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9 참사 1주기…“뼈 아리는 심정” 가슴 치는 피해자들
의료비 4억2000만원 지원…심리지원은 1인당 3회 수준
“의료비 지원 통보 문자로만…적극 안내했어야”
복지부 “의료비 지원, 치료 필요할 때까지 하겠다”
이태원 참사 49일째인 지난해 12월16일 오후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인근 광장에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와 10·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가 마련한 시민분향소를 찾은 한 시민이 희생자들 영정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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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숙(63)씨는 1년 전 오늘, 이태원에서 아들인 김현수(사망 당시 29)씨를 떠나보냈다. “창자가 녹아내리고 뼈가 아리는 심정을 아냐”고 물은 김씨는 참사 후 한 달 만에 7kg가 빠졌다고 했다. 그래도 정부가 진료비 지원을 한 덕에 병원에서 외상 치료와 심리지원을 받고 있다. 김씨는 “1년이 지났지만 1kg가 겨우 쪘다. 회복은 아직 먼 것 같다”며 쓴웃음을 보였다.
29일, 159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 지났다. 부상자, 출동 구급대원, 유가족은 여전히 트라우마로 고통 받고 있다. 정부가 이들에게 의료비를 지원하고 있으나, 제대로 안내되지 않아 신청을 하지 못한 경우도 있어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쿠키뉴스가 조명희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보건복지부의 ‘이태원 사고 의료비 지원 현황’ 자료에 따르면 10·29 참사 이후 올해 10월12일까지 321명에게 총 4억2000만원의 의료비를 지원했다. 단순 계산했을 때 1인당 약 130만8311원을 지원받은 셈이다.
지원 대상자별로 살펴보면 △사상자 247명 3억8700만원(2163건) △사상자 가족 58명 2300만원(570건) △정신의학적 진료가 필요한 사람 16명 1000만원(219건) 등 의료비를 지원했다.
심리지원은 평균 1인당 3회 수준으로 이뤄졌다. ‘심리지원 상담 현황’ 자료 따르면 지난해 10월30일부터 올해 10월5일까지 진행된 정신건강 상담은 7141건이다. 1인당 평균 3.2회에 불과했다. 유가족은 1인당 3.7회(1880건), 부상자는 2.3회(1070건)였다. 목격자와 대응인력 및 일반 국민은 1인당 3.1회(4063건)로 나타났다.
정부가 지난해 10월31일 서울광장 분향소의 심리지원 부스에서 제공한 키트. 사진=김은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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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회에 그치는 심리지원으론 피해자들의 일상회복은 요원해 보인다. 당시 친구를 잃은 김모(26)씨는 “대학 동기가 이태원에서 할로윈 파티 즐기고 있는 사진을 SNS에 올려 ‘부럽다’고 DM을 보냈는데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이어 “개인적으론 참사 이후 사람이 많은 곳엔 가지 못하고 있다. 출근할 때도 새벽부터 나가 사람 많은 상황을 피하려 한다”고 트라우마를 호소했다.
참사 당일 현장 출동한 소방관들의 트라우마도 여전하다.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호소하는 동료들도 여럿이다. 여전히 그날의 기억과 희생자에 대한 죄책감이 따라다닌다. 현장 출동 당사자인 인천 남동소방서 119안전센터 소속 유병혁(31)대원도 비슷한 고충을 털어놨다. 그는 “동료들은 아직도 이태원 얘기가 나오면 서럽게 운다”고 토로했다. 심리지원도 그에게 큰 도움이 되진 못했다. 유 대원은 “심리지원 상담을 2번 정도 받았다. 상담사가 근무 중에 찾아오는 바람에, 제대로 된 상담은 어려웠다”고 말했다.
초기 대응이 미흡하거나 재심사 절차가 복잡해 신청을 하지 않은 피해자도 있었다. 희생자 최유진(22)씨의 아버지 최정주(54)씨는 “심리지원을 받고 싶다고 하자 정부 측에서 ‘(지원 여부를) 어떻게 알았냐, 따로 들은 바가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아마 초기 대응 시점이라 제대로 안내를 못 받은 거 같다”면서 “그 이후 심리지원을 따로 신청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태원역 1번 출구 주변에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조문객이 묵념하고 있다. 이태원 참사(梨泰院慘事), 10·29 참사(十二九慘事)는 2022년 10월29일 22시15분 경, 용산구 이태원동에서 발생한 대형 압사 사고이다. 당시 이태원에는 할로윈을 앞두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으며, 해밀톤호텔 앞 좁은 골목길로 인파가 밀리면서 159명의 내외국인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 사진=임형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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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들의 일상 회복을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온다. 조인영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10·29이태원참사TF 소속 변호사는 “이태원 참사 지원의 가장 큰 문제는 피해자들에게 지원 안내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조 변호사에 따르면 의료·심리 지원 안내는 연락처가 확보된 유족에게만 ‘문자’로 안내됐다. 별도의 개별 안내는 없었다. 문자를 확인한 뒤 따로 문의한 유족에 한해서만 지원이 이뤄진 탓에 신청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조 변호사는 “일괄적으로 문자를 보내 안내하는 방식 대신 연락처를 확보해 당사자의 의사를 확인하는 작업이 꼭 필요하다”며 “만약 지원을 받고 있지 않다면 이유를 파악하고, 문제점을 개선하거나 개별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책 실효성을 거두기 위해선 장기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미국의 경우 911테러 트라우마 피해자에 대한 지원 기간이 2090년까지”라며 “참사 트라우마는 단기간에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태원 참사 유족 및 생존자에 대한 지원이 중장기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피해자들이 의료비 때문에 부담과 고통을 겪지 않도록 기간을 제한하지 않겠다고 전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의료비 지원은 의학적으로 치료가 필요할 때까지 이어질 예정”이라고 말했다.
최은희·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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