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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6 (월)

“날 잡아잡숴”…인간이 깐 죽음의 길에서 미생물은 춤을 췄다[전문가의 세계 - 김응빈의 미생물 ‘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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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전쟁과 미생물

발진티푸스·참호열…1차 세계대전 때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병원균
지금도 계속되는 어리석은 쌍방폭력은 ‘비극의 문’을 활짝 연다

미생물은 악마 같은 존재·박멸의 대상으로 여겨져왔지만
질병을 일으키는 건 극소수일 뿐, 대다수는 인간 삶의 자양분이다
반감보다 공감의 자세로 반려자이자 조력자를 바라보자

경향신문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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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교과서에 기록된바, 19세기 후반 식민지 확보 경쟁에 열을 올리던 유럽 열강은 각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합종연횡했다. 1882년 독일은 프랑스를 고립시키고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그리고 이탈리아와 3국 동맹을 맺었다. 이에 맞서 프랑스와 영국은 1907년 러시아를 끌어들여 3국 협상을 체결하면서 독일의 팽창을 견제했다. 이런 와중에 발칸반도에서는 오스만 제국의 쇠퇴로 여러 민족이 독립하자 러시아는 범슬라브주의를,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범게르만주의를 내세워 세력을 확대하면서 위기감이 고조되었다.

발칸반도에서 대립과 충돌이 심해지는 가운데, 1914년 6월28일 보스니아를 방문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 부부가 세르비아 청년에게 암살당하는 이른바 ‘사라예보 사건’이 터졌다. 이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에 전쟁을 선포하자 러시아는 세르비아 편을 들었고, 독일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지지했다. 이러한 제국주의 국가 간 대립은 결국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인류 대참사로 번지고 말았다.

예기치 못한 복병

세르비아가 최후통첩을 거부하자 오스트리아·헝가리 정부는 1914년 7월28일 오전 11시 정식으로 선전포고를 하고, 오후 1시에 포문을 열었다. 황태자 부부가 참변을 당하고 정확히 한 달 만에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세르비아의 도시를 향한 집중 포격으로 국가 기반시설이 파괴되고 사람들은 거리로 내몰렸다. 세르비아에 거주하는 오스트리아인 가운데 적어도 2만명이 포로로 잡혔다. 군의관을 비롯하여 의료진이 군에 차출된 탓에 민간 의료 체계는 붕괴 수준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 영양실조와 과밀, 비위생적인 환경은 감염병에 신작로를 열어주었다.

발진티푸스에 걸리면 잠복기(1~2주) 이후 두통과 오한, 발열에 근육통 따위가 나타나며 감기와 비슷한 증세를 보인다. 며칠 더 지나면 작고 붉은 발진이 상체에서 시작해 전신으로 퍼지는데, 대부분 2주 정도 앓고 나면 열이 내리고 상태가 빠르게 좋아진다. 그러나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면 맥박 증가, 혈압 저하 등 순환기 장애가 나타나 망상과 혼수에 빠지거나 심지어 심장 기능 장애로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1914년 11월, 난민과 포로들 가운데 ‘발진티푸스’가 처음 발병했고, 그 후 군인들 사이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전쟁 발발 1년 만에 발진티푸스는 15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 가운데 약 5만명은 세르비아에 감금된 포로였다. 심지어 세르비아의 의사들조차도 세 명에 한 명꼴로 비운을 피하지 못할 정도로 발진티푸스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맹렬히 위세를 떨쳤다.

러시아 전선 상황은 더 심각했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이전에 발진티푸스가 러시아에 이미 잠복해 있었던 까닭이다. 전쟁 전 1만명당 1.3명이던 발진티푸스 사망률이 1915년에는 1만명당 23.3명으로 치솟았다. 군대의 이동과 피란민 행렬을 따라 발진티푸스는 빠르게 퍼져나갔다. 1917년, 현대 역사상 가장 큰 발진티푸스 유행이 전쟁과 기근으로 이미 황폐해진 러시아를 휩쓸었다. 1921년까지 지속한 대유행 기간에 러시아인 약 2000만명이 병에 걸렸고, 이 가운데 무려 300만명가량이나 숨졌다.

