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오후 전북 전주시 전동 풍남문 광장에 설치된 10·29 이태원 참사 분향소 앞에서 한 시민이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서명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김준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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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남문 광장 분향소 추모객 발길
지난 9일 오후 2시쯤 전북 전주시 전동 풍남문 광장. 평일 낮이라 한산했지만, 10·29 이태원 참사 분향소엔 추모객 발길이 띄엄띄엄 이어졌다.
천막 안에는 지난해 10월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서 일어난 압사 사고 희생자 159명 중 일부 사진이 빼곡히 담긴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특별법을 제정하라' '대통령은 사과하라'고 적힌 팻말도 눈에 띄었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전북지부와 전북시민사회대책위원회가 지난 8일 전북 전주시 전동 풍남문 광장에 설치된 이태원 참사 분향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주시에 분향소 철거 요청을 철회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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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시, 유족 측에 자진 철거 요청
분향소가 차려진 풍남문 광장 인근엔 해마다 1000만명 이상이 찾는 전주 한옥마을이 있다. 왕복 4차선 도로를 건너면 경기전·전동성당 등 관광 명소가 즐비하다. 조선 시대 전주읍성 남문인 풍남문(보물 308호)과 전주 남부시장과도 맞닿아 있다.
전주시가 풍남문 광장 분향소를 두고 이태원 참사 유족과 갈등을 빚고 있다. 지난 5일 양측이 면담한 자리에서 분향소 자진 철거를 요청하면서다. 이날은 참사 1주기 행사를 치른 지 일주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이에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전북지부와 전북시민사회대책위원회는 8일 기자회견을 열어 "참사 아픔을 헤아리지 못한 처사"라며 철거 요청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희생자를 애도하고 시민과 소통하는 공간마저 없앨 수는 없다"는 주장이다.
세월호 참사 8주기를 하루 앞둔 2020년 4월 15일 전북 전주시 전동 풍남문 광장에서 전북민중행동이 주관하는 추모 집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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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관 훼손, 영업 방해 민원 많아"
전주시 측은 "'도시 미관을 훼손하고, 영업에 방해된다'는 시민과 상인 민원이 끊이지 않는다"며 "참사가 발생한 서울시와 보조를 맞췄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지난달 서울광장 분향소 자진 철거를 요청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달 16일 서울시 국정감사에서 "되도록 자진 철거를 유도할 생각입니다만, 마냥 1년, 2년 있을 수 없지 않냐"고 했다.
전북에 연고를 둔 이태원 참사 희생자는 10명이다. 전주 분향소는 지난해 12월 설치됐다. 현재 서울을 제외하고 전국에 남아 있는 유일한 분향소다.
이태원 참사 분향소 바로 뒤편엔 세월호 분향소가 있다. 2014년 8월 민주노총 등이 설치한 세월호 농성장·분향소는 2017년 12월 자진 철거했다. 이후 2018년 4월 세월호 분향소 지킴이 등이 설치한 분향소는 시민단체 회원 등이 매일 지키고 있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전북지부와 전북시민사회대책위원회가 지난 8일 전북 전주시 전동 풍남문 광장에 설치된 이태원 참사 분향소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한 유족이 눈물을 닦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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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세월호 분향소 철거 무산
세월호 분향소 철거는 지난해 7월 전주시가 "8년간 희생자 유가족과 슬픔을 함께한다는 의미로 무단 점거를 용인했으나, 기약 없이 운영하는 건 어렵다"며 세 차례에 걸쳐 계고장을 보내는 등 행정대집행을 예고했다가 유족·시민단체 반발로 무산됐다. 현재 천막 형태 세월호 분향소는 전주밖에 없다. 전주시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와 연관 있는 진도·안산·제주와 수도인 서울은 건물 내부에 기억관을 설치·운영한다.
분향소 철거에 대한 여론은 엇갈린다.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이를 기억하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존치론과 "전주가 세월호·이태원 참사와 직접적 연관이 있는 곳도 아닌데 왜 분향소가 있냐"는 폐지론이 팽팽하다.
서울에서 전주 한옥마을을 찾은 김모(26)씨는 "아직도 희생자를 추모하는 분이 계신데 분향소 철거는 상처 난 곳을 한 번 더 후비는 일"이라며 "다만 무단 점거는 불법이니 전주시에서 합법적인 추모 공간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전주 풍남문 광장에 나란히 설치된 이태원 참사 분향소와 세월호 분향소. 김준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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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시 "불법 맞지만, 강제 철거 안해"
반면 남부시장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박모(55)씨는 "(이태원 참사) 초기엔 나라 전체가 희생자를 애도하는 분위기여서 임시 분향소에 대해 상인들도 대부분 공감했지만, 세월호 분향소처럼 상시로 운영하는 것엔 불만이 많다"며 "광장은 시민이 쉬고 관광객이 몰리는 곳인데 분향소와 가로수에 덕지덕지 걸린 현수막이 경관을 해치고 있다"고 했다.
전주시 관계자는 "세월호·이태원 참사 분향소 모두 불법 시설"이라며 "하지만 유족과 대화를 통해 자진 철거를 유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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