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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우리들의 문화재 이야기

[굽이굽이 별천지] ⑭ 전통은 살리고 새로움은 더하고…600년 이은 고성 왕곡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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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자형·겹집 구조 '지혜로운 겨울나기'…6·25, 대형산불 피해 38가구 거주

내부 현대식 개조해 숙박시설 활용, 연간 3만2천여명 방문…고민은 '청년 부족'

"주민 없는 마을은 빈껍데기…고향 살리고 삶의 가치 실현" 변화 움직임도

[※ 편집자 주 = 낯섦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의 발걸음은 길을 만들고, 그 길은 다시 사람을 모아 마을을 만듭니다. 강원도의 산과 강, 바다와 호수를 따라 굽이치는 길 끝에는 반짝이는 주민들의 삶이 모여 있습니다. 북적이던 발걸음은 지역소멸이라는 화두와 함께 잦아들고 있지만, 마을은 그 생생함을 되찾고자 새로운 사연들을 만들어갑니다. 길과 마을에 깃든 27개의 이야기를 연합뉴스가 1년 동안 격주로 소개합니다.]

연합뉴스

가옥과 가옥 사이를 분리하는 텃밭과 초가집
[촬영 강태현]


(강원 고성=연합뉴스) 강태현 기자 = 옛것 그대로, 시간이 멈춘 듯한 강원 고성의 한 마을.

하늘 높이 치솟은 장승과 전통 가옥들 사이로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 속 한장면으로 들어간 느낌마저 든다.

고성 죽왕면 오봉1리에 있는 왕곡마을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북방식 가옥이 보존된 전통 한옥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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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곡마을 입구에 세워진 장승
[촬영 강태현]


14세기 고려말 두문동 72현 중 한 사람인 홍문박사 함부열이 이성계의 조선 건국에 반대해 이곳에서 낙향 은거했는데, 그의 후손들이 대대로 마을에서 생활하기 시작하면서 취락이 형성됐다.

이후 양근(강릉) 함씨와 강릉 최씨가 집성촌을 이뤄 현재까지 이어져 왔다.

19세기를 전후해 건축된 북방식 전통 가옥들이 원형 그대로 보존돼온 덕에 왕곡마을은 전통 민속 마을로서의 역사적, 학술 가치를 인정받아 2000년 1월 국가민속문화재 제235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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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자 구조의 왕곡마을 기와 내부
[촬영 강태현]


◇ 바람 불고 눈 쌓여도 끄떡없다…가옥에 깃든 선조들의 지혜

바람이 거세고 눈이 많은 강원 북부지역의 특성상 집 마당에 높은 담벼락이 세워져 있을 것 같지만 왕곡마을에는 대문이나 담장이 있는 집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햇볕을 충분히 받고 적설로 인한 고립을 방지하고자 하는 선조들의 지혜가 깃들어 있다.

내부로 발길을 옮기면 안방, 도장방, 사랑방, 마루, 부엌이 한 건물 안에 나란히 배치돼 있는데, 이 역시 겨울이 춥고 긴 산간 지역에서 생활이 편리하게 한 구조다.

부엌 안으로는 외양간이 붙어 있는 'ㄱ'자형 겹집 구조이기 때문에 가축우리에서도 온기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다.

완전히 개방된 앞마당과 달리 담장으로 둘러친 뒷마당은 공간을 확보해 효과적으로 북서풍을 차단했다.

이 같은 기와집 30채와 함께 마을에는 20여채의 초가도 옛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다.

초가 역시 바람에 짚이 날아가지 않도록 지붕을 단단하게 줄로 엮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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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 모양의 굴뚝
[촬영 강태현]


가옥 특징을 살펴보면 그야말로 '추위와의 전쟁'이 마을의 가장 큰 관심사였음이 엿보인다.

사랑방에 난방을 위한 아궁이를 따로 만들고, '불씨 보호'만을 목적으로 한 별도의 공간을 만들었을 정도로 이 지역의 겨울바람은 드셌다.

