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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4 (수)

이슈 강제징용 피해자와 소송

대법원 “‘징용 노동자상 모델은 일본인’ 표현, 명예훼손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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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상 모델은 일본인” 주장에

제작 조각가 부부 명예훼손 손해배상 소송

대법 “의견 표명으로 사실 적시 명예훼손으로 볼 수 없어”

헤럴드경제

2021년 서울 용산역 앞 광장에 있는 곡괭이 부분이 훼손된 강제징용 노동자상[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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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강제징용 노동자상을 두고 ‘모델이 일본인’이라고 주장한 발언은 제작자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은 해당 발언이 예술작품인 조각상에 대한 의견 표명으로 봤다. 특히 예술작품의 경우 비평을 명예훼손으로 보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어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조각가 부부 김운성·김서경 씨가 시의회 의원 A씨를 상대로 낸 명예훼손 손해배상 소송에서 지난해 12월 원고 일부 승소한 원심을 깨고 의정부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시민단체 활동가 B씨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 대해서는 상고를 기각했다.

김씨 부부는 2016년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의뢰를 받아 일본 교토 단바 지역에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설치했다. 이후 2019년까지 서울, 부산, 대전 등지에 노동자상이 세워졌다. 이를 두고 A씨와 B씨 등은 해당 노동자상이 일제강점기에 찍힌 일본 노동자의 사진을 모델로 제작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씨 부부는 자료 조사와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탄생한 작품으로 일본인을 모델로 한 사실이 없다며 허위사실로 인한 명예훼손으로 A씨와 B씨에게 각각 3000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다.

사건의 쟁점은 해당 발언이 단순 의견 표명인지 허위 사실을 적시한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었다. 명예훼손이 되기 위해서는 사실을 적시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판단이 재판부마다 달랐다.

먼저 시의원 A씨와의 소송을 심리한 1심 재판부는 “피고(A씨)의 게시글은 사실의 적시”라면서도 “시청 앞 공원 광장에 설치된 공공의 조형물로, 일본인 노동자를 모델로 제작됐는지 여부는 건립 찬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공공의 이익에 관한 행위로서 위법성이 없다”고 했다. 발언 자체는 사실을 적시한 것이지만, 해당 발언이 공적인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의미다.

반면 2심 재판부는 김 씨 부부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허름한 옷차림은 강제징용 착취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진 속) 일본인을 모델로 한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허위 사실 적시”라며 “피고는 단정적 표현을 사용해 게시글을 작성했다. 조각상 설치 주체를 알 수 있었음에도 그들에게 사실을 확인하려고 하지 않았다”며 200만원의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B씨와의 소송에서도 1심과 2심 판단이 갈렸다. 1심 재판부는 B씨가 김 씨 부부에게 500만원의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B씨 주장의) 근거는 추측 뿐으로 야윈 체형, 상의 탈의 및 짧은 하의 옷차림 외에는 별다른 유사점을 찾아볼 수 없다”며 “단정적인 표현이나 발언의 전체적인 인상을 볼 때 허위 사실 적시에 해당한다”고 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B씨의 발언이 ‘의견 표명’에 불과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단정적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정만으로 구체적 사실 적시로 볼 수 없다”며 “피고(A씨)로서는 조각상이 사진 속 일본인의 모습을 참고했다고 믿을 만한 이유가 있었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대법원은 “해당 발언들은 의견 표명이나 구체적인 정황 제시가 있는 의혹의 제기로 명예훼손의 불법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 노동자상이 실제로 누구를 모델로 하였는지 결과물만 보는 제3자는 알 수가 없다”고 했다. 해당 발언은 공공 조형물에 대한 의견 내지 의혹 제기 수준에 그쳤다는 의미다.

대법원은 “노동자상과 유사하다고 지목된 일본인들 사진은 조선인이 아니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교체·삭제됐다. 발언이 사실에 기초한 것이 아니어도 피고(A,B씨)들이 발언 내용이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여지가 있었다”고 했다.

이어 대법원은 “예술작품이 어떠한 형상을 추구하고, 어떻게 보이는지는 공개되는 순간 감상자의 주관적 평가 영역에 놓인다”며 “비평 자체로 모욕적이고 경멸적인 인신공격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구체적인 사실의 적시로서 명예훼손 성립 요건을 충족한다고 평가하는 것에 신중해야 한다”고도 했다.

park.jiye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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