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청 정대철'로 尹 처음 소개받아"
국민의당 비례 추천했지만 尹이 사양
"尹참모들 국회서 국민존중 안 해"
"尹대통령 정치친화적으로 바뀌어야"
"김한길, 대통령비서실장 가능성"
편집자주
‘박석원의 정치행간’은 국회와 정당, 대통령실 등에서 현안으로 떠오른 이슈를 분석하는 코너입니다. 정치적 갈등과 타협, 새로운 현상 뒤에 숨은 의미와 맥락을 훑으며 행간 채우기를 시도합니다.정대철 대한민국헌정회 회장이 1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헌정회 집무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정 회장은 헌정회관 신축과 헌정회원 공제회 설립, 복지기금 100억 원 달성 목표, 국립묘지 내 헌정묘역 설립, 연로회원 지원금 등 5대 역점사업을 추진 중이다. 윤서영 인턴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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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 정대철 대한민국헌정회 회장은 왕성하게 활동하는 몇 안 되는 정치원로다. 마치 ‘용광로’와 같은 존재다. 야당시절 김대중 대통령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함께 일궜고, 노무현 당선자 때는 집권당 대표로 대통령에 이은 2인자였다. 민주당 출신이지만 여야 구분 없는 방대한 인맥에 그를 거점으로 ‘사랑방 정치’가 성사되고 원로들의 의견이 취합된다. 올해 3월 전직 의원 1,101명으로 구성된 헌정회 회장 투표에서 야권 출신으론 사상 처음으로 당선된 것만 봐도 그의 별명이 틀리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헌정회원은 과거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 유정회 의원을 비롯한 구 여권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아 정 전 새천년민주당 대표의 당선은 충격에 가까운 일이었다.
정 회장은 서울대 법대 17년 후배인 윤석열 대통령과 '20년 넘은 관계'다. 첫 만남은 윤 대통령이 총각일 때인 평검사 시절이다. '검찰청의 정대철'이라고 스스로 소개했다고 한다. 퉁퉁한 외모에 사람 좋아하는 호쾌한 성격이 빼닮았다. 정 회장은 13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이 최근 인사차 보낸 김대기 비서실장에게 국정운영 조언 ‘쪽지 메모’를 써서 전달한 사실을 밝혔다. “정치경험이 풍부한 인사들로 국정자문기관 또는 국책자문기관을 만들어 정기적 충고와 진언을 들어야 한다”며 “전직 대통령이 포함돼도 무방하다. 검사 출신만 쓴다고 말이 많은데 다음 인사는 반드시 폭넓게 기용해야 한다”고 두 가지를 요청했다고 했다. 두 사람의 관계만 본다면 향후 국정쇄신 인사로 이어질지 관심이 가는 대목이다.
정 회장은 윤 대통령을 처음 봤을 때 '정의로운 사람'이란 느낌을 받았다며, 이 점이 지속적으로 마음에 들어 ‘안철수 국민의당’ 시절 비례대표 후보로 추천했던 비화를 설명했다. 그는 국민의힘에서 역할론이 잦아들지 않는 김한길 대통령직속 국민통합위원장에 대해 “국무총리나 대통령비서실장으로 발탁될 가능성이 있다”고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정 회장은 인터뷰 내내 대통령이 “정치친화적이 돼야 한다”고 강조하며 “출범 1년 반을 맞는 지금부터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는 최근 말씀대로 겸허한 태도를 강화하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 정국을 보는 노정객의 솔직하고 흥미로운 평가를 들어본다.
-윤 대통령의 국정 1년 반을 어떻게 지켜봤나.
”외교관계는 괜찮고 국내정치는 미흡했다. 여권이나 대통령 참모들이 하는 언행을 봤을 때 당당히 반말도 쓰고 옛날엔 없던 국회의원과 싸우는 모습이 보인다. 이건 국민을 존중하는 태도가 아니다. 야당을 아직도 동반자로 생각하지 않거나 불순세력, 종북주의자로만 보는 것 같아 대국민 전략, 전술로도 옳지 않다.”
-윤 정부가 임기 동안 꼭 이뤄내야 할 국가적 담론이 뭐라고 보나.
”세 가지라고 본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도입하고 정착시켰는데 더 깊이 뿌리내리도록 해야 한다. 1987년 이후의 민주화에 대해 계속 노력해야 한다. 두 번째는 경제인데 세계 10~12위 하는데 세계 5대 지도국가 반열에 오르려면 경제를 성장시키면서 양극화 현상을 극복해 더불어 잘사는 사회가 아니면 안 된다. 공정한 사회를 말하는 것이다. 세 번째로 남북 간 평화공존을 통해 통일로 가는 꿈을 절대 포기해선 안 되는데 이는 시대적 소명이기도 하다.”