복병의 정체

발진티푸스를 일으키는 병원균은 1916년에 색출되었다. 브라질 출신 내과 의사 겸 병리학자 리마(Henrique da Rocha Lima)는 이 세균을 처음으로 발견하고, 자신과 함께 연구하다 유명을 달리한 동료 프로와제크(Stanislaus von Prowazek)와 역시 발진티푸스 연구 중 사망한 미국 미생물학자 리케츠(Howard Ricketts)를 기리고자 ‘리케차 프로와제키(Rickettsia prowazekii)’라는 공식 이름(학명)을 붙였다.

발진티푸스는 매개 곤충을 통해 퍼져나간다. ‘이 잡듯’이라는 관용구에 등장하는 이가 문제의 주인공이다. 사람에 기생하는 이에는 머릿니와 몸니, 사면발니 이렇게 세 종류가 있다. 각각 머리카락과 음모에 사는 머릿니와 사면발니와는 다르게 몸니는 인체에 상주하지 않고 피를 빨 때만 잠시 머문다. 바로 이때 발진티푸스를 옮긴다. 발진티푸스균에 감염된 몸니는 흡혈하면서 배설도 하는데, 몸니 분변에 발진티푸스균이 들어 있다. 물린 부위가 가려워 긁으면 상처가 나기 일쑤인데, 이를 통해 발진티푸스균이 침입해 감염을 일으킨다.

발진티푸스균은 마른 변에서도 며칠 동안 살 수 있어 전염성이 상당히 높다. 따라서 발진티푸스를 예방하는 최선책은 이 박멸이다. 1919년에 발표된 한 그림 속 문구 “죽음과 악수하는 발진티푸스 이. 이와 죽음은 친구이자 동지다. 감염된 이를 박멸하라!”가 이런 사실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실제로 선제공격으로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오스트리아 동맹군은 개전 초기 세르비아 진격 대신 자기 진영에서 발진티푸스 징후를 보이는 사람을 격리하고 병영 방역에 온 힘을 다했다. 우선 발진티푸스를 옮기는 이를 없애기 위해 개인위생 기준을 강화하고 병사들의 군장을 소독 가스로 처리했다.

트렌치코트와 또 다른 복병

서부 전선에서는 독일이 빠르게 진격하다 파리 외곽에서 벌어진 ‘마른 전투(Battle of the Marne)’에서 프랑스에 패배하고, 교착 상태에 빠졌다. 이후 양측은 ‘참호(trench)’를 구축하고 장기간 대치하며 공방을 이어갔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기약 없는 참호 생활 그 자체만으로 장병들은 지치고 병들어갔다. 좁은 흙 도랑 안에서 온갖 악천후에 노출되는 상황에서 정상적인 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나마 신형 군복 ‘트렌치코트(trench coat)’가 보급되어 참호 속 군인들이 추위를 견디는 데 도움을 주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오늘날 봄가을 멋쟁이 패션으로 자리 잡은 외투의 유래는 이렇게 생존을 위한 것이었다.

잦은 비로 물이 흥건한 참호 안에서 오랫동안 정적으로 지내다 보니 젖은 발에 혈액 순환 장애가 겹쳐 동상과 비슷한 증세가 나타났다. 소위 ‘참호족(trench foot)’이라는 감염병이다. 참호족은 짓무른 상처를 통해 특정 병원균이 아니라 여러 잡균 감염으로 생기는 궤양이다. 제때 치료받지 못하면 발이 썩어서 절단 수술을 받아야 했고 심하면 목숨을 잃었다.

이상하게도 서부 전선에서는 발진티푸스가 발생하지 않았다. 몸니는 만연해 있었지만, 발진티푸스균에 감염된 몸니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감염병이 없었다는 말은 아니다. 발진티푸스와 비슷하면서 증세가 약한 감염병이 새롭게 확인되었고, 이를 ‘참호열(trench fever)’이라고 불렀다. 역시 몸니를 매개체로 삼는 세균 ‘바토넬라 퀸타나(Bartonella quintana)’가 참호 속 군인들을 공격했다.

