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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9 (토)

이슈 로봇이 온다

콧대 높던 한국 안방 점령한 中 로봇청소기…‘혼수 필수품’ 된 로보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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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전 시장은 그간 ‘외산 가전 브랜드’의 무덤이었다. 글로벌 가전 업체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안방을 굳건히 지켰기 때문. 외산 브랜드는 삼성과 LG에 밀려 존재감조차 드러내기 어려웠다. 일부 중국 업체들이 매출을 내며 생존했지만, 그마저도 ‘가성비’를 앞세운 중·저가 제품에 한정됐다. 그런데 최근 달라진 양상이 감지된다. 가성비가 아닌 ‘프리미엄’을 앞세운 중국 업체가 국내 가전 시장을 점령하고 있다. 새로운 백색 가전이자, ‘혼수 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로봇청소기 시장 얘기다.

로봇청소기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시장 규모에서도 드러난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GfK에 따르면 한국 로봇청소기 시장은 지난해 3000억원 규모로 전년 대비 41% 커졌다. 이를 이끄는 건 국내 가전 업체가 아닌 중국 업체 ‘로보락(Roborock)’이다. 로보락은 지난해 한국 시장에서 매출 1000억원을 기록했다. 수치만 놓고 보면 국내 로봇청소기 시장의 3분의 1을 차지했다는 분석이다. 올인원 로봇청소기 분야로 범위를 좁히면 점유율은 44.5%에 달한다. 올인원 로봇청소기는 흡입용인 ‘건식’과 물걸레용 ‘습식’을 하나로 합친 형태다.

매경이코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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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원 넘는데 ‘품귀’ 현상

韓 사로잡은 로보락, 매력 뭐길래

로보락은 중국 대표 가전 업체 샤오미 생태계에 속한 기업이다. 샤오미와 연구개발, 상품 기획, 제조 등 다양한 부분에서 협력한다는 의미다. 로보락은 2014년 설립 직후 샤오미 투자를 받기도 했다. 한국 시장에 제품을 선보인 것은 2019년 S6 모델이 처음이다. 이후 2020년 한국 법인을 만들고 본격 존재감 알리기에 나섰다. 반응은 엄청났다. 소비자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더니 약 2~3년 만에 한국 시장 매출 1000억원 고지를 찍었다.

다른 중국 업체들처럼 ‘가격’이 경쟁력일까. 정반대에 가깝다. 로보락은 ‘프리미엄’을 앞세웠다. 제품 평균 가격이 100만원을 훌쩍 넘는다. 통상 20만~30만원 수준인 로봇청소기 대비 상당히 비싼 편. 그런데도 없어서 못 파는 수준이라는 게 가전업계 전언이다. 조금만 할인해도 ‘수요’가 폭발하는 현상이 감지된다. 11번가의 할인 행사 ‘그랜드 십일절(11월 1~6일 기준)’ 누적 거래액 1위도 로보락 신형 로봇청소기 ‘S8 프로 울트라(S8 Pro Ultra)’가 차지했다. 판매 가격은 약 139만원. 11번가에 따르면 행사 첫날에만 87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경쟁사 제품보다 5배 이상 차이 나는 판매량이라는 게 11번가 관계자 설명이다.

한국 소비자들의 ‘중국 제품에 대한 반감’과 ‘비싼 가격’ 장애물을 허물고 로보락이 로봇청소기 시장을 점령한 매력은 뭘까. 소비자들은 로보락 제품이 제공하는 ‘압도적 기능’이 경쟁력이라고 입을 모은다.

로보락 제품은 먼지 흡입부터 물걸레 청소까지 바닥 청소의 모든 것을 알아서 하는 올인원 로봇청소기다. 또 로봇청소기업계 최초로 ‘오토 리프팅’ 기능도 탑재됐다. 기존 로봇청소기는 물걸레 청소 시 바닥에 카펫이나 러그가 깔린 경우 사용자가 이를 모두 치우고 청소해야 했다. 하지만 로보락 제품에는 LDS(Laser Distance Sensor)와 카펫 재질을 스스로 인식하는 카펫 감지 센서가 탑재됐다. 카펫 구간을 만나면 물걸레 거치대를 오토 리프팅으로 들어올린다. 카펫이 오염되거나 젖는 것을 예방할 수 있는 것. S7 맥스V 울트라와 S8 플러스 제품 등은 ‘먼지통 자동 비움’ 기능도 갖추고 있다. 청소를 끝내고 충전 단자로 돌아가면 ‘윙~’ 소리를 내면서 모은 먼지를 더스트백에 담는 방식이다.