-그 목표를 달성해야 할 윤 대통령과 친분이 깊은데 어떤 인물로 느끼고 있나.
”솔직히 이분이 대통령이 되리라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20년 전 나를 찾아왔었다. 검사가 왔다 길래 잡혀가는 줄 알고 깜짝 놀랐다(웃음). 검찰청에서 별명이 '정대철'이라며 원판 선배님 뵈러 왔다고 했다. 대학 후배이기도 해서 내가 금방 말을 놓았고, 바로 그날 저녁 한잔할 만큼 친해졌다. 나보고 대통령 되라고 매번 그랬는데 그 자신이 대통령 될 줄은 몰랐다(웃음).”
-많은 나이 차이에도 마음이 통했나 보다. 첫인상이 어땠나.
”정의롭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건 옳지 않습니다, 안 그렇습니까'라는 식의 말을 자주 되풀이했다. 나 같은 ‘김대중 부대’가 딱 한 번 외도를 했는데 권노갑 선배와 내가 한때 안철수당으로 갔지 않나. 그때 윤 대통령을 내가 비례대표로 추천했다. 처음에는 '알았다'고 해서 안철수 대표한테 얘기를 다 해놨다. 그런데 얼마 후 윤 검사가 자기가 여태까지 한 행동(국정원 정치개입 사건 수사 등)이 국회의원 되려고 한 것처럼 오해받고 우스운 사람이 될 것 같아 사양하겠다고 선회했다. 안 대표와는 얘기가 다 됐는데 돌연 바뀌니 내가 안 대표에게 사과할 지경이 된 적이 있다.”
-처음에는 선배가 강권하니 겉으론 윤 대통령이 거절하지 못하지 않았을까.
”거부보다는 사양한 것이다. 얼마 전 안철수 의원이 마라톤 뛰는 행사에 내가 갔는데 웃으면서 당시 얘기를 나눴다. 안 의원이 ‘그때 전국구(비례대표) 했으면 대통령 안 됐죠’라고 하더라(웃음). 윤 검사가 정의감이 투철해 좌천되지 않았나. (국회의원 되면) 자신의 순수성이 무너진다고 생각한 그에게 결국 내가 설득당했다. 그 태도를 더 좋게 보게 됐다.”
정대철 헌정회장이 1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대한민국헌정회 집무실에서 박석원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인터뷰하고 있다. 윤서영 인턴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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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얘기로 화제를 돌려보자. 혁신으로 몸살을 앓는데 ‘이준석 신당’은 나올 것 같나.
”긍정적으로 본다. 우리나라가 너무 양당체제로 굳어지는 건 민주주의 다양성 제고에 좋지 않고, 이거냐 저거냐가 아닌 제3의 타협 가능성도 있어야 한다. 진보정당이 위축된 상황에서 제대로 된 신당이 나온다면 신당 자체에 대한 움직임은 반가운 것이다.”
-여권에선 ‘김한길 역할론’이 끊이지 않는다. 김 위원장을 윤 대통령에게 소개한 것도 정 회장인 것으로 안다.
”김 위원장은 탁월한 경세가, 전략가다. DJ나 정주영 회장이 단시간에 그를 크게 발탁한 점도 그 이유다. (※김 위원장은 1992년 14대 총선 때 통일국민당으로 출마했다.) 내가 DJ에게 소개했는데 처음엔 고(故) 김철 사회당 당수의 아들이라 그랬는지 얘기 꺼내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TV방송 ‘김한길과 사람들’에서 인기가 높아지니 다시 데려오라고 하더라.”
-그럼 김 위원장 스스로의 경쟁력으로 발탁된 것 아닌가.
”그렇다. 윤 대통령도 김 위원장을 자주 부르고 굉장히 신뢰하는 것 같다. 향후 총리나 대통령비서실장이 될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김 위원장과 정 회장은 최근 만나 냉면을 먹었다.)
-정치원로 모임의 회장으로서 여당과 대통령실에 무슨 얘기를 하고 싶나.
”지금이라도 ’정치 화해’의 길을 터야 한다. 여당과 대통령이 야당대표를 안 만나고 어떻게 정치를 하나. 국회의장 출신 11명 중 8명이 나와 삼월회(三月會)라는 원로모임을 만들지 않았나. 매달 셋째 수요일 만나 점심, 저녁을 먹는데 지난 9월에 김기현, 이재명 여야 당대표를 불러 함께 식사를 하기로 했는데 이 대표가 단식을 하는 바람에 무산됐다. 두 사람 다 동의를 받았는데 이걸 다시 추진할 생각이다. 이달 중이나 12월에는 해야 한다.”