미생물에 대한 오해

서양판 <손자병법>으로 일컬어지는 <전쟁론>에서 저자 클라우제비츠(Karl von Clausewitz)는 전쟁이란 자신의 의지를 실현하려고 적에게 굴복을 강요하는 폭력 행동이라 정의했다. 여기서 의지 실현과 굴복에 대한 강요는 각각 전쟁의 목적과 목표고, 폭력 행동은 전쟁의 수단이다. 위에서 살펴본 대로 전쟁에서 자행되는 쌍방폭력 과정에서 미생물은 언제나 어부지리를 얻는다.

인간이 전쟁을 벌이면 미생물은 신이 난다. 새로운 서식지 개척, 즉 감염 기회가 많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부상으로 생긴 상처와 제대로 먹지 못하고 스트레스로 저하된 면역 기능은 성을 에워싼 적군에게 성문을 열어주는 격이다. 쉽게 말해, 온갖 미생물에게 ‘날 잡아 잡숴’ 하고 기다리는 일과 같다. 그런데 이런 비극이 지금도 반복되고 있는 참혹한 현실에 안타까움을 넘어 인간으로서 자괴감을 느낀다.

현대 미생물학이 태동할 무렵 터진 제1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의사와 미생물학자들은 이런 엄혹한 현실을 일찍이 직시했다. 그들에게 미생물은 동식물처럼 인간과 함께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목숨을 호시탐탐 노리는 악마 같은 존재였고 박멸의 대상이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미생물학은 미생물과의 전쟁을 통해 발전해온 학문이다. 이 전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고, 안타깝지만 인류가 존재하는 한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보통 사람들이 미생물은 병을 일으켜 건강을 위협하고 음식을 썩게 해 생활에 불편을 주는 해롭고 더러운 생물이라고 여기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건 하나만 알고 훨씬 더 큰 두 번째를 몰라서 생기는 걱정스러운 오해다. 질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은 훨씬 소수고, 대다수 미생물은 우리 인간은 물론이고 지구에 사는 모든 생물이 삶을 이어가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매일 엄청나게 배출하는 생활 쓰레기(음식물 찌꺼기, 분뇨, 생활하수 등)만 생각해봐도 미생물의 중요성을 쉽게 알 수 있다. 만약 미생물이 활동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 이상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없고 머지않아 우리가 버린 쓰레기 더미에 묻혀버리고 말 것이다.

과거의 역사와 현재의 경험을 통해 깨닫고 있듯이, 우리가 무언가를 하면 그에 따라 미생물도 변화하고, 그러면 다시 우리가 영향을 받게 된다. 분명한 사실은 미생물이 지구상에서 사라진다면 인간의 삶도 끝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삶의 반려자이자 조력자인 미생물과 함께 조화 속에 살아가야 한다. ‘반감’보다는 ‘공감’의 자세로 미생물을 바라보자. 솔직히 말해, 정작 서로에게도 이렇게 못하는 많은 인류에게 공허한 메아리라도 울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경향신문

1919년 러시아에서 제작된 포스터에 “죽음과 악수하는 발진티푸스 이. 이와 죽음은 친구이자 동지다. 감염된 이를 박멸하라!”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출처 |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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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빈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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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부터 연세대학교에서 미생물을 연구하며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연세대 입학처장과 생명시스템대학장 등을 역임했고, 지은 책으로 <생물학의 쓸모> <미생물과의 마이크로 인터뷰> <술, 질병, 전쟁: 미생물이 만든 역사> <온통 미생물 세상입니다> <생명과학, 바이오테크로 날개 달다> <미생물에게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운다> <나는 미생물과 산다> 등이 있다. 또한 유튜브 채널 <김응빈의 응생물학>과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파트너 채널 <김응빈의 생물 수다>를 운영 중이다. 유튜브 채널 링크: https://www.youtube.com/@kimyesbio/featured. 네이버 채널 링크: https://contents.premium.naver.com/biotalkkim/knowledge


김응빈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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