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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2 (토)

[단독]한국은 그를 두번 버렸다…덴마크 입양인 법정서 운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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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1974년 덴마크로 입양된 한분영씨는 태권도 선수로 활동하다가 2004년 한국에 정착했다. 2000년대초 한국에 처음왔을 때 모습. 사진 한분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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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는 말도 없고, 돈은 돌려받을 수 있을지….”

지난 24일 법정을 나선 한분영(49)씨가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3년간 자신을 괴롭힌 보험 사기 일당에 대한 재판이 있던 날이었다. 이날 인천지법 부천지원 형사1부(부장 김정아)는 특정경제범죄법상 사기와 보험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황모씨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황씨가 주도한 사기극에 가담한 9명에 대해서도 각각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한씨를 포함한 30여명을 상대로 약 31억원을 편취한 혐의를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배상책임의 범위가 명확하지 않아 형사 절차에서 배상명령을 하는 건 타당하지 않다”며 피해자들의 배상명령신청은 기각했다. 황씨 일당에게 빼앗긴 1억원을 되찾을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품었던 한씨에겐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였다. 어린 시절 덴마크로 입양됐던 한씨는 서툰 한국어로 “민사재판을 해야 하는데 언제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지 않냐. 언제쯤 답답한 마음이 사라질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떨궜다.



부모에 버림받고 떠난 해외 입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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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분영씨에 대한 기록은 1974년 해외 입양을 떠나기 전 머물렀던 보육원에 남은 원아대장이 유일하다. ‘한분영’이란 이름과 ‘건강상태 허약’이란 짤막한 메모가 그에 대한 유일한 정보였다. 사진 한분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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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씨는 49년 전 한국에서 첫 번째 아픔을 겪었다. 1974년 가을, 태어난 지 이틀 만에 인천 남구청에 맡겨졌는데 친부모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한씨는 의지를 갖기도 전에, 태어난 땅을 떠나 덴마크로 입양됐다. 다행히 이해심 많은 양부모를 만났고, 이국 생활에 잘 정착해갔다. 덴마크 태권도 국가대표로 유럽선수권 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태권도는 이후 한씨의 삶을 예상치 못한 길로 이끌었다. 태권도 대회 참가를 위해 20여년 만에 한국을 다시 방문하게 되면서, 어릴 적 떠나온 모국(母國)에 대한 알 수 없는 호기심과 그리움이 생겨났다. 도복을 벗은 뒤 진로를 고민하던 그는 결국 한국행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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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분영씨는 1995년 네덜란드에서 열린 유럽 태권도 선수권대회에 출전해 1등을 차지했다. 그는 태권도 덕에 사진으로만 보던 한국을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사진 한분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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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부모는 찾지 못했지만, 한씨는 자신이 태어난 나라에 조금씩 녹아들었다. 연세대 어학당을 거쳐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대학원에서 공부를 시작했고 한국외대에서 덴마크어를 강의하면서 생계를 꾸렸다. 좋아하지 않던 덴마크 이름 대신 ‘꽃가루가 날린다’는 의미의 ‘분영’이란 이름도 다시 쓰기 시작했다. 종종 찾아간 입양인 모임에서도 여러 도움을 받았다.



돌아온 모국, 그러나 두 번째 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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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분영씨는 두번이나 그를 버렸지만 한국에 실망하지 않았다고 했다. 사진 한분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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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홀로서기의 버팀목이 돼줬던 입양인 모임은 고향 땅에서 자리를 잡아가던 한씨에게 또 다른 시련을 안겼다. 모임에서 알게 된 이모씨를 믿은 게 화근이었다. “수익성이 높고 원금손실이 없는 투자 상품이 있다”는 이씨의 말을 믿고 투자를 시작했는데, 이씨는 1년 뒤 만기일을 앞두고 “더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며 새로운 상품을 제안했다. 한씨는 그의 말을 믿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원금과 이자가 들어오지 않았고 이씨도 연락이 두절됐다. 한씨가 미래를 위해 모아 둔 1억여원은 그렇게 사라졌다. 변호사의 도움으로 고소장을 내고 경찰서에 간 뒤에야 자신이 황모씨가 주도하는 다단계 금융사기의 피해자가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 수사기관은 황씨 일당을 재판에 넘겼고 24일 1심 판결이 내려졌지만, 상처는 아물지 않고 있다. 떼인 돈을 돌려받으려면 다시 지난한 민사소송 과정을 거쳐야 하며, 그렇게 해도 돈을 되찾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한씨는 “사기당한 돈은 내게 큰 금액이다. 아직도 그때 일 때문에 힘들다”고 말했다.



“입양인들의 아픔, 되풀이되지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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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9일 국회 한분영씨(맨왼쪽)를 비롯한 덴마크한국인진상규명그룹 구성원들이 해외입양인 인권 침해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진 한분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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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로부터의 버림, 그리고 사기까지 두 번의 아픔을 안긴 모국이지만 한씨는 아직 덴마크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고 했다. 대신 입양 과정에서 벌어지는 불법 행위,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온 해외입양인을 상대로 한 범죄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힘을 쏟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지난해 8월 한씨는 ‘덴마크한국인진상규명그룹’(DKRG)을 만들었고,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 해외입양 과정에서 발생한 인권침해 행위를 조사해달라고 진정서를 냈다. 한씨는 “해외로 입양된 사람들 중엔 아픔을 겪고 후유증에 시달리는 분들이 많다. 또 제 경우와 같이 입양인을 상대로 한 범죄도 계속되고 있다”며 “그런 상처가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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