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검찰 및 법조계에 따르면, 전날 쌍방울 그룹의 대북송금과 관련해 제3자 뇌물제공 혐의의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한 이 대표는 일부 질문은 “진술서로 갈음하겠다”며 구체적인 답변을 거부했지만, 일부 사안에 대해선 지난 네 차례 검찰 조사 때와 달리 비교적 자신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진술했다고 한다.
이 대표 측은 “피의자 신문조서가 120페이지 정도 됐는데 30~40페이지쯤 보던 중 (진술) 취지가 반영되지 않은 부분이 너무 많았다”며 “보완하는 데도 한계가 있을 것 같고 더 이상 열람이 의미 없는 것 같다고 판단했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가 조서에 서명·날인을 거부해 조사는 사실상 무효가 됐다.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는 피의자의 서명·날인이 없으면 재판에서 증거로 쓸 수 없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날 조사에서 이 대표가 쌍방울 그룹이 경기도를 대신해 스마트팜 지원비 500만 달러와 경기지사 방북 비용 300만 달러 등 총 800만 달러를 북한에 전달한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등을 캐물을 예정이었다. 사전에 150쪽 분량의 질문지를 준비했지만, 단식 10일 차인 이 대표의 건강 상태를 고려해 핵심 질문만 추렸다고 한다. 이 대표는 검찰 조사 전 모든 혐의를 부인하는 8쪽 분량의 서면 진술서를 검찰에 제출했다.
이 대표는 검찰 조사가 끝난 뒤 “예상했던 대로 (검찰이) 증거를 단 하나도 제시하지 못했다. 김성태(전 쌍방울 그룹 회장)의 말이나 아무런 근거가 되지 않는 정황들, 도정 관련 이야기로 긴 시간을 보냈다”며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이런 내용으로 범죄를 조작해 보겠다는 정치 검찰에 연민을 느낀다”고 말했다.
반면에 검찰은 전날 “피의자(이 대표)는 조서 열람 도중 자신의 진술이 누락됐다고 억지를 부리고, 정작 어느 부분이 누락됐는지에 대해서는 대답하지도 않은 채 조서에 서명·날인도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퇴실했다”는 입장문을 냈다.
이 대표의 날인 거부로 9월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 사건과 묶어 구속영장을 청구하려는 검찰의 계획에도 차질이 생겼다. 검찰은 12일 재소환을 통보했지만, 이 대표는 “별도 날짜를 협의하겠다”며 거부했다. 검찰 측은 “추석 전 구속영장이 청구되는 것을 막으려고 조서 날인을 거부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 대표는 정기국회가 개회된 이상 검찰이 영장을 청구해도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통과돼야 법원의 영장실질심사를 받을 수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9월만 넘기면 10월은 국감 등으로 본회의가 열리지 않고 그사이 체포동의안이 접수되고 12월에나 표결이 가능하다는 얘기도 돌고 있다. 전주혜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내고 “이 대표가 단식을 핑계로 병원에 입원해 영장 청구를 막겠다는 심산 아니냐”고 주장했다.
검찰은 “12일까지 출석해 나머지 피의자 조사를 받으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이 대표가 거부할 경우 추가 조사 없이 곧바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최모란·박현준 기자 choi.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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