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12일 국회에서 열리는 최고위원회의에 심각한 표정으로 발언을 하고 있다. 국민의힘 김태우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후보는 지난 11일 치러진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진교훈 후보에 패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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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차가운 민심을 확인한 국민의힘에서 12일 쇄신과 체질 개선 요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예상을 넘어선 대패에 윤석열 대통령도 ‘인사청문회 도중 퇴장’과 여러 의혹에 휩싸인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를 자진사퇴 형식으로 정리하면서 여론을 살피는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대대적인 국정기조 전환이나, 수직적 대통령실-당 관계 개선 없이는 근본적인 변화를 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기현 대표는 이날 “결과를 존중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여 성찰하면서 더욱 분골쇄신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선거 패인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총선 승리를 위한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겠다. 상대적으로 우리 당 약세인 지역과 수도권 등에서 국민의 마음을 더 많이 얻을 수 있도록 맞춤형 대안을 마련하겠다”며 당대표로서 내년에 임할 것을 밝혔다. 전날 김태우 국민의힘 후보는 진교훈 더불어민주당 강서구청장 당선자에게 17.15%포인트 차로 대패했다. 윤재옥 원내대표도 “이번 선거는 전국 기초단체 중 한곳에 불과하나, 국민 전체 민심으로 여기고 그 뜻을 깊이 잘 헤아려가겠다”고 했다.
당 지도부는 △총선기획단 △인재영입위원회 △혁신위원회(가칭) 출범 등 세가지 기구를 띄워 조기 총선 체제로 들어가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김 대표는 이날 소속 의원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민심의 질책을 소중히 받들어 쇄신을 위한 기구를 조속히 발족하고 당의 전략과 정책 방향도 재점검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오는 15일 의원총회를 열어 의견을 모을 예정이다.
대통령실도 잠시 자세를 낮추는 모습을 보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초유의 인사청문회 도중 퇴장과 주식 파킹, 청문회 위증 의혹 등에 휩싸였던 김행 여가부 장관 후보자를 자진사퇴 형식으로 정리했다. 김 후보자는 오후 2시께 입장문을 내어 “당원으로서 선당후사의 자세로 후보자직을 자진해서 사퇴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김 후보자의 사퇴 발표 전 여당 지도부는 대통령실에 김 후보자가 사퇴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은 보궐선거 전까지만 해도 여론에 아랑곳없이 김 후보자를 임명하겠다는 기류였지만 싸늘한 여론에 강행을 포기한 것이다.
당 안에서는 윤석열 정부 출범 뒤 처음 겪는 ‘참패’를 두고 수면 아래 있던 위기감과 비판이 중구난방식으로 분출했다. 이대로는 내년 4월 총선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특히 좀체 표출되지 않던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불만과 국정기조 수정 요구가 적지 않았다. 한 중진 의원은 한겨레에 “첫번째는 윤 대통령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도 위기의식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른 수도권 의원은 “당뿐만 아니라 정부도 완전히 새롭게 달라져야 한다”며 “이제는 야당과 대립각을 세워 더는 얻을 것이 없다. 민생 비전을 제시하고 국민을 설득하고 소통하는 스탠스를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유승민 전 의원은 한국방송(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한마디로 윤석열 대통령의 패배다. 대법원 확정판결 받은 (김태우) 후보를 3개월 만에 사면, 복권시켜서 선거에 내보낸 건 대통령의 의지”라고 말했다.
대통령실과 당의 상명하복식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말도 나왔다. 한 수도권 의원은 “대통령실에서 잘못해 민심이 안 좋고, 방향 수정이 필요할 때 당대표가 대통령을 찾아가 이건 안 된다고 하고 대통령이 수용하는 등 역할 분담을 해야 하는데 그런 게 없다”며 “당의 생각과 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면 다음 22대 국회의원 총회장에 나타나는 의원 얼굴들은 전부 바뀌어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달리 ‘근본적인 변화’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실은 쇄신이 절실하지 않은 듯한 분위기다. 한 참모는 “패배를 용산과 엮는 것은 억지스러운 것이다. 용산은 (총선이 다가옴에 따라) 자연스럽게 달라질 텐데 자꾸 강제로 뭘 하라고 하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고 말했다. 일부에서 제기되는 참모진 개편 가능성에 관해 ‘총선 계기’일 뿐 ‘선거 패배’와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은 것이다.
특히 대통령실은 정권 심판론이라는 해석에는 강한 불쾌감을 보였다. 참모들은 “서울 강서구청장 하나 갖고 정권 심판론이라고 하는 그런 오버가 어디 있느냐”, “전국구 선거도 아니고, 지난 총선과 비슷한 수준으로 졌는데 용산에 책임을 떠넘기는 건 확대해석”이라고 말했다. 이런 기류를 반영하듯 대통령실은 이날 “정부는 어떠한 선거 결과든지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이라는 원칙론적인 입장만 냈다.
대통령실은 당 지도체제 교체에도 부정적이다. 한 대통령실 관계자는 “김기현 대표는 우리와 한 세트라 킬하기가 쉽지 않다. (현 지도부 체제에서) 총선 모드로 전환하는 게 최선이다”라고 말했다. 의원들도 김기현 대표 체제를 대체할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가능성은 일찌감치 배제하는 모습이다. 한 중진 의원은 “국민에게 점수를 따려면 친윤이면 안 되고, 윤 대통령과 소통하려면 친윤이어야 하는데 두가지를 충족하기는 어렵다. 대안이 마땅찮다”고 말했다. 당 지도부 핵심 관계자도 “구청장 선거로 지도부가 그만두면, 선거 때마다 지도부가 그만둬야 하냐”고 말했다. 이날 비공개 최고위에서는 서울, 수도권 출신 최고위원들을 중심으로 “(사무총장 등) 임명직이 전원 사퇴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지만 결정에 이르진 못했다.
전문가들은 용산의 변화 없이는 환골탈태가 어렵다고 내다봤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대통령실의 국정 운영 철학, 기조 방향이 대대적으로 수정 보완돼야 한다”며 “당이 굉장히 힘이 없고, 용산에 종속돼 있는데 이걸 바꾸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손현수 기자 boysoo@hani.co.kr 강재구 기자 j9@hani.co.kr 배지현 기자 bee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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