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판에 빨간색 글씨로 ‘중지’ 수두룩
“포항행 표 없어 동대구 가서 버스 타야”
대란 없었지만 곳곳서 “너무 불편” 호소
일부 지하철 지연… “한참 지나도 안 와”
전국철도노동조합(철도노조) 총파업 첫날인 14일 서울역에서 만난 권모(83)씨는 전광판을 보며 허탈해했다. 전광판에는 오후 1시30분부터 오후 2시 사이 출발이 예정된 열차 6개 중 4개에 빨간 글씨로 ‘중지’라고 적혀 있었다.
전국철도노동조합이 파업에 들어간 14일 오후 서울역 전광판에 열차 운행 중지를 알리는 문구가 표시되어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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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씨는 이날 서울에 있는 한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뒤 영덕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오전 11시50분쯤 서울역에 도착했다. 기차표를 예매하려고 하니 역 직원은 “오후 12시38분 기차는 자리가 없고, 12시57분 기차는 파업으로 운영이 중지됐다”는 소식을 전했다. 결국 권씨는 오후 1시50분 기차표를 예매해 꼬박 2시간을 서울역에서 대기했다. 이마저도 평소 다니는 포항행이 아닌 동대구행이었다.
권씨는 평소 서울에서 포항으로 KTX를 타고 간 뒤 포항에서 영덕으로 무궁화호를 탔지만, 이날은 표가 없는 탓에 우선 KTX를 타고 동대구로 간 다음 동대구에서 시외버스를 타야 했다. 권씨는 “뉴스를 보고 철도노조가 파업한다는 걸 알고 있긴 했지만, 너무 불편하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철도노조 파업이 시작된 이날, 큰 혼란은 없었지만 줄어든 열차 운행으로 인한 승객 불편은 피하지 못했다. 영등포역도 서울역과 상황은 비슷했다. 이날 오후 2시쯤 서울 영등포역의 열차 출발 안내창에는 붉은색 ‘운행 중지’ 표시 문구가 깜박였다. 오후 2시부터 3시30분 사이 새마을호 부산행·광주행 각 1대와 무궁화호 부산행 1대의 운행이 중지됐다.
전국철도노동조합 한시 파업 첫날인 14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수도권 철도차량정비단 인근에 열차가 정차해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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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소식을 사전에 듣지 못하고 현장에서 열차표를 구매하려던 시민들은 1∼2시간씩 기다리며 지루함을 드러냈다. 충남 홍성행 열차를 기다리고 있던 송덕근(78)씨는 “열차가 오후 1시43분에 있다고 해서 왔는데 취소되고 2시46분 차로 바뀌었다”며 “노사 분쟁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지만, 불편하긴 하다”고 토로했다.
노조의 입장이 이해된다는 반응도 있었다. 병원 방문을 위해 서울을 찾은 김모(70)씨는 “아들이 갑자기 열차가 취소됐다고 알려줘서 표를 반납하고 다시 끊었다”며 “3시간 넘게 기다리고 있는데 노조와 회사가 소통을 잘해서 국민을 편하게 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북 정읍행 열차를 기다리는 70대 이모씨는 “서울에 사는 남편에게 반찬을 가져다주려고 일주일에 한 번은 기차를 탄다”며 “자주 있는 일도 아니고 다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기다려야지 별 수 있나”라고 말했다.
지하철 지연도 있었다. 서울 지하철 1호선 창동역에서 오후 1시41분 출발하는 지하철은 오후 2시5분이 돼서야 출발했다. 창동역 역사 안에는 지하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가득했고 전광판에는 ‘전동열차 운행조정 및 열차지연 예상’ 안내가 나왔다. 1호선 이용객인 백모(28)씨는 “볼일이 있어 창동역까지 왔고 원래 집은 개봉역(1호선)인데 지금도 그렇고 집에서 여기까지 올 때도 평소보다 30분 먼저 집에서 나왔는데도 지하철을 한참 기다렸다”며 “평소면 개봉역에서 두 정거장 떨어진 구로행 열차는 안 타는데 이날은 하도 열차가 안 와 사람들이 다 그거라도 타더라”라고 전했다.
14일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가 숭례문 앞에서 출정식을 열고 철도민영화 정책 중단 등을 촉구하는 연좌 농성을 벌이고 있다. 남정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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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파업이 전국에서 진행됨에 따라 불편을 겪은 건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오전 대전역은 파업 예고와 예매표 취소 안내 등으로 큰 혼잡은 없었지만 대전역 현장 예매 창구에는 표를 사려고 기다리는 시민들 30여명이 줄을 섰다. 창구 옆 대형 전광판과 모니터에는 ‘파업에 따른 열차 시각과 운행 상황을 확인해 달라’는 문구가 계속해서 나왔다.
서울로 출장을 가려 했던 한 시민은 표가 취소돼 발을 동동 굴렀다. 김모(51)씨는 “열차표가 취소돼 대체 교통을 찾고 있는데 회의 시간에 못 맞출 것 같다”고 했다. 일부 시민들은 열차 운행 중단 소식을 듣고 황급히 역사를 빠져나갔다. 곽모(71)씨는 “가족 행사가 있어 대전에 왔다가 집에 가려는데 진주까지 기차가 안 간다고 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딸과 통화 중”이라고 말했다.
철도노조는 △수서행 KTX 도입 △4조 2교대 전면 시행 △성실 교섭 등을 요구하며 이날 오전 9시부터 18일 오전 9시까지 총파업한다. 노조는 이날 낮 12시 지하철 1호선 서울역 3번 출구 앞 세종대로에서 노조 추산 5000명(경찰 추산 3500명) 규모의 집회를 열고 “수서행 KTX는 시민 절대다수의 요구라는 점에서 철도노동자의 총파업은 정당하다”며 “정부 정책이라며 명분 없는 파업이라고 왜곡하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희연·박유빈·김나현 기자, 대전=강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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