지붕에 쌓이는 눈으로부터 건물을 보호하기 위해 회칠을 하지 않고 산자를 엮은 채로 서까래가 그대로 드러나게 집을 짓기도 했다.

마을에는 집집이 모양이 제각각인 항아리 모양의 굴뚝도 보인다.

일반적인 굴뚝과는 달리 진흙과 기와를 쌓아 올리고 항아리를 엎어 굴뚝으로 사용했는데, 굴뚝으로 나온 불길이 초가에 옮겨붙지 않도록 하고 열기를 집 내부로 다시 들여보내기 위해, 이 같은 모양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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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곡마을 초가집
[촬영 강태현]


◇ 초가집에 아직도 사람이 산다고?…외형은 유지하고 내부는 현대식으로

왕곡마을은 지형적인 특징과 풍수지리적 요인 등으로 수백 년간 전란과 화마(火魔)의 피해가 없던 '길지'로도 꼽힌다.

조효선 왕곡마을 해설사는 "왕곡마을은 6.25전쟁 이후 정전협정에 따라 한국의 영토가 된 군사분계선 이남 지역은 '수복지구'에 해당한다"며 "이곳에도 포탄이 세 개 떨어졌었는데 모두 불발탄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1996년 고성군 죽왕면에서 발화한 산불 때도 봄철 태풍급 강풍인 '양간지풍'(襄杆之風)을 타고 마을 턱 밑까지 불길이 번졌다"며 "그러다 갑자기 역풍이 불어 큰 피해를 면한 적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온갖 화를 피해 갔던 덕이었을까. 600년 세월을 이어온 전통가옥에는 38가구 50여명의 주민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일부는 다른 지역에 거주하며 마을을 오가기도 하지만, 주민 대부분은 농사하거나 가축을 기르며 마을에 정주하고 있다.

마을 안길을 따라 달큼한 향기가 나는 곳으로 발길을 옮기다 보면 마을에서 수십 년간 한과를 만들어 파는 주민도 만날 수 있다.

'어떻게 초가집에서 살 수 있을까' 싶다가도 가옥 내부에 마련된 TV, 냉장고, 따뜻한 장판 등을 마주하면 그런 생각이 쏙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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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와 에어컨 등이 놓인 전통 가옥 내부
[촬영 강태현]


국가민속문화재로 등록된 마을 특성상 외관은 고성군에서 관리하지만, 내부는 사유지이기 때문에 개인이 자유롭게 구조 등을 개조할 수 있다.

그야말로 있을 건 다 있으면서도 전통 한옥의 정취도 느낄 수 있다는 장점 덕분에 마을 길목 곳곳에는 관광객들도 적잖이 눈에 띈다.

고성군은 더 이상 주민이 살지 않는 가옥 8채를 매입해 숙박시설로 개조하고 왕곡마을 보존회에 운영과 관리를 위탁하고 있다.

4∼10월에 운영하는 숙박 가옥에는 적게는 4명부터 많게는 15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다.

조 해설사는 "가족 단위 개인 관광객 등 매년 2만명가량이 꾸준히 이곳을 찾는다"며 "지난해에도 숙박시설 이용객을 포함해 총 3만2천명이 마을을 방문했다"고 말했다.

추수가 끝나면 백발이 성성한 70∼80대 주민들이 1년에 한 번씩 초가이엉(짚 등으로 엮어 만든 지붕 재료) 잇기를 하며 가옥을 관리하기도 한다.

보기와는 달리 능숙한 손놀림이 필요한 작업이기 때문에 마을 외관을 관리해야 하는 주체인 군에서 어르신들에게 노동의 대가를 지급하고 유지·보수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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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자형 구조의 기와집
[촬영 강태현]


◇ '뿌리' 찾아 마을로 돌아온 청년…"고향에서 비로소 자아 찾아"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왕곡마을이지만, 이 같은 전통을 지킬 수 있는 청년들이 부족하다는 게 가장 큰 고민거리다.

