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청소년, 호기심에 보고 트라우마 등 후유증 우려
영상 접근 막기 어려워…"가정·학교서 대화·상담 필요"
중학생 이모(14)양은 친구를 통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 영상을 보게 됐다.
호기심으로 본 영상에는 잔혹한 총격과 납치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그 후 일상생활을 하다가도 문득 영상 속 총성과 비명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이양은 "울고 있는 사람들이 끌려가는 모습이나 총에 맞아 쓰러져 있는 장면들이 자꾸 생각난다"며 "평소와 같이 생활하다가도 불현듯 영상이 떠올라 무섭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혹시 '우리나라에서도 전쟁이 일어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에 걱정이 된다"고도 했다.
아이 안고 달리는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주민 |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기습공격을 감행한 당시의 영상이 소셜미디어(SNS) '엑스'(X·옛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으로 일파만파 퍼지면서 우연히 혹은 호기심에 영상을 접하는 어린이와 청소년이 늘고 있다.
축제를 즐기던 이스라엘 민간인과 관광객이 납치되는 모습, 민간인이 총탄을 피해 공포에 질린 얼굴로 도망가는 모습 등을 여과 없이 담고 있는 영상을 너나없이 접하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전쟁 국면에 접어들면서 하마스의 공격 영상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으로 사상자가 속출하고 삶의 터전이 폐허가 돼버린 영상도 SNS에 적지 않다.
성인도 몸서리치며 잔상에서 헤어 나오기 어려운 영상을 충격에 민감한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날 것 그대로 시청하게 되면서 후유증을 남길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학부모들의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서울 용산구에서 여덟 살 딸을 키우고 있는 배모(35)씨는 "평소라면 그냥 가지고 놀라고 쥐여줬을 핸드폰도 건네주기 조심스럽다"며 "단순한 폭격만이 아니더라도 총탄이 오가거나 사람이 강제로 끌려가는 모습을 보면 아이가 크게 충격을 받을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권준수 서울대학교 대학원 뇌인지과학과 교수는 "영상 시청으로 인해 트라우마가 올 가능성이 크다. 급성스트레스 반응 혹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될 수도 있고 가슴이 뛰고 숨쉬기 어렵거나 하는 교감신경 활성화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SNS에서 본 장면이 반복적으로 생각날 수 있어서 가급적이면 영상에 노출되지 않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도 "폭력적인 장면을 생생하게 보여주면 아이들이 심리적으로 불안감을 느끼거나 정서적으로 우울해질 수도 있다. 폭력 성향이 학습될 수도 있어서 반복적인 노출을 줄여야 한다"고 했다.
가자지구 인접 도로서 기동하는 이스라엘군 탱크 |
아이들이 잔혹한 영상에 노출되는 것을 차단하기 어렵다면 학부모와 학교의 상세한 설명과 관심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완정 인하대 아동심리학과 교수는 "디지털 사회에서 청소년이 다양한 동영상에 접근하는 것을 체계적으로 막기는 어렵다"며 "가정에서 기준을 마련해 아이가 스스로 잔인한 영상을 못보게끔 하거나 전쟁 등에 관해 가정 내에서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도 "부모가 아이에게 영상에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지, 전쟁에 대해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지 잘 설명해주는 게 좋다"며 "학교에서도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크고 작은 트라우마가 있을 수 있다는 전제하에 상담 프로그램을 개설하거나 토론 문화를 마련할 수 있다"고 했다.
jungl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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