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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4 (월)

"서울의봄, 전두환에 맞선 군인들…잇따른 의문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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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본인 좌천 인사 정보 듣고 쿠데타 결심

정승화 참모총장, 내란방조미수죄로 10년형 선고.. 불명예 전역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 사실상 강제 전역.. 아들 의문사

김오랑 소령, 사살돼 시신 암매장.. 아내는 충격으로 실명, 의문사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2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민동기 (평론가)



1979년 12월 12일. 12.12 쿠데타를 주제로 한 영화죠. 서울의 봄이 개봉 12일 만에 관객 400만을 돌파했습니다. 정확히는 오늘 0시를 기준으로 해서 465만 명이 됐던데요. 정말 오랜만에 극장가의 매진 행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영화의 결말, 12.12 군사반란을 다룬 영화이기 때문에 영화의 결말은 한국 사람 누구나 다 압니다. 전두환, 노태우 두 군인이 주축이 돼서 군사반란 일으켰고 정권 잡았다. 이건 다 아는 얘기지만 사실 그날의 시시각각 자세한 상황까지는 아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죠. 게다가 더 알 수 없는 건 그날 이후 등장인물들은 과연 어떻게 됐을까. 쿠데타의 주역들이야 우리가 알다시피 대통령 됐고 국회의원 됐고 장관 됐고 정부 요직 다 차지했습니다만 그들을 막으려 했던 진압군은 어떻게 됐는가. 이게 궁금한 거죠. 오늘 화제 인터뷰에서 12.12 그후를 짚어보겠습니다. 시사평론가 민동기 씨 어서 오세요.

◆ 민동기> 안녕하십니까?

◇ 김현정> 400만 돌파 속도 굉장히 빠르네요.

◆ 민동기> 이게 올해 개봉한 영화 가운데 두 번째로 빠른 흥행 속도입니다. 그래서 1000만 돌파할 것이다. 이런 관측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는 그런 상황입니다.

◇ 김현정> 그렇죠. 저도 가서 보는데 자리가 꽉 차 있더라고요. 강승희 씨는 심야에 봤는데, 일요일 심야인데도 꽉 차 있었다고 그러더라고요.

◆ 민동기> 그러니까 좀 나이 많으신 분들이 단체로 보시는 분들도 많더라고요.

◇ 김현정> 그래요. 이 영화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저격되고 난 다음부터 12월 12일까지를 그린 거죠?

◆ 민동기> 그러니까 이게 정확하게 말씀을 드리면 군사 쿠데타가 12월 12일 발생을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13일 새벽까지 이 쿠데타를 일으킨 이른바 신군부하고, 이걸 막으려는 정부 진압군 사이에 9시간 사투를 그린 그런 영화입니다.

◇ 김현정> 그렇죠. 시작은 10월 26일이고 중심 내용은 12월 12일의 9시간입니다. 아주 디테일하게 그날의 상황들이 전개가 되는데 영화는 실제보다 훨씬 각색이 많이 돼 있어요. 감독도 등장인물의 이름을 전부 가명으로 바꾼 이유가 마음껏 작가적인 상상력을 좀 넣고 싶었다,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영화를 스포할 생각은 없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12.12의 역사, 실제를 좀 다뤄보죠. 우리도 영화처럼 10월 26일부터 시작해 보면 어때요? 민 기자님.

◆ 민동기> 10월 26일에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이 되지 않습니까? 당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과 차지철 경호실장 등을 암살을 하게 되는데 사실 이것도 논란이 많긴 하거든요. 그런데 이건 일단 논외로 하고요.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된 이후에 당시 계엄사령관을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이 맡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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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정상호(이성민) 참모총장과 정승화 육군참모총장(계엄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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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정>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이 계엄사령관이 되고요.

◆ 민동기> 왜냐하면 전국에 계엄령이 확대가 되기 때문에 육군 참모총장이 계엄사령관을 맡게 되고 또 대통령이 암살이 됐으니까 이걸 수사를 해야 되잖아요. 그게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인데 이걸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맡게 됩니다. 당시 권력 관계를 좀 파악을 해볼 필요가 있어요. 그래야 영화를 보는 데도 좀 쉽게 이해가 되거든요. 그러니까 계엄사령관이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이었고 그 대통령의 권한을 위임받은 그런 자리입니다. 사법권과 행정권을 행사하는 그런 자리이기 때문에 굉장히 막중한 자리거든요.

