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8억 원이 미집행 예산으로 남아
한도 30만 원에도 평균 19만 원 사용
졸속 증액 추진에 선별 복지가 원인
서울 시내 한 건물에 설치되어 있는 전력량계.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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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지난겨울 '난방비 대란' 당시 확보한 취약계층 지원 예산 가운데 1,200억 원을 남긴 것으로 확인됐다. 전체 예산의 3분의 1에 달하는 규모다. 지원 대상을 확대해달라는 요구를 무시한 채 지원 한도만 늘리며 '수요 예측'에 실패한 결과다. 비상 상황에서 정부의 신속한 예산 증액이 중요하지만, 사회적 요구를 무시하고 일방적인 지원 방침을 고수할 경우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21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7월 말 기준 전년도 에너지바우처 예산 3,904억 원 가운데 2,646억 원(67.8%)만 집행된 것으로 집계됐다. 사업 종료까지 불과 2개월 남짓 남았는데, 미집행 예산이 1,258억 원에 달하는 것이다. 에너지바우처는 취약계층에 전기, 도시가스, 연탄 등 에너지를 구입할 수 있는 이용권(바우처)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지난해 정부는 에너지 물가 상승에 따라 난방비 폭탄이 예고되자, 바우처 예산을 1,126억 원에서 3,904억 원으로 대폭 늘렸다.
정부는 1,000억 원의 예비비까지 투입해 긴급 예산을 편성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1,200억 원이 남았다. 지원하겠다는 정부의 의욕과 실제 어디에 예산을 사용할지 살피는 사용계획이 서로 어긋난 셈이다. 집행 내역을 봤더니, 지원대상 가구 97%가 바우처를 신청했지만 동절기 바우처 증액 단가(30만4,000원)에 훨씬 못 미치는 평균 19만6,000원만 사용됐다. 가구당 사용한 만큼만 바우처를 사용할 수 있는 방식인데, 한도만 늘리다 보니 남은 돈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에너지) 공급사의 요금 할인 혜택이 확대돼 실사용액이 줄어든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당시 정부가 에너지바우처 지원 확대를 발표하자 이에 맞춰 지원대상을 넓히자는 요구가 봇물을 이뤘다. 기존 바우처는 △생계·의료·주거·교육 급여를 받으면서 △노인 등 더위·추위 민감계층에 해당되는 경우(113만5,000가구)에만 지급됐다. 기초수급 가구(241만9,000가구) 규모에 비춰 절반에도 못 미친다. 당시 민주당은 소득 하위 80%까지 지원금을 지급하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부는 '선별 복지'를 고집했다. 지난해 5월 '생계·의료 급여 대상자'로 국한된 소득 조건을 '주거·교육 급여 대상자'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한시적으로 범위를 넓히는 것에 그쳤다. 그 결과 지원대상이 85만7,000가구에서 113만5,000가구로 늘었다.
그뿐이었다. 난방비 대란이 한창이던 올 1월 대통령실은 대상 확대 요구가 빗발치자 "빠른 시일 내에 관계부처에서 논의해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한시적 조치를 영구화한 것 외에 추가 조치는 없었다.
김용민 의원은 "정부가 집행 가능성도 보지 않고 졸속으로 예산을 편성하더니, 증액한 예산을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무더기로 남겼다"며 "정부·여당이 난방비 참사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져야 한다"고 말했다.
우태경 기자 taek0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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