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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6 (월)

공수부대 진격 홀로 막은 정우성…영화 ‘서울의 봄’, 어디까지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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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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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울의 봄'에서 이태신(정우성) 수도경비사령관이 행주대교를 막고 있다.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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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울의 봄’은 1979년 일어난 12‧12 군사 쿠데타를 배경으로 한다. 그렇다고 해서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담은 건 아니다. 김성수 감독은 기자간담회에서 “다큐멘터리처럼 만들기보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가짜인 줄 알았는데 역사였고, 진짜 같았지만 감독의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영화 속 장면들을 알아봤다.

◇서울로 진격하는 공수부대를 다리에서 홀로 막은 정우성, 진짜? 가짜?

영화 속 2공수부대는 전두광(황정민) 전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2공수부대의 서울 진입 상황에 따라 신군부와 이에 맞서는 육군본부의 전세도 뒤집힌다. 신군부에 맞선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정우성)은 행주대교 앞에서 바리케이드를 치고 홀로 2공수부대를 막아선다. 돌아가라고 엄포를 놓는 이태신의 기백에 놀란 2공수여단은 회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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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2월 12일 한강대교가 폐쇄되어 시민들의 차량이 다리를 가득 채우고 있다. /KBS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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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이런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태신의 모티브가 된 장태완 당시 수도경비사령관이 끝까지 신군부에 맞선 건 사실이다. 그러나 장 사령관이 수도경비사령부를 벗어난 일은 없었다. 그의 작전 명령, 상황 파악 등은 모두 전화로 이루어졌다.

그렇기에 서울 종로구 경복궁 앞에서 신군부와 이를 진압하려는 수도경비사령부 병력이 대치하는 장면 역시 허구다. 12월 13일 새벽 장 사령관은 비전투병까지 소집해 출동을 준비하긴 했으나 육군본부 참모들의 만류로 계획을 접어야 했다. 그는 2006년 시사저널이 공개한 ‘육필 수기’에서 당시에 대해 “직감적으로 ‘이제 수도경비사령부는 내 부대가 아니고, 내 부하들이 아니다. 취임한 지 불과 24일 만에 나의 부대라고 믿었던 내 생각부터가 착각이었다’고 마음속으로 느끼면서 비서실장 건의대로 다시 사무실로 올라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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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7월 장태완 전 수도경비사령관(오른쪽)과 정승화 전 육군참모총장이 12·12 및 5·18 관련 공판에서 증언하기 위해 법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조선DB


◇총소리 듣고 도망쳐 사라진 국방장관, 진짜? 가짜?

영화 속 보안사 요원들은 경호팀과 총격전 끝에 정상호(이성민) 참모총장 납치에 성공한다. 근처 공관에 살던 오국상(김의성) 국방장관은 이 소리에 놀라 잠옷을 입은 채 택시를 타고 도망간다. 오국상은 전두광에게 필요한 인물이었다. 최한규(정동환) 대통령이 정상호 구속 재가를 내리지 않고, “국방장관과 함께 오라”고 버텼기 때문이다.

이후 신군부 측은 빈집이나 다름없는 국방부에서 숨어있던 오국상을 잡아낸다. 그리고 오국상은 전두광 편 확성기로 이태신에게 해임을 통보한다.

노재현 당시 국방장관이 도주한 건 사실이다. 신군부가 편찬한 ‘5공전사’에 따르면 노 장관은 정승화 참모총장 공관에서 총격이 나자 불순분자의 습격인 줄로 오해하고 즉시 피신했다. 그는 한미연합사로 피신했다가 뒤늦게 국방부로 합류했다. 끝까지 싸워보려던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에게 “가만히 있어. 절대 충돌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노 장관은 13일 새벽 3시 50분 신군부가 국방부 청사를 장악한 후 지하 상황실 입구에서 발견됐다. 이후 신군부의 요청대로 총리공관으로 향해 대통령에게 정승화 총장 체포 결재를 요청했다. 노 장관은 1993년 9월 10일 국회에서 “(처음에는) 결재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며 “가만히 앉아서 생각하다 결재해야겠다고 생각이 바뀌었다”고 당시에 관해 설명했다. 그는 “이미 다 이루어졌는데, 한 시간 뒤에 결재하나 그다음 날에 하나 그렇게 문제 될 것 같지 않았다”고 했다.

◇8공수여단장, 정우성 설득에 지원 결심…진짜? 가짜?

영화 속 박기홍(정형석) 제8공수특전여단장은 공부수대 지휘관 중 유일하게 하나회가 아니었다. 하지만 8여단장 역시 처음에는 “왜 우리냐”며 신군부에 맞서기를 꺼려했다. 그러나 이태신의 집요한 설득 끝에 서울로 향하기로 했고, 이에 반란 진영은 위기에 빠진다.

그때 전두광은 자신 측 2공수여단과 육군본부 측 8공수여단을 동시에 회군시키는 신사협정을 제안한다. 이 말을 믿은 육군참모차장의 명령에 따라 8공수여단은 복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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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흥기 당시 9공수여단장. /KBS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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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신군부에 맞서 유일하게 출동했던 부대는 9공수여단이다. 1993년 12월 12일에 방송된 ‘KBS 다큐멘터리 극장’과의 인터뷰에 따르면 윤흥기 당시 9공수여단장이 나선 건 누군가의 설득 때문은 아니었다.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이 정병주 특수전사령관에게 9공수여단 출동을 요청했고, 정 사령관은 이를 명령했다. 윤 여단장은 “그런데 수송대대에서 차량 지원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참모장에게 ‘나머지는 차량이 도착하는 대로 육군본부로 보내라’고 하고, 내가 1개 대대만 끌고 먼저 출발했다”고 했다.

그렇게 10분쯤 지났을 무렵 무전이 왔다고 한다. 육군참모차장이 신사협정을 이유로 돌아가라는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9공수여단은 발길을 돌렸다.

◇모두가 떠나도 특전사령관 옆에 남은 정해인, 진짜? 가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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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울의 봄'에서 공수혁(정만식) 특전사령관의 비서실장 오진호(정해인) 소령이 공수혁을 지키고 있다.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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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공수혁(정만식) 특전사령관은 전세가 기울었음을 느끼고 부대원들에게 피하라고 명령한다. 하지만 사령관 비서실장인 오진호(정해인) 소령만은 “사령관님을 외롭게 하지 않겠다”면서 공수혁의 곁을 지킨다. 오진호는 절친했던 박수종(이승희) 중령을 비롯한 신군부 측에게 무차별 총기 난사를 당해 전사한다.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체포한다며 3공수여단 10여명이 들이닥쳤을 당시 단 한 명의 부하만이 그를 지킨 건 사실이다. 비서실장이었던 김오랑 소령이다. 김 소령은 권총 한 자루를 들고 저항했으나 가슴과 배 등에 6발의 흉탄을 맞고 현장에서 전사했다. 김 소령을 살해한 박종규 중령과 두 사람이 가까운 선후배 사이였던 것도 맞다. 박 중령은 임종 직전 “오랑이한테 가서 잘못했다고 사과하겠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김 소령은 사망한 특전사령부 인근 뒷산에 암매장 됐다가, 동료들의 항의로 1980년 서울현충원으로 이장됐다. 1990년 중령으로 추서됐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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