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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7 (토)

군홧발 아래 세계를 뒀지만, 사랑만은 정복못한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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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영화 '나폴레옹' 한 장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호아킨 피닉스)와 조제핀(바네사 커비)의 애증이 영화의 중심을 이룬다. 소니 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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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병부대 대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흔들리는 눈빛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여기는 프랑스 남동부 해안가 툴롱의 요새 앞, 적군이 점령한 포대를 설치한 이곳 진지를 재탈환하면 승기를 잡을 수 있다.

공격을 앞둔 몇 초 전 어둠의 시간. 그러나 지휘관의 안광은 불타오르지 않는다. 시선은 흔들리고 깊은 한숨이 검은 적막 속 진영을 울린다. 총지휘관은 공포에 질려 떨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전투 결과는 나폴레옹의 압승으로 끝난다. 일개 대위였던 사내는 준장으로 진급한다.

인류사 1000년간 가장 찬란했던 정복자, 프랑스의 시저, 말 위에 올라 세계를 바라봤던 황제, 그러나 세상을 자신의 군홧발 아래서 짓이기고도 사랑하던 여인의 정신만은 정복하지 못했던 가련한 남자. 나폴레옹 내면의 인간적 갈등을 밀도 높게 묘사한 영화 '나폴레옹'이 다음달 6일 개봉한다. '조커'의 호아킨 피닉스가 열연한, 연말 최고 기대작 중 하나다.

나폴레옹의 지략과 야심은 경이로웠다. 불행했던 시민들이 혁명을 했지만, 혁명은 시민을 다시 불행하게 만들었고, 그사이 나폴레옹은 혁명기의 혼란을 이용해 진급 기회를 노린다.

'툴롱 전투'도 야심 찬 승부수였다. 승리 후 총애를 받은 나폴레옹은 한 사교 파티에 참석했다가 운명의 여성을 만난다. 두 자녀의 엄마이자 젊은 미망인 조제핀이었다. 조제핀은 혁명기의 감옥에서 살아남고자 죽임을 당하지 않을 방법으로 임신을 택했던 여성으로, 나폴레옹은 그런 조제핀의 매력과 미모에 홀려 사랑 속에 결혼식을 올린다.

그러나 조제핀은 늘 희미한 안개 너머에 있었다. 그녀에게 지고지순한 순애보 따윈 없었고, 곁에 정부(情夫)를 두고 욕망에 충실했다. 잘못된 만남은 발각되고, 온 세상 사람이 정복자 나폴레옹의 개인사를 알게 된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심리적으로 조종당하며 조제핀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

"당신 없이는 나는 아무것도 아닌 짐승이야." 나폴레옹이 겪은 모성애의 결핍이 조제핀과 동일시된다.

영화는 시작과 동시에 프랑스혁명의 광장 한복판으로 관객을 데려간다. 빵껍질과 양배추 세례를 받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자동 참수 기계인 기요틴(단두대)에서 목이 댕강 잘리는 장면부터 압도적이다. 파리 시내로 몰려온 '폭도'들을 산탄이 든 대포로 학살하는 방데미에르 학살 장면도 생생하다. 웅장한 전투마다 스크린에서 피냄새가 풍긴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신작이라는 점만으로도 영화는 값지다. '글래디에이터' '마션' '에일리언'을 연출한 명장이 연출한다는 소식으로 잔뜩 부풀어오른 관객의 기대에 값하기 때문이다. 피닉스는 정신적으로 혼곤한 표정을 내내 짓는데, 영화 '조커'에서 절정의 연기를 보여준 그대로다.

스콧 감독은 '에일리언'의 리플리, '글래디에이터'의 막시무스, '마션'의 마크 트와니에 이어 '평범한 서민 출신이지만 자력으로 영웅으로 거듭나고, 그러나 내면엔 천 갈래의 갈등을 겪는 중인 영웅'을 또 한 번 창조해냈다.

자력으로 대위에서 황제에까지 오르는 한 남자를 자신의 두 무릎 사이에 복속시킨 조제핀 역으로는 버네사 커비가 열연했다. 커비는 올여름 개봉한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파트1'의 화이트 위도 역에 이어 또 한 번 관객과 만난다. 불륜 사실을 알아채고 폭풍처럼 분노한 나폴레옹을 하룻밤도 채 지나지 않아 다시 자신 밑에 두는 눈빛은 매료당하기에 알맞다.

영화는 상영시간 158분 만에 파란만장했던 나폴레옹의 역사를 압축한다. 그러나 관객들이 이미 해당 인물의 실제 삶을 알고 있기에 발생하기 마련인 다소간의 지루함을 완벽하게 극복하진 못한 느낌이다.

나폴레옹의 정복욕보다는 조제핀과의 애증관계가 서사의 중심을 이루는 점 역시 미리 알고 관객석에 앉아야 한다.

사람 욕망은 늘 두 개의 방향으로 뻗기 마련이다. 하나는 광장으로의 욕망이고, 또 하나는 밀실로의 욕망이다. 광장 지배의 야욕이 전쟁과 찬탈의 역사를 낳았다.

그러나 아무리 명성이 뛰어난 정복자라 해도 밀실에서의 사랑까지 완벽하게 충족한 인간은 없다. 광장의 욕망도 밀실의 욕망도 그래서 빗나가고 어긋나 실패하기 마련이다. 영화 '나폴레옹'은 바로 그 두 개의 욕망 사이에 놓인 인간의 태생적인 서글픔을 속삭이는 듯하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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