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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동학개미들의 주식 열풍

반도체 설계 회사 귀하다더니… 파두 공모주 투자자는 왜 물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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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반도체 설계(팹리스) 기업 파두(FADU)가 2023년 8월 7일 코스닥시장에 상장했다. /파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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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설계 기업 파두가 1조 원 넘는 기업 가치를 뽐내며 7일 코스닥시장에 입성했으나, 공모주 대어란 수식어가 무색하게 상장 날 주가는 공모가 아래로 떨어졌다. 상장 둘째 날 주가는 전날보다는 약간 올랐으나, 여전히 공모가 밑이다.

파두는 2015년 창업한 한국 팹리스(fabless, 반도체 설계) 스타트업이다. 메모리 반도체는 세계 최강이면서 설계 분야는 유독 약한 한국 반도체업계에서 드물게 유니콘(기업 가치 1조 원 이상인 비상장 기업)으로 등극해 주목받았다. 반도체 설계 분야 스타 탄생이란 호들갑과 달리, 증시 데뷔 후 성적은 시원찮았다. 거래 첫날부터 주가가 공모가 밑으로 내려가면서, 공모에 청약한 투자자는 차익을 내기는커녕 평가 손실을 보는 상황이다.

파두는 7일 코스닥시장에 상장해 공모가(3만1000원) 대비 10.97% 하락한 2만7600원으로 마감했다. 공모가보다 15% 이상 낮은 2만6300원에 시초가가 형성된 뒤, 장 중 20% 가까이 하락하기도 했다. 공모가 기준 시가총액은 1조4898억 원이었는데, 첫 거래일 종가 기준 시총은 1조3263억 원에 그쳤다. 상장 둘째 날인 8일엔 전날 대비 4.89% 상승한 2만8950원으로 거래가 끝났는데, 이 역시 공모가보다는 낮은 수준이다.

파두는 SK텔레콤 융합기술원 반도체 연구원 출신 남이현 대표(최고기술책임자)와 컨설팅 기업 베인앤드컴퍼니 파트너 출신 이지효 대표(최고경영자)가 2015년 세운 반도체 설계 회사다. 데이터센터용 데이터 저장 장치 SSD(solid state drive)에 쓰이는 컨트롤러가 주력 제품이다. SSD 모듈 한 개당 컨트롤러 반도체 한 개가 탑재된다. 파두는 ODM(제조자 개발·생산 방식)으로 직접 SSD 모듈을 제작해 판매하기도 한다.

파두는 미국 빅테크 중 하나인 메타(페이스북의 모회사)를 고객사로 확보했다. 2021년 말부터 eSSD 컨트롤러 설루션을 메타에 공급하고 있다. 주요 낸드 메모리 제조사도 고객이다. 파두는 “세계 낸드(NAND) 메모리 7개사(삼성전자·키옥시아·웨스턴디지털·SK하이닉스·마이크론·솔리다임·YMTC) 중 두 곳을 고객으로 확보했다”고 밝혔다.

파두는 유망 팹리스 기업으로서 기술력을 인정받아 올해 2월 투자금 120억 원을 추가 조달했다. 당시 기업 가치를 1조800억 원으로 평가받았다. 한국의 첫 반도체 팹리스 유니콘이 등장한 것이다. 2월까지 총 1500억 원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전 세계 팹리스 시장에서 한국 점유율이 1%에 불과한 상황에서, 창업 10년 미만의 팹리스 스타트업이 이례적으로 많은 투자금을 끌어모았다.

이런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 지난달 24~25일 시행한 기관 투자자 대상 기업공개(IPO) 수요 예측에서 84%가 희망 공모가 범위(2만6000~3만1000원)를 넘어선 가격을 제시하면서, 최종 공모가는 최상단인 3만1000원으로 정해졌다. 그러나 뒤이어 지난달 27~28일 진행된 일반 투자자 대상 청약 경쟁률은 79.15대 1로 저조했다. 전체 공모 물량의 25%가 일반 투자자에게 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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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용 SSD(데이터 저장 장치) 컨트롤러 반도체 설계 기업 파두가 2023년 8월 7일 코스닥시장에 상장했다. 왼쪽부터 유도석 한국IR협의회 상무, 강왕락 코스닥협회 부회장, 이부연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 본부장보, 이지효 파두 대표,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 배영규 한국투자증권 IB그룹장. /한국거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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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일 주가 하락은 공모 전 주식을 샀던 기존 투자자가 상장하자마자 차익 실현용 매도에 나선 영향이 크다. IPO 전인 올해 2월 프리(pre) IPO 당시 주식을 산 투자자의 주당 매입 가격은 2만 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시초가(2만6300원)에 팔았어도 차익을 낼 수 있었다.