-과거 여야 관계와 지금이 확실히 다른가.
”만나지 않으니 정치실종, 정치상실, 극한대결의 시대가 됐다. 여의도가 전쟁 상태다. 복원시켜야 한다. 내가 당대표 시절 상대는 최병렬, 박희태 대표였다. 자기들 어디서 저녁모임 하면 내가 옆방까지 따라가 진을 치고 앉아 있었다. 귀찮아 죽겠다고 하는데도 그러면서 만나면 서로 얘기가 되어 간다. 거기서 갈등 현안 절반이 풀리곤 했다. ‘화장실로 나와요’라는 말도 많이 했다. 아무 방이나 들어가 ‘당신이 좀 참아달라’ 이런 얘기 서로 하면 가닥이 잡히는데 지금은 만나지 않으니....”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을 어떻게 보고 있나.
”여당은 혁신위를 꾸려 비상대책에 나섰고 메가 이슈도 터뜨려 다이내믹하게 움직이는데 민주당은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 이겼다고 자만하는 것 아닌가. 이재명 대표가 '작은 차이를 넘어 외부의 적과 싸워야 한다'고 포용과 단합을 강조한 것은 긍정적이다. 총선을 앞두고 친명과 비명이 편을 가르면 공멸한다. 이 대표가 적극적, 능동적으로 나서야 한다.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이 대표를 지적한 것이 여당에 의해 증폭됐다고 미워하는 것 같은데 그걸 뛰어넘어 당내 경합자였던 이낙연 전 총리까지 모두 (끌어안아) 단합해야 한다.”
-민주당의 쇄신작업은 어떻게 보나. 이 대표 체제로 총선까지 가면 되겠나.
”이 대표 체제로 치른다고 보인다. 그런데 혁신이 지지부진하다. 가능한 한 빨리 비대위든 혁신 움직임이든 새 모습으로 국민적 지지를 충족시켜야 한다. 12월쯤엔 이 대표가 앞에서 물러난다는 소문도 있었는데 전적으로 이 대표 결심에 달려 있다.”
-DJ나 노무현 전 대통령을 통해 지금 무얼 교훈 삼아야 하나.
”생전 전두환 전 대통령이 우연히 마주친 자리에서 나에게 '당신의 대장은 훌륭한 사람이다. 내가 그 사람을 죽이려 했는데 나를 용서하고 집권 경험을 들으려 청와대에 4번이나 초청한 대단한 사람이다'고 한 기억이 있다. DJ는 용서와 화해의 지도자였다. 노 전 대통령은 나한테 ‘미국이 싫다’고 했다. 내가 농담조로 ‘미국에 아부해야 한다’고 했다. 한미FTA도 하고 미 해군이 요구한 제주 강정마을기지도 만들자고 했더니 한참 고민을 하다가 둘 다 받아들였다. 국민 이익을 위해 필요하면 자기 주장도 굽히는 지도자였다. 옳은 걸 추구한다는 점에선 윤 대통령이 앞선 두 사람과 공통분모가 있다. 정의감에 자기확신이 큰 윤 대통령도, 설득하니 돌아선 노 전 대통령의 유연성을 배우면 좋을 것이다.”
2022년 4월 13일 당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서울 성북구 한국가구박물관에서 각 분야의 원로들에게 고견을 듣는 '경청식탁, 지혜를 구합니다' 행사에 참석했다. 당선인 왼쪽이 정대철 현 대한민국 헌정회장. 대통령직인수위 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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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철 헌정회장은
1944년생으로 9·10·13·14·16대 의원을 지냈다. 김대중 총재 시절에도 비주류는 있었다. 1997년 새정치국민회의 전당대회 때 대선후보 경선은 DJ와 정대철, 총재경선은 DJ와 김상현 후보가 경합했다. DJ는 신민당 신파 시절 정대철 전의원의 선친인 정일형 전 외무장관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정 회장은 헌정회장으로 제2의 활동을 시작했다. 여의도 소식통은 “보수정당 출신 전직 의원들이 정대철을 찍은 배경엔 YS계 김덕룡, 김무성 전 의원 등이 지지하면서 많은 표가 넘어온 점이 있다”고 했다. 헌정회가 영향력 있는 단체로 성장한 건 오래되지 않았다. 직선제로 회장을 뽑으면서 과거 정객들이 몰려들고, 청와대 초청 식사가 관행으로 정착되면서 위상이 높아졌다. 정 회장은 헌정회관 신축과 헌정회원 공제회 설립 및 복지기금 100억 목표 등을 추진 중이다.
박석원 논설위원 spark@hankookilbo.com
변한나 사원 bloss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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