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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이슈 이태원 참사

“지키지 못한 아빠가 미안해” 길 위에서 맞은 딸의 생일[이태원 참사 1주기-③4개의 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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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300일째였던 딸 생일

‘특별법’ 외치면서 삼보일배

시간 흘러도 그대로인 슬픔

다른 유가족 의지하며 버텨

경향신문

고 송채림씨의 아버지 송진영씨가 이태원 참사 300일인 지난 8월24일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서울 마포구 마포역을 출발해 국회 방향으로 삼보일배를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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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300일째인 지난 8월24일 오전 9시30분 서울 동작구 가톨릭노동청년회 회관에 참사 유가족 10여명이 모였다. 300일 추모제에 참가하기 위해 각 지역에서 모인 이들이었다. 고 송채림씨의 아버지 송진영씨도 부인과 함께 대전에서 상경했다. 미용실을 운영하는 한 유가족이 진영씨의 머리를 짧게 깎았다. 박가영씨의 어머니 최선미씨가 “채림이가 좋아하겠다”고 하자 진영씨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이날은 딸의 생일이었다. 채림씨는 22번째 생일을 맞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진영씨는 “추모제 계획을 세우다 참사 300일이 딸 생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면서 “떠난 이들이 맞지 못한 생일을 남겨진 가족이 맞는다는 게…”라고 했다. 지난해 생일 때 채림씨가 ‘감사했다’는 말과 함께 준 꽃다발을 진영씨는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채림씨는 어려서부터 옷에 관심이 많았다. 고등학교 다닐 때 패션디자인을 공부하고 지난해에는 온라인 쇼핑몰을 차렸다. 채림씨가 떠난 뒤 진영씨는 집에 남은 옷가지를 채림씨 친구들에게 나눠줬다. 나머지 물품들은 그대로 뒀다. 진영씨는 “방에 손을 대면 다시는 이전 상태로 되돌려 놓지 못할 것 같다. 이 방만큼은 딸이 ‘서울 다녀올게’ 하고 나가던 그때의 상태로 남겨놓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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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23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송채림씨의 아버지 송진영씨가 채림씨가 안치된 납골당에 차린 생일상차림. 송진영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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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 진영씨 부부는 서울광장 분향소에 도착했다. 근처 카페에서 사 온 작은 케이크와 커피를 딸 영정 앞에 놓았다. 진영씨는 묵념하다 갑자기 흐느끼는 부인에게 다가가 그를 다독였다. 진영씨는 “참사 이후 아내 말수가 줄었다. 그나마 다른 (희생자) 엄마들과 있을 때만 말을 좀 한다”며 “원래 감정 절제를 잘하는 사람인데 영정이 있는 분향소에만 오면 그간 쌓인 게 터진다”고 했다.

진영씨도 딸이 떠난 후, 주변 관계가 많이 끊겼다. 직장동료나 친구를 만나도 서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어색한 상황이 반복됐다. 40여개가 넘던 카카오톡 대화방도 하나둘 줄어들었다. 진영씨는 “나는 채림이 생각 뿐인데, 상대방과는 여행 얘기, 등산 얘기를 해야 하지 않나. 만나도 점점 할 말이 없어지더라”며 “유가족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줄고 있다. 유가족끼리만 외친다고 느낄 때 두렵다”고 했다.

진영씨는 참사 직후 직장을 관뒀다. 아무리 독하게 맘먹으려 해도 딸 생각에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진영씨는 남은 자식들에게는 “신경쓰지 말고, 너희 인생을 살아라”고 말했다. 수렁 같은 투쟁에 자식들마저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세월호 유가족과 일본 아카시 압사 사고 유가족을 만나면서 가족을 잃은 슬픔은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알게됐다”며 “우린 이전의 일상으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됐다. 요즘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려고 애쓰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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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24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송채림씨의 어머니가 서울시청 이태원 참사 시민분향소에 있는 채림씨의 영정사진 앞에서 묵념하고 있다. 김세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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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시59분. 200여명의 유가족들이 서울 마포역에서 한강 건너 여의도 국회를 향해 삼보일배를 시작했다. 보라색 스카프를 두른 진영씨도 굳은 얼굴로 손을 모은 채 무릎을 굽혔다. 세 걸음에 절 한 번, 마포대교를 건너 4㎞를 나아가는 데 3시간 넘게 걸렸다. 그는 “생일이라 딸 생각이 많이 났다. 마음이 먹먹해져 일부러 다른 생각을 하려 했다”면서 “지난 6월 단식농성을 하면서는 마포대교를 18일간 매일 건넜다. 오늘 지나온 길을 앞으로 얼마나 더 와야 할지 생각했다”고 했다.

진영씨를 버티게 해주는 건 다른 유가족들이다.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유가족과 만난다. 유가족협의회에서 운영위원을 맡은 뒤로 만남도 더 잦아졌다.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농성을 벌였던 6월 한 달은 한솥밥을 먹기도 했다. 이날도 유가족이 모인 카톡방에는 딸의 생일을 축하하는 메시지가 빼곡했다. 진영씨는 “유가족을 만나지 못했던 참사 직후가 가장 힘들었다”면서 “서로 처지를 아는 이들이라, 농담하고 웃고 떠들 수도 있다. 가족들을 만나면 조금은 숨이 트인다”고 했다.

하루를 마치며 진영씨가 떠올리는 단어는 ‘속죄’다. 다른 유가족과 손을 맞잡은 그의 표정은 한결 가벼워 보였다. 그는 “오늘은 ‘특별법이 제정될 수 있겠다’는 말을 들어서 개운한 느낌도 든다. 내 할 일은 했구나 싶다”며 “항상 채림이에게 용서를 구한다는 생각을 갖고 활동한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고, 조금씩이라도 내가 잘못한 것을 덜어간다는 마음뿐”이라고 했다.




☞ 놀러 가서, 죽었다[이태원 참사 1주기]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310241507001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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