◇ 김현정> 그렇죠.

◆ 민동기> 그런데 대통령을 제외하고 당시 문고리 권력 서열 순위가 대충 보면 대통령 비서실장, 경호실장, 중앙정보부장, 보안사령관입니다. 그런데 보시면 대통령 암살됐죠. 차지철 경호실장도 암살됐습니다. 그리고 김재규 중앙정보부장하고 당시 김계원 비서실장은 대통령 시해 관련 혐의로 체포가 되거든요.

◇ 김현정> 잡혀갔죠.

◆ 민동기> 그러면 당시 정승화 계엄사령관 다음에 사실상의 권력 서열 2위는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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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정> 보안사령관.

◆ 민동기> 그래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그렇게 급부상할 수밖에 없었던 그런 상황이었고요. 더 큰 문제는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합동수사본부장을 맡고 있었잖아요. 그런데 합동수사본부장이 보안, 헌병, 검찰, 경찰, 중앙정보부 모든 정보수사기관은 업무를 조정 감독을 했습니다. 모든 정보가 다 모이는 그런 자리였기 때문에.

◇ 김현정> 경찰 역할도 하고, 안기부장 역할도 하고 모든 역할을 다 하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 민동기> 맞습니다. 그래서 월권 논란도 있었고요. 심지어 각 부처 장 차관이 전두환에게 보고를 하고 결재를 받는다 이런 소문까지 돌았을 정도였습니다.

◇ 김현정> 그렇죠. 그래서 계엄사령관, 정승화 총장 입장에서도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좀 경계를 해야겠어, 견제해야겠어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한 거예요.

◆ 민동기> 당시 하나회의 존재는 군 수뇌부도 알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견제를 해야 된다라는 그런 문제의식은 있었던 것 같고 그래서 당시 정승화 계엄사령관이 일부 하나회 인사들에 대한 좌천성 인사를 단행을 하게 됩니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여기에 불만을 품게 되는 건데요. 그래서 좌천성 인사를 단행을 하면서 정승화 계엄사령관이 수도경비사령부에는 장태완 소장을 임명을 하고요. 그리고 공수단의 상부조직인 특전단 사령관은 정병주 소장을 임명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최소한 수도 서울을 막는 것은 하나회로 앉히면 안 되겠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좀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차에 민감한 정보 하나가 전두환 귀에 들어가게 되거든요.

◇ 김현정> 어떤 정보였습니까?

◆ 민동기> 정승화 계엄사령관이 당시 노재현 국방장관과 골프를 쳤는데 이때 전두환을 동해안 경비사령관으로 좌천시키자 이거를 건의를 했다는 거고 이게 당시 하나회, 이제 하나회가 점조직이었거든요. 그러니까 이 얘기를 하나회가 들으면서 이게 전두환에게 보고가 된 겁니다. 그래서 전두환이 여기에 불만을 품고 바로 일으킨 게 12.12 군사 쿠데타입니다. 처음부터 정권 찬탈을 목적으로 쿠데타를 일으킨 건 아니었습니다.

◇ 김현정> 그렇죠. 이날의 이 상황들을 그린 영화고 물론 각색이 들어갔다고 제가 말씀드렸습니다만 장태완 역할을 한 것이 정우성 씨 그리고 극중에서는 전두광이라고 이렇게, 전두환의 역할을 한 것이 황정민 씨 이렇게 지금 견주어 보면 될 것 같아요. 실화를 바탕으로 한 거니까 그 등장인물들이 그 후에 어떻게 됐는가를 오늘 좀 알고 싶은데 여러분 아시다시피 반란군은 다 잘 됐어요. 다 잘 됐습니다. 권력을 잡았습니다. 대통령도 되고 장관도 되고 국회의원 몇 번씩 하고 안기부장도 되고 궁금한 건 그들을 막다가 쓰러져간 그 진압군, 이들이 어떻게 되는 겁니다.

