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3일 김진표 국회의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선거제 개편 협의체 발족식'에서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와 정치개혁특별위원회 간사와 기념촬영을 마치고 자리를 안내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정개특위 간사, 송기헌 원내수석, 김 의장, 이양수 국민의힘 원내수석, 김상훈 정개특위 간사.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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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4·10 총선이 5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여야의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출 방식 협상이 또 다시 난수 해독에 가까운 길로 빠지고 있다. 전국을 몇 개로 나눈 뒤 해당 권역별로 따로 뽑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겠다는 게 핵심인데, 구체적 방식이 여전히 확정되지 않아 “최악의 비례대표”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21대 총선의 혼란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5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여야는 현재의 비례대표 정원인 47석을 유지하되 전국을 북부·중부·남부 등 3개 권역으로 나눠 각 권역별로 비례대표를 뽑자는 데는 큰 틀의 접근을 이뤘다. 문제는 이 3개의 권역을 어떻게 구성하느냐다. 서울·경기·인천(수도권, 북부), 대전·세종·충남·충북(충청권, 중부), 부산·울산·경남(PK, 남부)의 권역은 사실상 정해져 있지만 강원과 광주·전남·전북(호남), 대구·경북(TK)을 어느 권역에 붙이느냐에 따라 권역별 비례대표의 시나리오가 다양하게 존재한다. 각 시나리오에 따라 여야의 이해득실도 달라져 정치권에선 “비례대표에서도 게리맨더링(gerrymandering) 현상이 생기게 될 판”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게리맨더링이란 특정 후보·정당에 유리하게 선거구를 자의적으로 쪼개고 붙이는 걸 말하는데, 매번 국회의원 지역구를 조정할 때마다 생기는 일이 이젠 비례대표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얘기다.
당장 인구 153만명(이하 인구수는 올해 9월 기준)인 강원도를 어디에 붙일지부터가 쟁점이 될 전망이다. 수도권인 북부에 합할지, 충청권과 TK가 있는 중부에 붙일지에 따라 여야의 득실이 달라진다. 강원도는 여권 성향이, 수도권은 야권 성향이 상대적으로 강한 현실에서 국민의힘은 강원도가 수도권에 묶이는 걸 두려워한다. 거대한 수도권의 표심에 밀려 강원도의 보수 성향 표가 사실상 사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칫 수도권에서 정권심판 바람이 불면 강원도 비례의석은 전멸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다. 국민의힘으로선 강원도와 TK를 중부로 묶어 확실한 우세를 점하고 싶지만, 고성·화천·철원 등 최북단 도시가 모여있는 강원을 북부가 아닌 중부로 분류하는 순간 게리맨더링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김영옥 기자 |
“권역별 비례제도 도입의 목표가 지역주의 해소인 만큼 호남과 TK를 중부권으로 묶어 같은 권역에 둬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국민의힘이 난색을 표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호남에서 12.75%를 득표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보수 후보의 득표율로는 최고치였지만 경쟁자였던 이재명 당시 민주당 후보가 TK에서 얻은 21.6%(대구)와 23.8%(경북) 득표율에 비하면 한참 낮은 수준이다. TK(493만명)와 호남(498만명) 인구가 비슷한 걸 고려하면 두 지역을 단순 합하면 야권이 훨씬 유리하게 될 가능성이 확실히 크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여당 입장에선 수도권뿐 아니라 중부권까지 모두 험지가 돼버려 보수 의석만 뺏기게 된다는 결론에 이른다”고 손사래를 쳤다. 영남 중에서도 TK에 비해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PK(766만명)를 어느 지역과 묶을지를 두고도 여야가 치열한 눈치작전을 펼 게 분명하다.
사실 47석의 비례 의석을 북·중·남부에 어떻게 배분하느냐 자체도 보통 문제가 아니다. 수도권 인구가 가장 많은 만큼 북부에 20~25석가량을 배분하고, 중부와 남부도 인구 비례에 따라 의석을 나누면 된다는 의견이 많기는 하다. 하지만 그럴 경우 지역구 의석에 이어 비례대표 의석까지 수도권 집중화 현상이 가속화 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여권 관계자는 “수도권에만 너무 많은 의석이 배정되면 문제”라며 “지방의 대표성을 강화하기 위해 수도권 쪽 의석을 지방으로 나눠줘야 한다”고 말했다.
권역별 비례대표 도입에는 어느 정도 합의를 이뤘지만 21대 총선 직전에 도입된 연동형 비례대표제(지역구 의석수가 정당 득표율보다 적을 때 비례대표 의석수의 50%를 보충하는 방식)를 어떻게 할지를 두고 “연동형을 확대해야 한다”는 야당과 “과거처럼 단순히 비례대표 득표율로 의석을 정하는 병립형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여당의 주장은 여전히 맞서고 있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지난해 8월 18일 회의를 여는 모습. 김성룡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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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 결과에 따라 유권자들은 연동형과 권역별이 융합된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란 난수표를 접하게 될 수도 있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일반 유권자 중에 이 제도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표를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싶다”며 “유권자 스스로 내가 행사하는 한 표가 어떻게 소비되는지 예상할 수 없게 되는 부작용이 있다”고 지적했다.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결론이 날 경우 지난 2020년 총선을 넘어서는 수준으로 거대 양당이 ‘위성정당’을 이용한 꼼수를 더 강화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양당이 정당법을 개정해 지역 정당을 만들 경우, 지역 경제 발전 등 여러 명분으로 지역 위성정당을 만들어 비례대표 제도를 왜곡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여야는 양당 원내수석부대표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간사가 참여하는 ‘2+2 협의체’를 통해 선거제 협상을 이어가고 있지만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최악의 경우 협상 타결이 올해를 넘길 가능성도 제기된다.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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