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스피커] '착한 엘리트 장애인'에서 '싸움꾼 장애인'으로... 활동가 변재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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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이질감 없는 문장 앞에 한 단어가 붙으면 낯설어집니다. 바로 '장애인'입니다. 문장이 현실로 옮겨진 풍경을 눈앞에 마주하면 마음은 더 복잡해집니다.
'오전 7시 30분 출근길 혜화역 승강장, 나와 함께 지하철을 타기 위해 탑승장에 모인 한 무리의 휠체어 장애인들'.
지난해부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벌인 시위의 명칭이 바로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였습니다. 전장연은 9월 정기국회까지 '휴전'을 선포한 상태입니다. 시위를 잠깐 멈추고, 이동권 예산이 제대로 반영되는지 지켜보겠다고 했습니다. 바꿔 말하면 책임 있는 정치 주체의 행보에 따라 언제든지 출근길 갈등이 재점화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순종'에서 '불복종' 으로…장애시민 변재원의 탄생
누군가에겐 숨 쉬듯 당연한 권리가 '요구의 주체'에 따라 논란의 소재가 됐습니다.
'비장애인이 무정차로 지나갔던' 장애인의 시민권 탑승 요구에 대해서는 침묵하던 언론도 출근길 탑승 시위를 둘러싼 갈등에 대해선 떠들썩하게 보도했습니다. 시위의 목적보다 '떼쓰는 장애인' vs '시민 불편' 같은 대립 양상에 집중한 보도가 많았습니다.
"왜 전장연 장애인들은 욕을 먹으면서 법을 어깁니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모호했습니다.
'순종'에서 '불복종'으로. 오랜 시간 '우수한 일등 시민'이 되기 위해 노력했던 '엘리트 장애인' 변재원이 '나쁜 장애인'으로 탄생하는 삶의 궤적을 따라가 보기로 했습니다. 한예종, 서울대, 구글코리아를 거쳐 전장연 정책국장으로 활동한 변재원의 서사에 한국 사회가 놓치고 있던 질문과 답이 있지 않을까. 변재원 작가는 지난달 〈장애시민 불복종〉 (창비)이라는 책을 냈습니다.
'장애인들이 왜 데모를 하는 거지?'…한국 사회에 던져진 가장 윤리적인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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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출간한 지 한 달 만에 3쇄까지 찍으셨다고요. 책이 반향을 일으키는 이유가 뭘까요?
A. 저도 그게 좀 궁금해요. 지금 정치사회면 지형도를 정리해 봐도 사실 이 책은 크게 주목받기 어려운 책이에요. 아마 장애인 당사자 분들이 많이 사서 읽겠지만 그것보다도 저는 작년 한 해 한국 사회에서 가장 많은 질문, 윤리적인 질문을 던졌던 게 무엇일까라고 생각하면 한 줄로 '장애인들이 왜 데모를 하는 거지?'였던 것 같아요. 장애인들이 왜 거리로 나선 걸까. 왜 그렇게 아스팔트에서 투쟁이라는 무서운 단어를 외치는 걸까.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았다고 추측해요.
실제 전장연 지하철 시위의 발단은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설 명절, 아들을 보러 가던 장애인 노부부가 오이도역 지하철 리프트에서 추락해 1명이 숨지고 1명이 크게 다쳤습니다. 장애인들이 '비장애인이 이용하는 버스와 지하철을 막아서는 방식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게 이때부터입니다.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라'는 외침이 공허한 메아리로 울린 지 20년, 2021년 겨울부터 마침내 출근길 지하철에 타게 됐습니다.
Q. 장애인들이 거리로 나선 게 최근의 일만은 아니잖아요. 왜 최근 들어 이슈가 됐을까요?
A. 장애운동은 88년 서울 올림픽 때도 있었고요. 2천 년대 초반, 21세기가 시작될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 의제화가 된 건 2022년부터예요. 한 40년을 켜켜이 묵혀 있다가 작년에 '빵'하고 터진 거죠.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이준석 전 국민의힘 당대표와 박경석 전장연 대표 간의 방송토론이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이후에도 새 정부가 '시민단체 이권 카르텔과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전장연이 언급되기도 했죠. 정치권의 언어 속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발음된 건 최근 2년의 일인 것 같아요. 좀 아이러니하죠. 일단 의제화가 이뤄졌다는 점에서는 좋은 것 같지만, 마치 장애인들이 호주머니 챙기는 식의 오염된 사회운동처럼 비추어지는 측면에 대해선 걱정이 많죠.