◆ 민동기> 일단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이 있지 않습니까? 당시 계엄사령관. 쿠데타 다음 날 해임됐고요. 서빙고 조사실로 끌려가서 고문까지 당했습니다. 그리고 내란 방조 미수죄로 10년형을 선고받았고 거의 불명예 전역을 했습니다. 73세로 사망을 했고요. 그리고 가장 관심을 가질 만한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 정우성 역할. 보안사 특수수사대 조사를 받았는데 수사관이 불러주는 대로 전역 지원서를 쓴 다음에야 풀려날 수 있었는데 풀려난 뒤에도 가택 연금 당했거든요. 그 풀려난 뒤 두 달 만에 또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가장 좀 안타까운 부분이 아들이 하나 있었거든요. 성호. 장성호라는 그런 이름이었는데 81년 서울대학교 자연대에 수석 입학을 하게 되는데 82년 1월에 경북 외관의 낙동강 근처에서 변사체로 발견이 됩니다.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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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이태신(정우성) 소장과 장태완 수도방위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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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정> 그냥 변사체로 발견됐어요? 대학생 아들이.

◆ 민동기> 그렇습니다. 사인은 지금까지 끝내 밝혀지지 않았고요.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 같은 경우에는 79살로 세상을 떠났는데 원래는 쿠데타에 대한 책을 집필을 하고 있었거든요. 이거를 마치지 못하고 이렇게 세상을 떠나게 됐습니다. 그리고 정병주 특전사령관. 정만식 씨가 행한 그런 역인데 반란 이후에 강제 예편을 당했거든요. 그런데 88년 10월에 행방불명이 되고 실종 139일 만에 경기 의정부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이 됐습니다. 그런데 당시 장태완 사령관이 자살을 택할 인물도 정황도 아니다라고 하면서 의문을 제기를 했고요. 묘비의 비명을 유족들이 안 새겼다라고 해요. 왜냐하면 고인의 명예가 회복이 되고 사인을 정확하게 밝힌 뒤에야 비명을 새기겠다, 이런 입장을 밝히고 있는 그런 상황입니다.

◇ 김현정> 뭔 이렇게 의문사가 많습니까? 이 특전사령관을 끝까지 지키는 부하 한 명이 있었잖아요. 영화 속에서 정해인 씨가 그 역할을 했는데 김오랑 소령. 그 반란군이 쿠데타 반란군이 이 특전사로 막 몰려옵니다. 몰려올 때 부하들은 다 나가게 해요. 다 나가라. 나가서 목숨 건져라. 하지만 난 여길 지키겠다면서 특전사령관이 방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때 이 정해인 씨가 역할을 한 김오랑 소령이 저는 사령관 옆에 있겠습니다 하면서 끝까지 그 곁을 지키다가 결국 숨지잖아요.

◆ 민동기> 실제로 반란군에 저항했던 당시 유일한 장교였습니다. 김오랑 소령 당시 35살이었는데요. 교전 중 사살이 됐습니다. 그런데 김오랑 소령의 시신이 특전사령부 뒷산에 암매장됐고요. 당시 가족들에게 사망 사실도 알리지 않았다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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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오진호(정해인) 소령과 특전사 김오랑 중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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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정> 가족들에게 사망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고요?

◆ 민동기> 네, 나중에 알렸습니다.

◇ 김현정> 이때 35살이었죠.

◆ 민동기> 맞습니다. 동료 장교들이 지속적으로 항의를 해서요. 결국에는 국립서울현충원 묘역에 이장이 되긴 했습니다만 사실 이 김오랑 소령의 죽음 소식을 듣고 부모님도 얼마 안 가서 사망을 했고요. 부인인 백영옥 씨가 있거든요. 충격으로 시신경이 마비돼서 실명이 됐습니다. 그런데 이후에 백영옥 씨가 봉사활동을 하면서 구명 운동을 펼치게 되는데 90년 12월 신군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진행을 했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소송을 포기해요.

◇ 김현정> 왜요?

