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심 일으키기에 충분" 징역 10개월
대법, 피해자 보호 강화하는 판례 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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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정도가 가볍더라도 수차례 반복하면 피해자의 불안감을 가중시켜 처벌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스토킹 범죄 실태를 감안해 처벌을 강화하는 법원 추세를 반영한 것으로, 그만큼 피해자 보호 영역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게 징역 10개월을 선고하고, 스토킹 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를 명령한 원심을 지난달 27일 확정했다.
A씨는 지난해 10~11월 6차례에 걸쳐 전처와 자녀 4명이 거주하는 집을 찾아가 공포심을 불러일으킨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집 현관문 앞에서 전처와 자녀들을 기다리거나 현관문을 수차례 두드리고 초인종을 여러 번 누르면서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전처가 없을 때는 자녀들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해 집 안으로 들어간 것으로 조사됐다. A씨 측은 "현관문 앞에 찾아가는 등의 행위는 공포심을 유발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하급심 재판부는 A씨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일단 "피해자가 현실적으로 공포심을 느꼈는지와 관계없이 각 혐의가 객관적으로 상대방에게 공포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면 스토킹범죄가 성립된다"고 설명했다. 또 피고인이 전처 강간 등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만료되기 전에 범행이 이뤄졌고, 전처가 매번 그를 경찰에 신고했던 점 등을 감안해 실형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유죄 판결은 유지하되, 일부 혐의에 대해선 판단을 달리했다. A씨의 일부 범행을 따로 놓고 봤을 때 형사처벌을 받을 만큼 공포심을 일으킬 만한 행위는 아니라고 봤다. 평소 피고인이 전처와 자녀들과 교류해 왔고, 전처가 출동한 경찰관에게도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밝힌 사실 등이 고려됐다.
다만 "비교적 가벼운 스토킹이라도 반복되면 상대방이 느끼는 공포심이 비약적으로 증폭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이유로 유죄를 확정했다. 대법원은 "A씨는 1개월 남짓의 짧은 기간에 6차례나 스토킹을 했다"며 "단기간에 반복된 범행 탓에 누적적·포괄적으로 공포심을 일으킨 것"이라고 밝혔다.
대법원은 2021년 10월 스토킹처벌법 시행 후 피해자를 두껍게 보호하는 방향으로 판례를 형성하고 있다. 올해 5월에는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 데도 반복적으로 전화를 걸어 '부재중 전화' 기록을 남긴 경우도 형사처벌 대상이라고 판단했다. 앞서 2월에는 혐의가 같더라도 스토킹 재범 우려 등이 소명되면 피의자의 접근금지 잠정조치 기간을 늘릴 수 있다고 결정하기도 했다.
접근금지 잠정조치는 스토킹 피해신고 접수 뒤에도 가해자가 계속 피해자에게 접근해 재범 우려가 큰 경우 법원이 수사단계에서 △서면경고(1호) △100m 이내 접근금지(2호) △휴대폰 등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금지(3호) △유치장이나 구치소 유치(4호) 등을 명령하는 걸 말한다. 1·2·3호는 회당 3개월, 4호는 1개월을 초과할 수 없다. 연장은 최대 두 번까지 가능하다.
박준규 기자 ssangkka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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