파두는 일찍이 오버행(상장 후 대규모 매도 물량)이 나올 우려가 제기됐었다. 파두 상장일에 주식을 바로 매매할 수 있는 유통 가능 물량은 전체 주식의 39.1%(1879만687주)에 달했다. 실제로 매도 물량이 쏟아지면서 주가가 약세를 보인 것이다. 보호 예수(매각 제한 물량)를 체결하지 않은 기관 투자자는 증시 거래 첫날 주식을 대거 처분한 것으로 추정됐다. 상장일 파두 거래량은 1443만2682주였다. 기관은 이날 275만9803주를 순매도(매도량이 매수량보다 많은 것)했고, 외국인은 14만525주를 순매도했다.

회사 임직원이 과거 주당 100원에 받은 주식 매수 선택권(스톡옵션)을 행사했다는 ‘소문’이 상장일 주가 하락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관측도 있다. 파두는 2018년 임직원 19명에게 주당 100원에 스톡옵션 164만7200주를 부여했다. 지난달 24일 투자 설명서 제출 시점 기준 취소 수량(71만5792주)과 행사 수량(20만8064주)을 제외한 미행사 수량은 72만3344주였다. 스톡옵션을 행사해 100원에 주식을 사서 상장 후 시가로 매각할 경우 수백 배의 시세 차익을 거둘 수 있다.

파두는 이후로도 4500원, 7107원 등에 회사 주식을 살 수 있는 스톡옵션을 매년 나눠줬다. 회사 측은 “현재 미행사 주식 매수 선택권은 256만2578주(상장일 상장 예정 보통 주식 수 기준 지분율 5.33%)이며, 이 중 214만1778주(상장일 상장 예정 보통 주식 수 기준 지분율 4.46%)는 행사 기간이 도래해 즉시 행사 가능하다”며 “상장 이후 주식 매수 선택권 행사로 상장 주식 수가 증가해 주식 가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최대주주인 남이현 대표(12.02%)와 등기 임원 이지효 대표(9.28%)는 보유 주식 전체의 의무 보유 확약 기간이 3년으로 정해졌다. 상장일로부터 3년간 주식 매각이 제한되는 것이다.

파두의 IPO 흥행 부진은 앞서 지난달 14일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이차전지 장비 전문 기업 필에너지의 화려한 데뷔와 대조된다. 필에너지는 올 들어 가장 많은 15조 원 이상의 청약 증거금을 끌어모았다. 필에너지는 첫날 공모가(3만4000원) 대비 237.06% 상승한 11만4600원으로 마감했다. 필에너지의 상장일 유통 가능 주식은 전체의 약 11% 수준이었다. 필에너지 주가는 상장 후 한차례도 공모가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다.

일각에선 파두의 기업 가치가 지나치게 높게 설정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상장을 주선한 대표 주관사인 NH투자증권과 공동 주관사인 한국투자증권은 파두의 공모가 산정을 위한 유사 기업으로 미국 팹리스 기업 브로드컴(Broadcom), 마이크로칩 테크놀로지(Microchip Technology), 맥스리니어(Maxlinear)를 선정했다.

그런데 세 회사는 사업 분야는 반도체 전문 설계라는 점에선 비슷하지만, 매출 규모나 시가총액(셋 모두 미국 나스닥 상장)은 파두보다 훨씬 크다. 파두 투자 설명서에 따르면, 2022 회계연도 브로드컴 매출은 우리 돈 42조884억 원, 마이크로 매출은 11조520억 원, 맥스리니어 매출은 1조4478억 원이었다. 파두의 2022년 연매출은 564억 원이었다. 지난해 처음으로 42억 원 영업 이익을 냈다. 상장 주관사는 공모가가 높을수록 수수료를 많이 받기 때문에 기업 가치나 실적 전망을 뻥튀기하는 경향이 있다. 공모가 거품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김남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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