◆ 민동기> 이 이유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91년 6월 백영옥 씨가 봉사활동을 하던 건물 아래 주차장에서 숨진 채 발견이 됩니다. 당시 경찰은 실족사로 결론을 내렸는데 유족들은 의문사 가능성을 계속 제기를 하고 있고요. 그리고 이 백영옥 씨의 시신은 무연고 납골당에 안치가 됩니다. 사인은 아직까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라고 보는 게 맞습니다.

◇ 김현정> 참, 이게 그러니까 우리가 역사를 배울 때 특히 근대사, 현대사, 근현대사 배울 때는 뭔가 뭉뚱그려서 배우기 때문에 12.12가 벌어졌다. 성공한 쿠데타다. 그래서 이들이 정권을 잡았다. 이 정도만 알고 있지 진압군과 반란군의 치열했던 그날, 또 어떻게 해서 이 쿠데타가 이루어지게 됐는가, 이런 걸 잘 몰라요.

◆ 민동기> 그리고 사실 이게 장교들만 죽은 게 많이 알려졌는데 당시 반란군과의 교전에서 일반 사병 있지 않습니까? 사병도 숨졌습니다. 국방부 헌병대 소속이던 정선엽 병장 같은 경우에는 불과 전역을 3개월 앞두고 있었는데 육군본부 지하 벙커에서 반란군의 공격에 희생이 됐고요. 그리고 박윤관 일병 같은 경우에도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이 공관에서 연행이 됐었는데 이때 반란군과 교전해서 사망을 하게 됩니다.

◇ 김현정> 그런데 사실은 그 당시에 전두환 씨는 소장 계급에 불과했는데 그렇게 더 높은 사람도 많았고 그런데 왜 쿠데타를 못 막은 겁니까? 결론은 어떻게 지금 역사는 보고 있어요?

◆ 민동기> 정승화 계엄사령관이 하나회를 견제하기 위해서 수도경비사령관하고요. 특전사령관을 바꾸긴 했거든요. 그런데 문제는 이 사령관 같은 경우에는 부대를 직접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 밑에 사단장, 이런 사람들이 움직이거든요. 그런데 사령관은 비하나회 출신으로 바꾸긴 했습니다만 부대를 직접 움직이는 이른바 지휘관, 대령급, 중령급 이런 사람들은 다 하나회가 장악을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사실상 그때 특전사령관을 비롯해서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도 직속 부하에 의해서 다 체포가 되거든요. 이게 어쩌면 비극이었던 것 같습니다.

◇ 김현정> 결국은 중심은 하나회였다.

◆ 민동기> 하나회가 있었기 때문에 쿠데타가 가능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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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정> 전두환 한 사람의 힘이었다기보다는 하나회가 있었고 그걸 밀고 나가는 뭐라고 해야 돼요? 잔인함, 무대포, 이런 것들.

◆ 민동기> 역설적이게도 하나회를 키운 건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습니다.

◇ 김현정> 그렇습니다. 이 반란군들 중에 안 된 사람은 없어요? 아까 사진 좀 보여주십시오. 쿠데타를 일으켰던 그 주역들은 다 잘 됐어요?

◆ 민동기> 다 잘됐습니다. 특히 노재현 당시 국방장관 같은 경우에는 굉장히 군 수뇌부였잖아요. 우왕좌왕했는데도 불구하고 나중에 공기업 사장도 하고 다 잘 지냈습니다. 그리고 딸 같은 경우에는 재벌가하고도 결혼을 했고요. 굉장히 오랫동안 잘 살았습니다. 그리고 육군 참모총장 같은 경우가 체포가 되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 당시에 책임을 가진 게 두 사람이었어요. 국방장관하고 육군 참모차장이거든요. 실제로 육군 참모차장이 윤석민이라는 사람이었는데 나중에 불법 체포를 당하긴 합니다만 굉장히 또 승승장구하게 됩니다. 결국에는 공기업 이사장까지 지내고요. 줄줄이 좋게 되는 거죠.

◇ 김현정> 한 5분 정도 시간 되세요. 그러면 본방송 후에 유튜브로 반란군, 진압군, 그들의 그 이후 조금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민동기>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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