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민 기자 |
전 세계적으로 가장 가파른 한국의 저출산ㆍ고령화 추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2050년대 들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다만 청년 고용률 제고, 집값 하향 안정화 등 정책적인 노력을 통해 합계출산율을 약 0.2명만큼 끌어올릴 경우 잠재성장률은 2040년대 평균 0.1%포인트 높아질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은 3일 ‘경제전망보고서’ 중장기 심층연구를 통해 한국이 저출산ㆍ고령화에 정책적으로 대응하지 않을 경우 2050년대 0% 이하 성장세일 확률이 68%, 2070년 인구 수가 4000만명 이하일 확률이 90%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2021년 기준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81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38개국 중 가장 낮다. 217개 국가ㆍ지역 중에서도 홍콩(0.77명)을 제외하면 세계 꼴찌인데다 인구 1000만명 이상 국가 중 유일하게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21년째 초저출산(1.3명 미만)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출산율 하락 속도도 매우 가파르다. 한국의 1960∼2021년 합계출산율 감소율(86.4%ㆍ5.95→0.81명)은 217개 국가ㆍ지역 중 1위다.
이같은 저출산의 주된 원인은 청년들이 느끼는 높은 ‘경쟁 압력’과 고용ㆍ주거ㆍ양육 불안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한은이 전국 25~39세 미혼ㆍ무자녀 기혼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경쟁 압력이 높은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희망 자녀 수가 0.14명(16.1%)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0.78명인 점을 고려하면 유의미한 수치라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또 주거ㆍ교육ㆍ의료비 관련 각 질문을 먼저 던져 비용 부담을 연상시킨 그룹은 전체 미혼자 평균보다 결혼 의향이 낮고 희망 자녀 수도 적었다. 고용 상태별로는 비정규직(36.6%)이 비취업자(38.4%)보다도 결혼할 생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경민 기자 |
한은은 OECD 35개국(2000∼2021년) 패널 모형 분석을 바탕으로 고용ㆍ주거ㆍ양육 등 출산 여건을 개선하면 출산율을 0.845명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고 제언했다. 먼저 청년층(15~39세) 고용률(58%)과 가족 관련 정부지출(국내총생산 대비 1.4%)을 OECD 평균(66.6%, 2.2%)수준으로 높일 경우 각각 출산율을 0.119명, 0.055명 높이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육아휴직 실이용기간(법정 육아휴직기간 X 실제 이용률ㆍ10.3주)을 OECD 34개국 평균(61.4주) 수준으로 높이면 출산율이 0.096명 높아진다. 현재 한국의 법정 육아휴직 기간은 52주로 OECD 평균(65.4주)에 근접하지만 실제 사용률은 19.8%로 평균(88.4%)에 훨씬 못 미치는 최하위권이다. 또한 실질주택가격지수(104)를 2015년 수준(100)으로 낮춘다면 출산율을 0.002명 상승시킬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인구 집중을 완화하고 혼외 출산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건 중장기적인 정책 과제로 꼽힌다. 한국의 도시인구집중도(인구밀도 530.4×도시인구비중 81.4%=431.9)는 OECD 평균(122.6×77.7%=95.3)보다 훨씬 높다. 혼외출산비중은 2.3%로 OECD 평균(43%)에 비해 크게 낮았다. 둘 다 OECD 평균수준이 될 경우 출산율을 각각 0.414명, 0.159명 높이는 요소다. 한은은 “부모 및 정상가정(법률혼) 중심의 지원체계에서 ‘아이 중심의 지원 체계’로 전환하는 한편 다양한 가정 형태에 대한 제도적 수용성을 높여가야 한다”며 “정부가 최근 혼인 여부와 관계없이 2년 이내 임신ㆍ출산한 사실을 증명하면 특공 자격을 부여하는 이른바 ‘신생아 특공’을 발표했는데, 이것이 아이를 중심으로 한 지원제도의 좋은 사례”라고 짚었다. 하지만 이 두 가지는 사회ㆍ문화적 요인이라 단기간에 달성하기 어렵다는 게 한계로 지적된다.
박경민 기자 |
황인도 한은 경제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은 “이번 분석 기간에 포함되진 않았지만 코로나19 이후 고용과 주거 여건이 과거보다 악화했다. 청년층 비정규직 비중이 늘면서 고용의 질이 안 좋아졌고, 주택 가격도 코로나 이후 급등했다”며 “청년의 어려움을 덜기 위한 ’정책적 지원‘과 노동시장 등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구조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서 저출산ㆍ고령화에 따른 성장잠재력 약화 문제를 완화해 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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