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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 (토)

[스프] 가자지구는 '창살 없는 무덤'이 돼 버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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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퍼민트] 증오와 복수, 폭력의 악순환을 끊는 길 (글: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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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퍼민트 NewsPeppermint

"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엄선해 전하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입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스프에서 뉴욕타임스 칼럼을 번역하고, 그 배경과 맥락에 관한 자세한 해설을 함께 제공합니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해 한국 밖의 사건, 소식, 논의를 열심히 읽고 풀어 전달해 온 경험을 살려,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글을 쓰겠습니다. (글: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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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 시작된 지 12일째입니다. 해묵은 원한과 증오의 역사가 또다시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주변 국가의 우려와 만류를 뿌리치고, 가자지구에 지상군을 투입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지난 7일 기습 공격에 당한 것의 몇 배를 앙갚음할 계획을 무를 생각이 조금도 없어 보입니다. 하마스도 모든 공격의 책임을 점령군 이스라엘 탓으로 돌리며, 결사 항전 의지를 다지고 있습니다.

이미 지난 7일 공격으로 숨진 이스라엘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람이 가자지구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여기에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보급되는 수도, 전기, 연료, 식량을 모두 차단하거나 제한하면서 최악의 인도적 위기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습니다.

글을 쓰고 있는 오늘(18일)은 내내 가자지구에 있는 아힐 아랍 병원이 로켓포 공격을 받아 민간인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뉴스가 1면을 장식했습니다. 처음에는 이스라엘군이 병원을 폭격했다는 하마스 측 주장이 그대로 실렸지만, 이스라엘 정부가 포격 사실을 부인하면서 공격의 책임 소재를 둘러싼 양측의 공방이 뉴스가 됐습니다.

익명의 미국 정보당국 관계자는 하마스와 동맹 관계에 있는 또 다른 지하드 그룹 팔레스타인 이슬람 성전(PIJ)에서 쏘아 올린 로켓이 오작동으로 가자지구 병원에 떨어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정확한 사실은 어쩌면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양측 모두 거짓말을 할 유인도, 거짓말을 한 전력도 충분히 많습니다.

끔찍한 공격이 누구 소행인지 밝히는 일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다는 사실이 훨씬 더 큰 문제입니다. 증오는 증오를 낳고, 폭력이 더 큰 폭력을 부르는 악순환의 고리는 끊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모두 상대방이 저지른 잔인무도한 범죄를 내세우며 복수를 다짐합니다. 어느 한쪽 편을 드는 것도 위험하지만, 그렇다고 둘 다 잘못이 있다, 평화를 위해 한 발씩 양보하라고 이야기하기엔 이미 늦었습니다. 가자지구에서는 지금 이 순간도 사람들이 계속 죽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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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타임스 칼럼 보기 : 미국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점령을 묵인해선 안 되는 이유

라시드 칼리디 교수가 쓴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나아가 아랍 국가들 사이의 해묵은 원한이 어디서 시작됐고, 어떻게 지금에 이르렀는지를 자세히 서술한 책입니다. 방대한 역사적 사실과 자료를 모은 책으로, 지난 글에서 요약해 소개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분쟁사에 관해 자세한 맥락과 배경을 이해하고 싶은 분들은 읽어보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칼리디 교수는 뉴욕타임스에 보낸 칼럼에서 책과 비슷한 해법을 제안합니다. 폭력을 방조하거나 부추기는 건 물론 바람직한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어떻게든 공통분모를 찾고 대화를 시작해 양측이 공존할 수 있는 법을 찾아야 합니다.

서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면



이스라엘 건국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겐 유대인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살던 곳에서 내쫓기고, 핍박받고 심지어 살해당하는 고난의 역사의 시작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이스라엘이 공개적으로 인정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적어도 대다수 아랍 사람은 그렇게 생각한다는 사실을 인지해야만 대화의 길이 열립니다.

뉴욕타임스 데일리 팟캐스트는 지난 16일,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이 한창인 상황 속에 가자지구에 갇힌 사람들의 인터뷰를 실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꼭 들었으면 하는 인터뷰입니다. 가자지구 북부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 적지 않은 이가 이스라엘군의 대피 명령을 따르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가자지구 남쪽으로 가봤자, 머물 곳도 없고 위험천만하기는 매한가지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뇌리에는 나크바의 기억이 또렷하게 남아 있고, 그 뒤에도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한다며 팔레스타인 땅을 끊임없이 빼앗은 게 이스라엘이니, 이들이 하는 말을 들을 이유도 없습니다.

전화로 연결한 가자지구 주민 한 명은 가자지구 여기저기 흩어져 살던 가족들이 한데 모여 잠을 청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언제 어디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전쟁통에 가족이 죽더라도 한데 모여 죽는 편이 차라리 낫겠다고 뜻을 모았다며, 어차피 도망칠 곳도 없다고 무기력하게 말했습니다. 가자지구에 있는 친척을 방문했다가 오도 가도 못하고 전쟁통 한가운데 발이 묶인 한 팔레스타인계 미국인은 절규했습니다.

"사람들이 가자지구를 창살 없는 감옥(open air prison)이라고 부르죠. 이번에 와서 보니, 창살 없는 감옥보다 창살 없는 무덤(open air grave)에 가까워요. 사람들이 숨을 쉬고 움직인다고 살아있는 걸까요? 아무런 목적도 없고, 어차피 죽은 목숨처럼 공포에 떠는 것밖에 할 게 없는데? 다들 숨만 붙어 있지, 살아있다고 할 수 없어요."

이스라엘이 사실상 팔레스타인을 식민 지배한 거나 다름없다는 사실이 지난 7일 일으킨 하마스의 끔찍한 기습 공격을 정당화해 주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공격 이후 이스라엘의 대응만 보더라도 역효과가 작지 않습니다. 칼리디도 하마스와 같은 방식의 무장 투쟁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가뜩이나 이스라엘에 우호적인 미국이나 유럽을 위시한 국제사회의 여론이 하마스와 팔레스타인에 등을 돌리게 돼서 문제입니다.

가자지구 사람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다루기 사흘 전에 뉴욕타임스 데일리 팟캐스트는 가자지구에서 가까운 키부츠 베리라는 마을에 사는 이스라엘 시민을 인터뷰했습니다. 골란이란 이름의 이스라엘 시민은 하마스 대원들이 마을에 쳐들어온 7일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했습니다. 이웃 사람 중에 하마스에 살해된 사람도 있고, 인질로 잡혀간 사람도 있습니다. 골란에겐 자식이 4명 있는데, 어린 쌍둥이 딸 두 명은 다행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모르지만, 각각 고등학생, 중학생인 첫째, 둘째는 친구를 잃었습니다. 골란이 인터뷰 마지막에 한 말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저는 가자지구 가까이 살면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사이가 좋지 않은 걸 물론 알았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이야기를 잘해서 서로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거란 믿음을 간직하고 살았어요. 지금까지는요, 그런데 이번 일을 겪고 난 뒤 그 믿음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과연 내 눈앞에서 본 테러리스트들과 같은 하늘 아래 사는 게 가능할까? 깊은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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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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