'생존 게임'이 된 사회에서 최약체로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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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한예종에서 서울대학원, 구글코리아 인턴까지, 소위 '착한 장애인' 시절 성공에 대한 욕망이 컸다고 고백하기도 했죠.
A. 장애를 갖고 산다는 건요 약간 이런 거예요. 예를 들면 이 사회가 커다란 서바이벌 게임, 오징어 게임 같은 거라고 생각을 한다면 저는 그 안에서 최약체인 거예요. 그래서 저한테 어떤 손에 무기랄까요? 뭔가 대단한 게 쥐어지지 않으면 저는 다음 게임에서 탈락할 게 분명한 사람인 거죠.
탈락하지 않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어요. 첫 번째는 무기를 쥐고 살아남아서 다음 게임까지 올라가는 거. 두 번째는 다 같이 그 게임을 포기해 버리면 되는 거예요. 무슨 말이냐면 참여자들이 '왜 누굴 죽여야만 누구를 살 수 있냐'라는 그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버리면 되는 거거든요. 이런 비유가 굉장히 우화적이고 유치하다고 느끼시는 분들도 있지만 저는 그게 현실이라고 봐요.
'착한 장애인 시절'의 저는 '내 손에 무기를 쥐자 전략'을 택했던 거예요. 한국사회에서 내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를 고민해 보면 제일 쉬운 건 더 좋은 학력과 더 좋은 직업. 이거 두 가지 정도면 제가 봤을 때 최고의 무기를 쥐는 거거든요. 돈을 진짜 많이 주는 곳에 가는 것과 명예로움을 얻는 것이 오랜 시간 동안 제 삶의 큰 생존의 전략이었던 것 같아요. 저는 그런 걸 꽤 잘 따라가는 사람이었어요.
작가 변재원은 '나 같은 장애인이 몫을 챙기는 길은 투쟁이 아니라 성공에 있다'고 믿었던 청년이었습니다. 그러다 석사 학위 논문 주제로 〈장애인의 공공시설 접근성〉을 택했고, '몇 번 들르고 말 공공시설'에 대해 진정으로 악성 민원을 넣는 장애인을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생의 행로를 바꿨습니다.
Q. 한예종과 구글코리아 시절의 변재원은 어땠나요.
A. 한예종 다닐 때 공공기관 에너지 절약 정책이라고 해서 건물이 5층이면 엘리베이터가 2층과 4층에만 섰던 시절이 있어요. 근데 장애학생들은 이러면 수업을 들을 수가 없거든요. 그 과정에서 저는 원치 않아도 문제제기를 해야만 하는 거예요. 구글에서도 마찬가지죠. 당시 '헤비도어 이슈'라고 했는데 보안과 화재예방을 이유로 문이 무거웠어요. 문제는 제가 출근을 했는데 문이 무거워 열 수가 없어서 사무실에 못 들어가는 상황이 생기는 거예요. 이 무거운 문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를 가지고 한바탕 소동이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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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소위 '엘리트 장애인' 시절에도 싸울 수밖에 없었군요.
A. 밖에서 봤을 때는 평온해 보였겠지만 그때부터 어떤 씨앗이 있었던 것 같아요. 대학생들 로망이 배낭여행이잖아요. 근데 제가 라오스를 갔다가 귀국하는 비행기를 타려는데 항공사에서 서약서를 내미는 거예요. '비행기 운항에 있어서 당신의 존재로 차질이 생길 시 모든 금전적인 문제를 배상한다'라는 내용이었어요. 이 서약서에 사인을 해야만 탈 수 있다고. 내가 목발을 짚는다는 이유로 모든 비행기 운항 차질에 대해 배상할 책임은 저는 없다고 보거든요.
