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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9 (화)

썰렁한 수산물시장… “국산이 대부분인데 사는 사람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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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원전 오염수 불안 ‘때아닌 한파’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지역의 오염수 유출 소식이 전해진 23일 오후 서울 동작구 노량진수산시장. 식사하러 오는 사람들로 붐벼야 할 점심시간에도 시장은 조용했다. 간간이 손님이 지나가도 상인들은 붙잡지 않았고, 흥정하는 풍경도 보기 어려웠다. 1000여개 가게가 있는 시장에는 손님보다 상인이 더 많았다.

30년째 이곳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해태상회에 일본산 수산물은 가리비밖에 없다. 사장 김태숙씨(62)는 “국산이 대부분인데도 사는 사람이 없다”며 “지난밤 12시부터 지금까지 15시간 동안 열댓 명이나 왔나, 장사하면서 이런 적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단골들도 반은 발길을 끊었고, 단골 적은 가게는 망한 곳도 많다. 해산물 진열하는 데 쓰는 하루 얼음값 3만5000원도 못 번다”고 말했다.

수산시장 상인들은 최악의 불황이라고 입을 모았다. 손님이 줄자 올 초 2㎏에 6만원이던 참돔 값이 5만원으로 내려가는 등 국내 수산물 가격도 덩달아 떨어졌다. 상인 김모씨(40)는 “지난해 여름보다 매출이 70% 줄었다. 차라리 일본산은 수입금지를 하면 좋겠다”며 “언론에서 수입 통관할 때나 경매할 때 다 검사해서 안전하다고 나와도, 다들 자꾸 불안하다고 한다”고 말했다. 상인 엄모씨(40)는 “우리 집에 일본산은 도미밖에 없지만, 바닷물은 국적에 상관없이 흘러다니니까 국산품도 다 타격을 받는다”고 밝혔다. 15년째 영업해온 상인 김모씨(42)도 “정부 대책이 나와도 사람들이 안 믿고, 상인들은 의욕이 떨어지니 호객행위도 안 한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손님은 언제 오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유출로 국내 소비자들 사이에서 일본산 수산물의 방사능 오염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23일 서울 노량진수산시장은 여름 비수기까지 겹쳐 평년보다 더욱 한산했다. | 정지윤 기자


▲ 정부가 대책 내놔도 소비자 불신 여전

“검역기준·수입제한 강화해야” 목소리

정 총리 “검사결과 2주마다 발표하라”


지난 1~7월 동안 노량진수산시장에 들어온 일본산 수산물은 도미 213t(전체 493t)과 생태 847t(859t), 동태 4t(2159t) 등이다. 2주 전 일본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성물질이 유출됐다고 발표한 이후 노량진 수협은 새벽 경매시간에 일본산 물량 전체에 대해 방사능을 측정하고 있다. 기준치를 넘는 수산물이 발견된 적은 없다. 수협은 낮 시간에도 수시로 상가를 돌면서 일본산 상품의 방사능 수치를 잰다. 정부가 연일 일본산 수산물 안전성에 대한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이날 노량진시장을 찾은 남정희씨(39)는 “일본 방사능 문제가 신경쓰이지만 수산물을 워낙 좋아해 원산지 표시를 믿고 사먹는다”며 “정부 대책은 별 기대를 하지 않고, 현미나 사과껍질 같은 거 먹으면 미량의 방사능은 배출된다 해서 그렇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4살 쌍둥이를 둔 김모씨(33)는 “나는 너무 신경쓰면 몸에 더 안 좋을 것 같아서 국산 수산물은 먹지만, 다른 아기 엄마들은 원산지가 어디든 생선 자체를 안 사는 경우가 많다”며 “정부가 안전하다고 발표해도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대형마트에서도 장보러 온 손님들에게 생선 코너가 인기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날 이마트 서울 은평점을 찾은 유모씨(37)는 “7살, 9살 아들들이 생선을 좋아하지만 일본 원전사고 때부터 수산물 자체를 안 먹이고 있다”고 말했다. 주부 윤모씨(49)는 “일본에서는 생선의 방사능 노출 문제에 손을 놨다는 소문까지 들었다. 생선 안 먹고도 살 수 있으니까 아예 먹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은 정부의 미온적인 대처가 시민 불안과 피해를 가중시키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지난 22일 연 관계부처 긴급 대책회의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근거없는 괴담이 나오고 있으므로, 관련 부처들은 방사능 관리 현황과 검사결과를 2주마다 발표해 국민 불안을 해소해달라”고 말했다. 정 총리는 지난 2일에도 “악의적인 괴담을 처벌해야 한다”고 밝혀 시민단체들의 강한 반발을 산 바 있다.

김혜정 시민방사능감시센터 운영위원장은 “정부가 방사능을 하나의 자연재해로 보고 대응 체계를 만들기보다 괴담을 단속하고 처벌하라며 불안해하는 국민을 협박하는 꼴”이라고 말했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처장은 “정부가 일본산 수산물을 수입해 유통하는 업체가 어딘지 알리지 않으니까, 국민들이 원산지 표시 자체를 못 믿고 그만큼 국내 수산업 종사자들 피해도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사고가 터진 일본과 우리의 기준치가 같은 것이 문제”라며 “검역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여란·정대연·심진용 기자 pee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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