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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7 (토)

"가짜 美 운전면허증 팝니다"…명문 국제학교생 39명 우르르[베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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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서울 강남경찰서 경제팀 이상윤 경감

[편집자주]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13만건(2021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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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경찰서 경제팀 이상윤 경감(오른쪽·38)과 우종수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본부장(왼쪽)./사진=이상윤 경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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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중순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클럽. 10대 청소년 2명이 클럽에 출입하려다 직원에게 붙잡혔다. 가짜 신분증이 들통났기 때문이다. 이들이 사용한 가짜 신분증은 미국에서 발급하는 운전면허증이었다.

서울 강남경찰서 경제팀에서 근무하는 이상윤 경감(38)은 관할 파출소로부터 해당 사건을 넘겨받았다. 학생을 인계받아 이야기를 들어보니 국제학교에 다니는 학생들 사이 위조 신분증 구매가 손쉽게 이뤄졌다. 위조 수법 또한 굉장히 전문적이었다.

이 경감은 이 사건을 그냥 넘기지 않았다. 발각된 2명의 학생을 시작으로 위조된 미국 운전면허증을 산 적이 있거나 해당 내용에 대해 알고 있는 학생들을 조사해 위조범의 정체를 추적했다.

한 달 동안 수사를 거듭한 끝에 위조범을 찾아냈다. 위조범 역시 국제학교에 다니는 학생으로 자신의 집에서 위조 신분증을 제작했다. 포토샵으로 미국 운전면허증을 제작해 카드 출력기로 찍어낸 뒤 허위 홀로그램까지 입혔다.

미국은 주마다 운전면허증의 디자인과 요구하는 정보가 다르다. 위조범은 뉴욕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캘리포니아주 3곳의 운전면허증을 위조했다. 구매자들은 온라인으로 이름, 나이, 생일 등을 허위로 입력해 위조범에게 보냈다. 위조 신분증은 하나당 15만~20만원 수준에서 팔렸다.

지난 5월 시작된 수사는 5개월간 이어졌다. 구매자들이 위조범에게 제출했던 정보 등을 역추적해 구매자 39명의 신원을 특정했다. 이들은 모두 만 16세~18세로 국내 8개 국제학교 재학생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위조범의 집을 압수수색해 위조 신분증 제작에 사용된 기계와 카드 수백 장 등을 모두 압수했다.

이들은 대학 입학 전 술을 마시거나 클럽 등에 출입할 목적으로 위조된 운전면허증을 사고팔았다. 위조범 역시 자신이 술을 구매하거나 클럽에 들어가기 위해 만들다가 위조 면허증을 판매하는데까지 이르게 됐다. 위조범과 구매자 총 40명은 지난 10월30일 사문서위조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추후 수사를 통해 피의자 수는 더 늘어날 수 있다.

이 경감은 피의자들이 미성년자라는 점을 감안해 수사를 하면서도 처벌보다는 선도를 염두에 뒀다. 수사를 받으러 오는 학생들에게도 성인으로서 져야 할 책임에 대해 수시로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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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경찰서 경제팀 소속 이상윤 경감(38)이 지난 9월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서 신임수사관을 대상으로 특별 강연을 하고 있다./사진=이상윤 경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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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2010년에 순경으로 입직한 뒤 2차례 특진했다. 수사를 할 수 있는 자격증인 수사 경과를 2013년에 딴 뒤 광역수사대 형사를 거쳐 2016년부터 경제팀에서 근무 중이다. 사건을 어떻게 수사하느냐에 따라 유·무죄가 갈릴 수 있는 지능·경제 수사에 특히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이 경감은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때 경찰로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 여성이 결별을 통보받은 뒤 동거하는 남성이 잠이 든 동안 자해를 하고 칼부림을 당했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이 사건은 재판까지 넘어가 남성은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판결이 나기 전까지 남성은 약 8개월간 수감생활을 해야 했다.

해당 남성은 출소 후 이 경감을 찾아와 여성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했다. 이 경감은 진실을 바로 잡기 위해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수사 기록과 재판 기록을 다시 검토했다. 줄곧 혐의를 부인하던 여성은 "헤어지자면 그냥 헤어지면 되지 그렇게까지 해야 했었냐"는 이 경감의 질문에 결국 무고를 실토했고 지난 4월 무고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남성은 이 경감에게 "새로운 삶을 살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했다.

이 경감은 "능력 있는 여러 선배들이 수사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고 배우면서 짧은 시간에 좋은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며 "인성과 수사 능력을 갈고 닦아 후배들과 시민들에게 더 좋은 수사관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최지은 기자 choiji@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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