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07 (월)

이슈 이태원 참사

"'이런 사람' 전쟁 영상 보지 마세요"…정신과 의사의 경고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정심교의 내몸읽기]
[이·팔 전쟁] 급성 스트레스 반응과 PTSD 대처하려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의 무력 충돌로 현지에 발이 묶였던 우리 국민 가운데 192명이 지난 11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무사히 귀국했다. 외교부에 따르면 12일 현재 이스라엘에 체류 중인 우리 국민은 장기 체류자 540여 명, 여행객 등 단기 체류자 180여 명을 포함해 약 720명이다.

전쟁통을 뚫고 온 이들, 아직 전쟁통에 남아있는 이들 모두 급성 스트레스 장애 등 정신 건강에 시달릴 수 있다고 의사들은 경고한다. 특히 전쟁 지역에서 건물 폭발, 참수, 훼손된 시신 등 잔혹한 상황을 직접 목격했다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발병할 소지를 키운다. 일반 국민 중에도 이런 상황을 뉴스로 접하기만 해도 정신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한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의 조언으로, 이·팔 전쟁 상황에서 정신 건강을 지키는 방법을 알아본다.

머니투데이

(라파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11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가자 지구 라파에서 이스라엘 군을 향해 로켓을 발사하고 있다. 2023.10.12 ⓒ AFP=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탈출자… 불안·초조 감정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전쟁이 발발한 지역을 벗어나 무사히 귀국한 192명은 당분간 매우 불안하거나 초조한 감정을 불현듯 느낄 수 있다. 한양대구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대호 교수는 "누구나 전쟁 같은 평범하지 않은 상황을 경험하면 정신적으로 불편한 반응이 나타나게 마련"이라며 "그런 자기 모습을 보며 놀라거나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충격적인 상황을 마주한 직후 나타나는 정신적 불편감은 '급성 스트레스 반응'이라고 한다.

급성 스트레스 반응은 비정상적인 환경에 대해 몸에서 나타나는 비정상적인 반응이다. 모순되지만, 이런 비정상적인 반응은 '정상'이라는 게 그의 조언이다.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으며, 대부분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좋아진다. 안심하고, 일상생활을 그대로 누리는 게 중요하다. 단, 안정을 추슬러야 하는 지금 시기에 전쟁 현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상·뉴스에 노출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전쟁 지역에서 대피하던 당시의 상황을 연상하게 하는 상황은 될 수 있으면 최대한 피해야 한다.

머니투데이

(인천공항=뉴스1) 장수영 기자 = 이스라엘에 단기 체류중이던 국민들이 11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외교부에 따르면 이날 귀국한 이스라엘 단기체류자는 570명 중 192명이다. 202310.11/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귀국 이후 정신적으로 불편한 점이 생기면 가족, 가까운 친지와 터놓고 이야기하는 게 도움 된다. 이들 중엔 전쟁 지역에 있었다는 자체만으로 큰 공포심을 느낀 사람이 많다. 현재 한국에 무사히 도착했어도 전쟁터에 있을 때의 긴장감이 떠올라 급성 스트레스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

귀국 이후 당분간은 과도한 각성을 이완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숨을 천천히 깊게 들이마시고, 다시 천천히 깊게 내쉬는 호흡 방식이 추천된다. 가천대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조서은 교수는 "특히 들숨보다 날숨에 더 집중하면 뇌 속 변연계의 각성 체계를 훈련할 수 있고, 부교감 신경을 활성화해 각성 상태에 제동을 걸 수 있다"고 조언했다. 급성 스트레스 반응이 있을 때 눈을 감고, 어깨의 힘을 뺀 상태에서 편안하게 바른 자세로 앉아 복식 호흡, 심호흡을 해보자. 점진적 근육 이완법, 호흡법 모두 신체가 전반적으로 이완 상태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 밖에도 옆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몸을 움직이기, 좋은 향수 맡기, 부드러운 천 만지기, 반려동물 쳐다보기 등으로 오감을 자극하면 과각성을 제어하는 데 효과적이다.