사람이 사라진 곳에 그간 쌓아온 마을의 역사와 문화, 전통도 함께 사라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까지 운영한 전통 떡 찧기 체험을 비롯해 제기차기·투호 던지기·딱지치기·굴렁쇠 등 민속놀이 체험, 정미소 답사·짚풀공예·전통의상 체험 등 전통문화체험은 인력 부족으로 인해 더 이상 운영할 수 없게 됐다.

조 해설사는 "고령화로 상설 체험 부스를 운영하고 관리할 사람이 부족하다"며 "적정 인원이 필요한데 노쇠하신 분들이 빠지게 되면서 참여가 저조해 올해부터는 아예 운영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고 털어놨다.

이런 상황에서 마을로 돌아와 고향을 살리고, 자신만의 삶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청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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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화인당' 사장 김다인(40)씨
[촬영 강태현]


마을 안에서 한옥스테이와 찻집을 운영하는 김다인(40)씨는 약 14년간 외국계 항공사에서 화물영업 일을 하다 코로나19 직후인 2020년 고향으로 돌아왔다.

원해서 시작한 해외 생활이었지만 타향살이는 쉽지 않았고 번아웃까지 찾아왔다.

고향이 그리웠던 김씨는 '정말 하고 싶은 걸 찾자'는 마음으로 마을에 돌아와 1960∼1980년대 '담뱃집'으로 불리며 슈퍼마켓 역할을 했던 마을 외가댁에서 '나'를 찾는 치유를 시작하기로 하고 카페를 열었다.

단순히 관광객을 상대로한 상업 목적의 카페가 아니라 사람과 세상을 이해하는 '명리학'을 바탕으로 상처받은 마음에 공감과 위로를 건네고, 민속생활 양식의 스토리텔링을 통해 지역의 힘을 기르고 싶다는 게 김씨의 목표였다.

"제가 나고 자란 곳이 문화재 마을로써 활용 가치가 크다고 생각했어요. 마을을 오가는 이들과 가옥에 관한 이야기, 사람 사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했죠. 마을이라는 게 주민이 살지 않으면 빈껍데기 같은 게 아닐까 싶어요. 결국 주민들이 마을의 영혼을 불어넣는다고 생각합니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한옥 인테리어 업자를 구하기 어려워 블로그와 카페 게시글을 찾아가며 단열부터 개조까지 스스로 해야 했고, 어느 날은 사기까지 당할 뻔한 적도 있었다.

민속 마을이라는 특징을 살리기 위해 내부도 최대한 전통 느낌을 살려 외양간은 화장실로 개조하고 소 여물통은 화분 받침으로 쓰는 등 오래된 물건을 활용해 단장한 끝에 2021년 6월 가게 문을 열 수 있었다.

마을에서 시작한 새로운 도전은 김씨 삶을 완전히 바꿔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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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화인당'에 놓인 현판
[촬영 강태현]


김씨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서로의 생각과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지금의 삶이 너무 좋다"며 "뿌리를 찾으니 그로부터 힘을 얻는다. 지금에 와서야 비로소 자아를 찾은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는 마을 유휴시설인 '저잣거리' 공간에서 전통 차·수제 조청 등을 만들어 팔고, 왕곡마을 굿즈를 제작해 판매·전시하고 싶다는 포부를 전했다.

"판매 수익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치 있는 왕곡마을 창작물을 만들고 싶어요. 최종 목표는 마을에서 머물면서 심리상담도 받을 수 있는 힐링센터를 세우고 싶습니다. 자기 삶의 방향이나 세상을 보는 관점을 정리할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요. 이런 일을 저 혼자 하기에는 벅찰 것 같아요. 그래서 지역에 있는 청년 지역 사업가 등과도 꾸준히 교류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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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곡마을 기와집
[촬영 강태현]


taet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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