그래서 항의를 했더니 항공사 답변은 간단해요. '그러면 타지 마세요'라고. 정말 안 타려고 보니 나중에 비자 문제가 생기더라고요. 울며 겨자 먹기로 비행기를 타긴 탔죠. 서약서 사인하는 곳에 사유를 쓰게 돼 있는데 '모르겠음. 설마 장애인이라는 이유로?'라고 썼죠. 정말 모르겠으니까.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의 존재는 이런 식이에요. 첫 번째는 일단 거부한다. 두 번째는 그래 받아줄게, 하지만 조건부 승인이라고 할까요. '내가 널 받아줌으로써 생기는 모든 책임은 다 너의 거야.' 그게 왜 장애인에게만 요구되는가라고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렇게 합리적이지는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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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전장연 활동 전과 후, 가장 달라진 관점은 무엇인가요.
A. 어떤 사회적 약자성을 갖고 사는 사람들의 선택지는 결국 두 가지인 것 같아요. 소위 '주류층'이 되기 위해서 극복하거나 혹은 연대하거나. 극복의 전략을 택하면 단순히 내가 더 좋아지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해요. 다른 사람을 짓밟고 올라가야 내가 빛이 나고 탁월해지는 거죠. 이걸 택하면 제 삶을 경유하는 단어는 '이기심, 경쟁, 승리' 같은 단어들이에요. 그러니 세상이 다 전쟁터가 되는 거예요. 상대를 미워하는 마음, 시기질투하는 마음도 함께 오죠.
그런데 연대의 전략을 택하면 관점이 달라져요. 상대가 잘 된다는 건, 그러니까 나와 같이 연대한 사람이 잘 된다는 건 나도 같이 잘 될 가능성이 굉장히 커지는 거예요. 연대의 관점에서 보면 '내 팀원이 잘 되고 있네, 나도 잘 되겠네'라는 생각을 갖게 될 수 있는 거예요. 공동체적 사고가 좀 더 가능해지거든요. 그때부터 저에게 떠오르는 단어들은 '협력, 연대, 공동체, 사회' 같은 것들이었어요.
Q. 한국사회에서 장애운동은 어떻게 인식되고 있다고 보시나요.
A. 인종, 성차별 반대 같은 민권운동이 겪었던 그 역사적 갈등들을 장애 운동도 그대로 겪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 장애인 너희들 이렇게 도움이 필요한 거 알겠어. 근데 너희 왜 그런 고집을 부려? 왜 하필 시위를 하냐?"라는 질문은 장애인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고 역사 속 소수자가 숱한 권리를 찾아가는 과정 중에 발생한 잡음이라고 생각해요.
누가 법을 어기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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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왜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면서" 혹은 "왜 불법적인 방법으로 싸우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어떻게 답변할 수 있을까요.
A. 장애인들이 집회시위 하는 것이 정말 못마땅한 사람도 있죠. 하지만 그 속에는 정말 이해하고 싶어서 질문하는 사람도 있다고 보거든요. 역설적이지만 장애인들이 지하철을 타려고 하는 순간부터 이동권 논의가 시작돼요. 더 정확히 말하면, 장애인의 출근길 시위로 비장애인 시민들이 피해를 호소하는 순간부터 이동권 정책에 대한 법과 예산이 논의되기 시작해요.
이게 정말 딜레마 같은 상황인 거예요. 백날 장애인끼리 모여서 국회의원 사무실에 가고, 대통령실 앞에 가서 "장애인 이동권은 중요합니다. 교통약자 지하철, 엘리베이터, 저상버스 설치해 주세요"라고 외쳐도 세상이 안 움직여요. 그런데 비장애인 승객이 "이거 언제까지 우리 이러고 살아야 되냐, 국가가 나서서 해결을 하라"고 얘기하는 순간부터 국가가 움직이기 시작해요.
전장연은 지난 7월 "장애인 특별교통수단 차량 1대당 운전원 2명, 하루 16시간 이상 운행 요구에 대해 수용" 입장을 공문으로 밝힌 경기도에 한해서 '출근길 지하철 탑승 투쟁'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동권 예상 증액에 대한 약속을 명문화했기 때문입니다. 이밖에도 전장연 홈페이지에는 '출근길 투쟁 시위'를 알리는 공지보다 '선전전으로 대체'한다거나 정치권의 응답을 '기다린다'는 보도자료가 숱하게 많았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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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희원 기자 jessy@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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