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는 시민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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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가 물가 잡기 총력전에 나섰다. 각 부처 고위관료들이 앞다투어 현장으로 달려가 물가 잡기에 뛰어들더니 이제는 아예 품목별로 담당 공무원을 지정하는 물가 책임제를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관가에선 지난 19대 총선을 앞두고 이명박 정부에서 등장한 ‘쌀 실장’ ‘기름 실장’이 11년 만에 부활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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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물가상승률 3.8%…석 달 연속 상승세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지난 8월부터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년 동월 대비 기준)이 석 달 연속 상승, 3%대 후반으로 향해가면서다. 당초 정부는 명절을 앞두고 물가가 8~9월 소폭 오른 뒤 10월부터 3% 초반대로 다시 안정화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국제유가 급등과 이상기온으로 인한 농·축·수산물 가격 상승 영향으로 10월 물가상승률은 3.8%를 찍었다.
김영희 디자이너 |
“책상에만 앉아있지 말라” “물가·민생안정을 최우선 정책과제로 삼겠다”는 윤 대통령의 잇따른 메시지에 각 부처도 부랴부랴 대책을 꺼내 들었다. 2일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범부처 특별물가안정체계를 즉시 가동하겠다며 “각 부처 차관이 ‘물가안정 책임관’이 돼 소관품목 물가 안정은 스스로 책임진다는 각오로 철저히 살피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무·배추 같은 신선식품부터 라면·아이스크림 등 가공식품에 이르기까지 서민 체감도가 높은 품목에 전담 공무원을 지정해 하나하나 체크하며 물가 조이기에 나서겠다는 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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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관리 책임실명제' 꺼내 든 MB정부 데자뷔
이런 움직임은 11년 전 19대 총선을 앞두고 벌어진 상황과 매우 닮아있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2000년 이후 가장 높은 물가상승률(2008년 4.7%)을 기록하며 고물가 부담을 안고 갔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09~2010년 들어 2%대로 내려앉으며 안정화되나 싶었지만 2011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다시 물가가 오르기 시작했다. 그해 9~10월 3%대로 소폭 내려앉았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1~12월 4.2%대로 뛰어올랐다.
차준홍 기자 |
이 전 대통령은 2012년 1월 3일 열린 새해 첫 국무회의에서 “물가가 올라도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을 못 봤다”며 “농·축산물을 중심으로 품목별 물가 관리의 목표를 정해 일정 가격 이상 오르지 않도록 하는 확고한 정책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게 해서 나오게 된 대책이 ‘물가관리 책임실명제’다. 주요 품목마다 물가 상한선과 담당자를 정해 실명으로 관리하는 방식이다. 일례로 당시 농수산식품부의 관련 실장들이 각 농산물 물가를 도맡았고, 알뜰주유소는 지식경제부에서 밀착마크하는 등 전방위적인 물가 억제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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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잡힌 듯 했지만…속사정 보니
결과만 놓고 보면 MB 정부의 노력은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전년 동월 대비 물가상승률 추이를 보면 2012년 1월 3.3%로 완화되기 시작해 2월 3%, 3월 2.7%로 떨어진 후 총선이 열린 4월엔 2.6%를 기록했다. 이후에도 1~2%대 저물가 기조를 이어갔다. 19대 총선에선 새누리당이 152석, 민주통합당이 127석을 확보하면서 여당에 승리가 돌아갔다. 물가를 잡으면 총선을 이길 수 있다는 공식이 들어맞은 듯한 모습이다.
이때 잡힌 물가가 과연 ‘책임실명제’ 덕분이었을까. 전문가들은 그것보단 “운이 좋았다”고 평가했다. MB 정권 집권 초기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이어진 고환율·고유가 기조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고,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자연스레 물가가 하락세를 보이게 됐다는 것이다. 여기에 2012년 3월부터 대폭 확대된 무상보육·급식 영향으로 보육료·교육비가 대폭 줄어든 점과 통계청의 품목 조정으로 한동안 물가상승률을 견인하던 ‘금반지’가 품목에서 빠진 점 등이 부가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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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억제로는 물가 잡지 못해”
전문가들은 특히 지금의 경기 상황이 정부 주도의 물가 통제 방식을 적용하기에 적절치 않다고 주장한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MB식 물가 잡기는 반짝 인플레이션이 이어질 때 그걸 정치적으로 억눌러줌으로써 단기적으로 효과를 낸 것"이라며 "지금은 벌써 1년 반 이상 물가 상승 기조가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양 교수는 이어 “지금 기업을 압박해도 인플레이션 기조가 이어지는 한 물가 상승을 막을 수 없다”라고 우려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누른다고 해서 기업의 비용 상승 요인이 없어지거나 인플레이션 기대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되면 기업들이 기회를 보다가 한꺼번에 많이 가격을 올려버릴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하 교수는 지금은 장기적으로 물가 인상과 관련된 구조적 문제를 손봐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기업들의 독과점·담합 혹은 불합리한 유통 방식으로 비용이 올라가는 부분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양 교수도 “차라리 서서히 물가가 올라가는 게 낫다”라며 “게다가 지금은 인플레이션이 점차 떨어지는 추세라 조금 시간을 두면 2%대 정도로 내려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이우림 기자 yi.wool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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