고 가라오케까지 간 공무원, 유치 활동보다 와인에 더 관심을 보인 민간 위원이 있었단 말도 나왔다. 무엇보다 “전문가보다 ‘낙하산’의 입김이 더 셌다”는 지적이 뼈아프다.

하지만 지난 1년 6개월간 우리 외교관과 기업 관계자가 치른 희생은 인정해줘야 한다. 180여 국과의 교섭을 위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한 것도 모자라 주말마저 반납했고, 예정된 결혼식을 미룬 이도 있었다. 장관, 대사, 기업 총수 등은 물론 현지 말단 직원까지 혼신의 힘을 다했다. 덕분에 한국의 국제적 네트워크가 크게 넓어진 것이 사실이다. 잘한 것과 못한 것을 가린 ‘백서’라도 만들어 다음번 유치전의 매뉴얼로 삼았으면 한다.

[파리=정철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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