국내 가전업계, 바짝 긴장

중국 1위 업체 ‘에코백스’도 진출

로보락이 인기를 끌자 중국 로봇청소기 시장점유율 1위 업체 ‘에코백스’도 한국 진출에 나섰다. 에코백스는 지난해 한국지사를 설립하고 ‘프리미엄’ 영역을 겨냥한 제품을 내놓고 있다. 지난 6월에는 물걸레 온수 세척이 가능한 올인원 로봇청소기 ‘디봇 T20 옴니’를 내놨다. 정철교 에코백스 한국지사 대표는 지난 6월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지사 설립 약 1년 만에 한국 시장 매출액이 5배 정도 성장했다”며 “경쟁이 치열한데 앞으로도 지속 성장해 한국 시장을 선도하는 로봇 가전 기업이 되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실제 가전업계에 따르면 에코백스의 한국 로봇청소기 시장점유율은 로보락, 삼성전자에 이어 3위로 알려졌다.

프리미엄을 앞세운 중국 업체들이 한국 가전 시장을 ‘정공법’으로 파고드는 분위기에 가전업계는 바짝 긴장한 눈치다. 프리미엄 제품으로 대응에 나선 곳도 있다. 삼성전자 비스포크 제트봇 AI 로봇청소기가 대표적이다. 먼지통 자동 비움 기능과 청소기에 탑재된 카메라로 집에 혼자 남은 반려동물을 실시간으로 살펴볼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또 디자인 브랜드 드롭드롭드롭과 협업해 저시력자를 위한 로봇청소기를 내놓는 등 차별화에 힘쓰고 있다. 삼성전자는 향후 자사 생성형 AI ‘삼성 가우스’를 로봇청소기 등에 적용할 계획이다.

에브리봇과 유진로봇 등 중소 업체들은 ‘가성비’를 앞세워 다시 한 번 바람몰이를 한다는 전략이다. 에브리봇 Q3는 30만원대, 올인원 청소기인 Q5는 70만원대에 판매 중이다. 동시에 프리미엄 제품 출시에도 열을 올린다. 에브리봇은 최근 문턱을 넘나들 수 있는 물청소용 로봇청소기(스리 스핀 프로)를 공개했다. 제품에 탑재된 라이다 센서가 문턱을 인식하고, 제품 상단 회전판을 스스로 들어 올리는 방식이다. 기존 제품 대비 높은 가격대가 예상된다. 가전업계 관계자는 “가전 시장에서 ‘가성비’는 중국 업체들의 타이틀이었는데, 로봇청소기 부문은 중국 업체와 국내 업체 자리가 뒤바뀐 꼴”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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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오미 생태계 기업 중 하나인 로보락이 국내 로봇청소기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로보락 제공)


판매·AS 대행하는 ‘팅크웨어’

실적 고공행진 날개 달았다

로보락 인기에 때아닌 수혜를 본 국내 기업도 있다. 블랙박스 ‘아이나비’ 제작사로 알려진 팅크웨어다. 팅크웨어는 2010년대 중반부터 샤오미와 협업해 수익원을 다각화했다. 스마트폰과 공기청정기, 스마트워치 등 샤오미 대부분의 가전제품 판매·판매 후 관리(AS)를 담당했다. 자연스레 샤오미 관계사인 로보락 제품 판매와 AS도 팅크웨어가 맡게 됐다. 2022년부터 로보락 제품 국내 독점 총판을 담당 중이다.

로보락이 큰 인기를 끌면서 팅크웨어 실적도 고공행진 중이다. 2022년 연간 매출은 3367억원. 전년(2253억원) 대비 1000억원 이상 늘었다. 핵심은 역시 로보락이다. 로보락 판매 매출은 팅크웨어 ‘생활가전’ 부문 매출로 집계되는데, 2022년 생활가전 매출은 1116억원으로 전년(471억원) 대비 136.9% 증가했다. 올해는 더 개선돼 9개월 만에 생활가전 부문에서 134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미 지난해 연간 생활가전 매출을 뛰어넘은 수치다.

증권가에서도 긍정적 평가가 쏟아진다. 김학준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로봇청소기의 국내 독점 유통에 따른 성장성 확대와 제품 라인업의 다양화, 하이엔드 제품 출시로 지속적인 실적 성장이 전망된다”고 설명했다. 독립리서치 법인 밸류파인더의 이충헌 애널리스트는 ‘로보락을 사용하면 집안에 평화가 찾아온다고 합니다’ 리포트를 내고 “팅크웨어는 로보락 국내 총판을 맡고 있다”며 “로봇청소기 판매 호조로 올해 매출 3915억원, 영업이익 324억원의 사상 최대 실적을 전망한다”고 강조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36호 (2023.11.29~2023.12.0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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