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대병원, 14일째 파업 지속···소아청소년과 공백 위기
어린이병원 교수, 1인시위 나서···조선대병원도 재파업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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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수술을 한 아이, 백혈병에 걸린 아이, 경련이 멈추지 않는 아이, 투석이 필요한 아이를 먼 서울로 보내야 합니다. 선생님들을, 병원을 믿고 있던 아이들이 병원에서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부디 돌아와서 아이들의 작은 손을 잡아주세요. "
보름째 파업이 이어지고 있는 부산대병원 사내 게시판에 최근 올라온 글이다. 26일 의료계에 따르면 양산부산대병원 소아청소년과 A교수가 쓴 '작은 손 하나만은 제발 잡아주세요'라는 제목의 호소문이 커뮤니티를 통해 확산되면서 파업 장기화로 인한 의료공백을 실감케 하고 있다.
해당 글은 부산대병원 직원이라고 밝힌 익명의 제보자가 온라인 커뮤니티 '블라인디'에 공유하면서 공론화됐다. 사내게시판 캡처본을 그대로 올린 글에는 파업으로 인해 소아청소년과 환자들의 질환이 악화될까 우려하는 A교수의 절절한 심경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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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교수는 "양산부산대병원은 부산·울산·경남 지역에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가장 많아 지역 내 중증 소아 환자 진료를 도맡아 왔다"며 "파업이 길어지면서 중증 환자들을 멀리 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고 호소했다. 주변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가 일차진료 수준을 유지하는 가운데서도 한강 이남에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수가 가장 많은 덕분에 버텨왔지만, 양산부산대병원 없이는 서울로 가야 하는 게 부산 지역 소아청소년 환자들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A 교수는 “이제 곧 감기가 낫지 않아도, 고열의 원인이 무엇인지 몰라서, 진정제를 맞는 검사를 해야할까봐 어린 아이와 부모를 서울로 보내야 한다”며 “수많은 아이들과 부모들이 양산부산대어린이병원의 불이 꺼질까봐, 이(파업) 기간이 영영 길어질까봐 매일 노심초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무서워서, 아파서 우는 아이를 달래는 것은 차가운 지성과 논리가 아닌 여러분의 따뜻한 손길이다. '23년 무더운 여름 어린 너희 손을 잡고 뜨겁게 투쟁했단다'라고 말할 수 있도록 부디 돌아와서 작은 이 손을 잡아 달라”는 당부의 말로 글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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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병원 어린이병원 로비에도 이 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들이 쓴 호소문이 부착되어 현장의 어려움을 실감케 하고 있다.
부산은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지난 13~14일 이틀간 간호인력 확충과 공공의료 강화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벌일 당시에도 가장 혼란이 극심했던 지역으로 꼽힌다. 부산대병원과 양산부산대병원은 전 직원의 약 80%가 총파업 참여를 예고하면서 산별 총파업 전부터 입원 환자를 퇴원시키고 다른 병원으로 전원 시키는 등 비상 체제에 돌입했다. 2주 가까이 파업 국면이 지속되는 동안 노사는 수 차례 교섭을 가졌다. 공개 토론회를 마련하는 등 대화를 이어가고 있지만 좀처럼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 부산대병원지부의 핵심 요구사항은 비정규직 501명의 정규직 전환을 비롯해 인력 160여명 충원, 불법의료 근절, 임금인상 등이다. 보건의료노조 부산대병원노조지부는 전일(25일) 오후 부산역 광장에서 파업 13일차 출정식을 갖고 불법의료 증언대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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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부산 지역만의 문제는 아니다. 임단협 합의로 파업을 접고 지난 14일 업무에 복귀했던 보건의료노조 조선대병원지부는 재파업을 예고한 상태다. 보건의료노조 광주·전남본부 조선대병원지부는 이날(26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14일 사측과 간호사 배치와 인력 증원 문제에 대해 합의했지만 병원 측이 이 합의 내용을 단협에 포함시킬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며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내일(27일) 오전 7시부터 파업에 들어가겠다"고 예고했다. 노조 측은 전체 노조원 1000여 명 중 필수의료인력을 제외한 600명 안팎이 파업에 참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에서 유일하게 파업을 지속하던 고려대의료원 노사가 임금총액을 4% 이상 인상하는 조건으로 지난 25일 극적 합의를 도출한 가운데 광주, 부산 등 전국 10여개 사업장은 여전히 파업이 진행 중이다.
안경진 기자 realglasse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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