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자승 스님.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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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세수 69세로 입적한 자승 스님은 조계종 총무원장을 2009년부터 2017년까지 8년간 연임해 종단 내 최고 실세로 여겨졌다.
스님은 입적 직전까지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며 포교 의지를 밝혔기에 조계종 내부는 큰 충격을 받은 분위기다. 이틀 전인 27일 불교계 언론사와 만나 “대학생 전법에 10년간 모든 열정을 쏟아부을 생각”이라고 밝힐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며 포교 의지를 밝혔다. 지난달엔 조계조 총무원 보직자와 중앙종회 의원 등을 모아 종단 운영에 관한 의사를 피력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1954년 강원도 춘천 출생한 자승 스님은 1972년 해인사에서 지관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74년 범어사에서 석암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제30대 조계종 총무원장 정대 스님 밑에서 제자로서 불법을 배웠다.
동화사, 봉암사 선원 등에서 안거 수행하고 수원 포교당, 삼막사, 연주암 주지 등을 역임해으며 1986년부터는 총무원 교무국장으로 종단 일을 시작했다.
자승 스님은 서의현 스님 총무원장 시절 조계종과 관련한 다양한 지식을 섭렵하며 종단 내에서 영향력을 확대해갔다. 총무원 재무부장, 총무부장을 지냈으며 조계종 중앙종회의원을 4선이나 하면서 인지도를 넓혔다. 2006년 14대 전반기 중앙종회의장을 지내기도 했다.
자승 스님은 탁월한 정치력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는다. 2009년 55세에 역대 최고 지지율을 기록하며 조계종 33대 총무원장으로 선출되며 최고의 지위에 올랐다. 2013년에는 재선돼 총 8년간 총무원장을 지냈다.
퇴임 후에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며 종단 내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동국대 건학위원회 총재, 봉은사 회주, ‘상원결사’ 회주와 조계종 입법기관인 불교광장 총재, 은정재단 이사장 등 다양한 직책을 맡았다.
조계종 전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2017년 12월 2일 백담사 무문관에서 동안거에 들고 있다. 문간 앞에 작은 마당이 있는 3평 남짓한 방은 밖에서 문이 잠긴다 . 박경은 기자 |
때문에 자승 스님은 대표적 사판승(행정 담당 스님)으로 ‘종단 내 최고 실력자’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자승 스님의 영향력이 “종정 위에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종정은 조계종 대종사로 종단 내 최고 어른을 일컫는다.
지난해에는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에 자승 스님이 개입한다고 서울 강남 봉은사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던 조계종 노조 박정규 기획홍보보장이 승려들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하는 사건도 있었다.
자승 스님은 지난 봄 40여 일에 걸쳐 인도 부처님 성지 1167㎞를 도보로 순례했다. 지난 3월 조계사 회향법회에서 “성불(成佛)보다 부처님 법(法)을 전합시다”며 전국 교구본사별로 대학생 등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전법 캠페인을 벌였다.
종단 내 실세였던 자승 스님의 갑작스러운 입적으로 조계종 내부는 혼란스러운 분위기다. 동국대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건학위원회, 봉은사 회주, 상월결사 회주, 은정재단 등이 리더십 공백에 처했다.
2016년 12월 14일 서울 견지동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린 송광사 오불도 환수 공개 행사에서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과 관계자들이 조선불화 ‘송광사 오불도’ 를 살펴보고 있다. 정지윤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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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30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김동연 당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환담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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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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