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현지시간) 이스라엘 공군의 보복 폭격을 받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화염과 연기가 치솟고 있다. EPA=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9일(현지시간)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날 오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11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은 전 거래일보다 4%가량 상승한 배럴당 86달러에 거래됐다. 북해산 브렌트유의 경우 한때 전 거래일보다 5% 넘게 오른 89달러를 찍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전쟁으로 인한 유가 상승이 일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 원유 생산지가 아니기 때문에 원유 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아서다. 석유·가스 시장 전문가인 반다나 하리는 “유가가 조건반사적으로 오를 수 있지만, 사태가 더 번지지 않고 중동 지역의 석유·가스 공급에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점이 인식되면 가격이 가라앉을 것”으로 내다봤다.
문제는 전쟁이 장기화하거나 다른 중동 지역으로 확전할 때다. 이란이 하마스의 공격을 지원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로 충돌이 확대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이스라엘이 이란에 대해 보복할 수 있고, 일각에서는 미국과 이란의 대리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까지 나온다. 에너지 트레이더인 피에르 안두랜드 헤지펀드 매니저는 “이란이 하마스의 배후에 있다는 사실이 확실해지면 미국이 이란 원유 수출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면서 전 세계 원유 공급이 줄어들 가능성이 커진다”고 짚었다.
사우디아라비아 감산 여파 등으로 치솟았던 WTI와 브렌트유 가격은 ‘고금리 장기화’로 세계 경제가 둔화할 것이라는 우려에 이달 들어 10달러 넘게 내렸다. 미국과 관계 해빙에 들어간 이란이 원유 수출을 늘린 것도 유가 하락에 한몫했다. 그런데 미국이 이란 원유 수출 제재를 다시 강화하면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는 이상으로 치솟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미 국무부는 이란이 지시했거나 배후에 있다는 증거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이란 정부도 “우리는 관여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각국 중앙은행은 국제유가가 급등해 새로운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 글로벌 회계 컨설팅 기업 마자스의 조지 라가리아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세계 경제의 가장 큰 리스크는 ‘제3의 인플레이션 파고(wave)’가 일어날 가능성”이라며 “중동 정세에 긴장이 높아지면 에너지 가격이 상승해, 인플레이션을 통제하려는 중앙은행들의 노력을 약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치솟았던 물가 상승률을 억제할 수 있다는 각국의 자신감에도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것이다.
9일 서울의 한 주유소에 게시된 휘발유·경유 가격. 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특히 물가 상승 억제와 연착륙을 동시에 목표한 Fed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유가 상승에 따라 물가가 오르면 기준금리를 ‘더 높게, 더 오래(higher for longer)’ 유지할 필요성이 커지지만, 동시에 고금리에 경기 경착륙 우려 가능성도 덩달아 커진 상황이어서다. 카림 바스타 트리플아이자산운용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전쟁은 인플레이션과 성장 모두에 리스크”라면서 “물가 상승과 성장 둔화 중 어느 쪽이 더 큰 골칫거리인지 Fed의 판단을 필요로 한다”고 분석했다.
불안한 중동 정세가 당장 아시아 증시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았다. 한글날 휴일로 한국 증시가 휴장한 이날 중국 상해종합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0.44% 하락한 3096.92에 장을 마쳤다. 중국 증시는 국경절 연휴로 지난달 28일 후 이날 처음 거래를 재개했다. 반면 홍콩 항셍지수(HSCEI)는 0.18% 오른 1만7517.4에 마감했고, 대만 가권지수도 소폭 상승(0.41%)했다. 일본 증시는 체육의 날로 휴장했다.
안심하긴 이르다. 미국 증시의 ‘공포지수’라 불리는 변동성지수(VIX)는 이날 한국 시간으로 오후 4시 45분 기준 전 거래일 대비 11.58% 상승한 19.47포인트로 올라섰다. 전쟁 위기가 고조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질 것이란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전쟁은 국내 증시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시계 제로’ 상태로 이끌고 있다. 지난 추석 연휴 직후 ‘미국발 국채 쇼크’로 발생한 급락세가 회복되기도 전에 새로운 악재가 부상하면서 연휴 이후 10일 재개장하는 코스피는 2400선도 위협받을 전망이다. 서상영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국제 유가 급등이 인플레이션을 자극해 Fed의 강경한 긴축 기조가 확대될 수 있고, 이는 주식·채권 시장 변동성 확대로 이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서지원‧강광우 기자 seo.jiwon2@joongang.co.kr
▶ 중앙일보 / '페이스북' 친구추가
▶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