급성 스트레스 반응은 한 달까지 이어져도 정상으로 친다. 하지만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어도 불편한 증상이 매우 심해 일상을 누리지 못할 정도이거나, 불편한 증상이 한 달 넘게 이어지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상담하는 게 권장된다.

머니투데이

(비에리 키부츠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11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기습 공격을 받은 가자 인근 비에리 키부츠의 산산조각이 난 주택이 보인다. 2023.10.12 ⓒ AFP=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남은 자… 처참한 상황 목격했다면 PTSD 대비해야

이스라엘 현지에 체류한 우리 국민 720명은 안전부터 확보해야 한다. 정신건강을 논하기 이전에 주변 환경부터 안전해야 해서다. 안전한 곳으로 피신했지만 의도치 않게 처참한 상황을 목격했다면 극도의 트라우마에 시달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예컨대 참수 장면이나 심하게 훼손된 시신, 건물이 폭격 되는 모습, 무너진 건물 잔해에 깔린 사람 등을 목격했을 때다.

실제로 지난 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침투한 이스라엘 집단농장 곳곳에서 잔혹하게 살해된 영유아 시신이 잇따라 발견됐다. 일부 유아 시신은 참수되거나 불에 탄 모습으로 발견됐다. 김대호 교수는 "PTSD는 일반적으로 교통사고 수준의 상황을 목격한 것만으로는 진단하기 어렵고 해당 사건을 경험했을 때 진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전쟁의 처참한 상황을 직접 목격했다면 그것만으로도 PTSD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PTSD는 어떤 기전으로 나타날까? 뇌 안쪽 위치한 편도체에서 촉발한 공포·불안은 감정을 조절하는 전두엽이 통제한다. 하지만 전쟁·재난 등으로 정신적 외상을 입으면 그 사건을 상기하는 자극에 편도체가 과잉 반응한다. 이때 편도체를 제어해야 하는 전두엽이 제 역할을 담당하지 못하면 과도한 불안에 시달리고 악몽을 꾸는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통계적으로 똑같은 사건에서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 가운데 10%에서 PTSD가 나타난다. 빠르면 일주일 후에도 나타날 수 있지만, 수년에서 수십 년이 흐른 뒤에야 PTSD가 나타나는 사례도 보고된다. 예컨대 6·25 전쟁, 베트남 전쟁의 참전용사가 이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을 뉴스로 접한 후 PTSD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미 다른 사건으로 PTSD를 진단받았거나 불안장애·우울증 같은 정신질환 병력이 있는 사람은 이번 전쟁 영상을 보지 말아야 하는 '금기 대상'으로 꼽힌다. 조서은 교수는 "만약 이태원 참사 때 PTSD를 경험한 사람이 이번 전쟁을 알리는 뉴스를 보다가 폭격 된 건물 잔해에 깔린 영상을 접하기라도 하면 PTSD 증상이 더 악화할 것"이라며 "이런 영상에 노출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머니투데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전쟁터에서 충격적인 사건을 당했다면 그 사람에게 먼저 제공해야 할 건 정서적인 지지, 그 사건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용기를 북돋는 것이다. 또 이 상황을 잘 이겨내도록 이완 요법 등의 적응 방법을 교육하는 것도 좋은 치료법이다.

PTSD의 치료법 중 하나가 약물요법이다. SSRI(selective serotonin reuptake inhibitor)가 먼저 고려되는 약물로써, 이 약물은 우울증, 다른 불안장애의 증상과 비슷한 증상뿐만 아니라 PTSD 고유의 증상도 호전시킨다. 이 밖에도 정신 역동적 정신치료, 행동치료, 인지치료, 최면 요법 등이 PTSD 환자의 심리요법으로 활용된다.

PTSD 환자가 치료받지 않는 경우 30%는 저절로 정상으로 돌아오고, 40% 정도는 가벼운 증상을 지속해서 경험한다. 20% 정도는 중등도의 증상을 지속해서 경험하며 10%는 증상의 호전이 없고 심지어는 증상이 나빠진다. 일반적으로 나이가 매우 어리거나 반대로 고령에서 발생한 경우 중장년층보다 더 어려움을 경험한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