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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이슈 이태원 참사

소방관이 겪은 그 날···“지켜야 했는데, 못했습니다”[이태원 참사 1주기-④살아남았다는 이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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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당일 추가 지원요청에 출동

인파 뚫고 골목 오니 ‘아비규환’

대원들 복귀 후 대화 없이 침묵

불면증에도 무거운 죄책감 느껴

“창창한 분들인데···미안합니다”

경향신문

소방관 권영준씨가 지난달 19일 서울 중구 충무119안전센터 소방복 보관함 앞에 서 있다. 권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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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29일, 오후 6시에 신당119안전센터에 도착한 소방관 권영준씨(52)는 자리에 앉아 행정 업무를 보고 있었다. 소방 방재센터 방송이 나온 시각은 당일 오후 10시15분쯤. 신당119안전센터는 오후 10시28분 추가 지원요청을 받고 현장으로 출동했다.

“차 타고 가는 길에 지령 문자가 떴어요. 질서유지, 인원 통제. 별거 아닌 줄 알았죠.” 지난 19일 서울 중구 충무119안전센터에서 만난 권씨는 출동 지시 직후까지도 현장 상황을 온전히 전달받지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버티고개를 넘을 때쯤, 권씨가 들었던 무전기가 시끄러워졌다. “큰일 났어요. 추가 소방력이 많이 필요합니다.” 거리를 가득 메운 인파 탓에 평소 5분여 만에 닿을 거리를 소방팀은 27분 만에 도착했다. 그나마 참사가 일어난 골목길에서 약 300m 떨어진 곳이었다. 권씨는 일단 장비를 챙겨들었다.

“소방관입니다. 길을 비켜주세요.” 목이 쉬도록 소리쳐 뚫으려했지만 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올해로 21년차 베테랑인 권씨이지만 인파를 겨우 뚫고 골목에 도착했을 때 처음 본 장면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수많은 사람이 좁은 골목길에 빽빽이 차 들어선 모습, 아비규환이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했다. 한 시민의 몸을 끌어당겼지만, 몸이 빠지지 않았다.

골목 뒤편으로 가자 10명 정도가 쓰러진 채 심폐소생술(CPR)을 받고 있었다. 그는 옆에 있던 시민에게 “이렇게 가슴 압박을 해달라”고 설명하고 다른 사람을 계속해서 구조했다. 권씨는 “골목 전체에서 CPR이 이뤄지고 있었다. ‘멘붕’ 상태였다”고 했다. 경찰과 소방, 시민들의 사투에도 천에 덮인 시신은 하나둘 늘어갔다. 나중에는 천이 부족해 소방차에서 감염복과 모포까지 꺼냈고, 나중엔 다른 희생자가 걸치고 있던 옷가지로 시신을 덮었다.

그 와중에 옆에선 취객들이 웃으며 거리를 거닐고, 식당 스피커에서는 음악이 나왔다. 모포 덮은 시신과 1m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식사를 이어가는 이들도 있었다. 그 장면이 권씨에게는 너무도 큰 충격으로 남아있다. “‘이게 과연 현실일까’ 싶었습니다.”

‘놀러가서 죽었다’는 냉소…지키지 못한 이들의 죄책감을 키웠다


경향신문

소방관 권영준씨가 지난달 19일 서울 중구 충무119안전센터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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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119안전센터 대원들은 이튿날 오전 1시30분쯤 철수한 뒤 복귀해 정해진 근무시간인 오전 9시까지 자리를 지켰다. 실없는 농담, 소소한 일상들이 오고가던 그 시간에 대원들은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그 이후도 마찬가지였다.

권씨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집에 돌아와 가족과 함께한 자리에서도, 직장 동료들과의 회식 자리에서도 그날의 일을 언급하길 피했다. 동료들도 같은 마음이었다. “괜찮습니다.” 소방관이 된 지 6개월이 된 후배 대원에게 ‘괜찮냐’고 물으니 돌아온 답이었다. “다음 출동에 지장을 미치지 않기 위해 마인드 컨트롤을 한 거죠. 사건을 떠올리면 고통스러우니까.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선배들도 그래왔고, 그게 몸에 익었고.”

권씨는 참사 후 일주일간 불면증에 시달렸다. 두세 달은 심폐소생술을 받던 젊은이들의 모습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정부는 참사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을 위해 몇 가지 지원책을 마련했지만, 문턱이 높았다. 심리상담은 이틀 전 예약해야 했는데, 예약일마다 일이 생기는 바람에 권씨는 여태 한 차례도 상담을 받지 못했다. 24시간 3교대로 운영되는 소방 근무 특성상 근무를 조정해 특별연가를 쓰기도 쉽지 않았다. 한 명씩 돌아가며 휴가를 쓰다보니, 권씨는 하루 특별연가를 참사 한 달 후에야 쓸 수 있었다.

권씨는 “서울 지역 내 출동 건수가 어마어마하게 많아 다른 관할 지역에 지원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신속한 대응, 근무환경 개선을 위해 구급대원·구급차 증원·증차가 절실하다”고 했다. 권씨는 참사 대응 책임을 이유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최성범 용산소방서장 등 동료 실무자들을 위해서도 활동 중이다. 서울역 등에서 실무자 처벌을 규탄하는 기자회견과 국민 서명운동을 개최하기도 했다.

이태원 참사를 향해 ‘놀러 가서 죽은 것 아니냐’고 하는 이들을 볼 때마다 권씨는 더 무거운 죄책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그렇게 말하는 당사자는 콘서트, 축구 경기장, 만원 지하철, 대도시 문화 행사에 가본 적 없는지 되묻고 싶다”며 “이런 일을 예방하고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 나라가, 공무원이 해야하는 일”이라고 했다. 소방관으로서, 동료시민으로서 권씨는 희생자들에게 거듭 사과했다.

“소방관인데도 국민 안전을 못 지켜 죄책감이 큽니다. 더군다나 희생자는 앞길이 창창한 분들이셨어요. 마음이 아프고 미안합니다.”




☞ 놀러 가서, 죽었다[이태원 참사 1주기]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310241507001#c2b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오동욱 기자 5d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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