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루킹 특검을 맡았던 허익범(64·사법연수원 13기) 변호사는 특검 초기 일부 언론에서 ‘최약체 특검’이라고 평가절하 하고, 수사기밀이 줄줄 새던 최악의 수사 환경을 기억한다. 피의자인 김 전 지사는 특검에 소환되며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드는 여유까지 부렸다.
오죽 마음 고생이 심했으면 허 변호사는 특검 후보 선정 때부터 재판까지 3년여 동안 있었던 일들을 A4 용지 800페이지에 달하는 일기 형태로 정리해놨다. 그는 “수사 환경이나 외부 반응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오직 증거로 승부한다는 철칙이 있었다”며 “만약 그때 증거 확보가 아닌 다른 것들에 신경을 썼다면 특검으로서 주어진 과제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허익범 특별검사(가운데)가 2018년 8월 서울 강남역 인근의 특검 사무실에서 '드루킹 특검' 최종 수사결과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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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변호사는 최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자문단장으로 위촉됐다. 여러 번 고사했지만 공수처 쪽의 간곡한 요청이 있었다고 한다. 특검과 공수처는 맞닿아 있다. 설치 목적도 그렇고, 출신이 다른 여러 수사 인력이 모여 일한다는 점도 닮은 꼴이다. ‘1호 기소’ 사건이 무죄가 나고, 구속과 체포 건수가 출범한지 2년 넘게 ‘제로’ 상태인 현재의 공수처에 허 변호사가 전수해 줄 노하우가 꽤 있어보인다.
일반적으로 공수처는 검찰을 견제하는 기관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허 변호사는 그런 생각부터 버려야 공수처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그는 “설령 정치권에서 공수처를 그런 의도로 탄생시켰다 하더라도 수사는 수사로서의 고유한 공정성과 목적성이 있는 것인데, 검찰을 견제하는 프레임 속에서 수사를 한다는 것은 이미 수사 외의 정치성을 띠는 것이고, 그래선 결코 안된다”고 말했다. “가장 정치적인 사건을 가장 비정치적으로 수사해야 하는 것이 공수처의 역할”이라고도 했다.
허 변호사는 공수처의 수사 대상이 명확하지 않고, 수사를 시작한 뒤 기소 단계에선 검찰에 이첩하는 현재의 방식도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사건 하나를 하더라도 꼼꼼히 수사해 기소와 공판까지 책임져야지, 여러 사건을 벌여놓고 어느 하나 제대로 마무리짓지도 못한다면 수사기관으로서의 신뢰만 갉아먹는다는 얘기다.
허 변호사는 2017년 법무검찰개혁위원회 위원 자격으로 공수처 법안 입안에도 참여했다. 당시 그는 ‘수사기관을 함부로 쪼개 별도의 조직을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냈다고 한다. 공수처 법안 자체도 국회로 넘어간 뒤 변질됐다. 하지만 허 변호사는 “조직의 존폐는 정치권에서 결정한다고 해도 공수처가 이미 운영되고 있는 이상 제 역할을 하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2018년 8월 9일 특검 사무실에 두 번째 출석하며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오종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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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루킹 수사 과정의 비화도 소개했다. 특검 당시 세간의 관심은 김경수 전 지사가 댓글 순위 조작 프로그램인 ‘킹크랩’ 시연을 봤는지 여부였다. 봤다면 김 전 지사가 댓글 조작을 드루킹에 지시하거나 용인했으니 유죄, 안 봤다면 무죄라는 식이었다. 하지만 허 변호사는 네이버 로그 기록을 비롯해 특검팀이 확보한 방대한 증거자료를 토대로 드루킹과 김 전 지사의 공모 관계는 이미 입증됐고, 킹크랩 시연은 단지 이를 확실하게 하는 과정에 불과했다고 판단했다. 설령 시연을 보지 않았다고 해도 김 전 지사를 기소할 증거는 충분했다는 것이다.
김 전 지사의 구속영장이 기각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현직 도지사라서 도주 우려가 없다는 게 기각 사유였는데, 댓글 조작이라는 민주주의 체제를 뒤흔드는 범죄의 중대성을 좀더 고려해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을 뿐 재판에서 혐의 입증에는 문제가 없다고 봤다.
검찰 출신인 허 변호사는 “기소 뒤 특검팀이 재판부에 제출한 의견서에는 주장 하나가 있으면 반드시 그걸 뒷받침하는 근거를 각주(脚註)에 넣어 설명했다”고 했다. 각주를 1000개 이상 붙인 적도 있다고 한다. 이어 “특검이나 검찰이나 공수처나, 수사는 철저히 증거에 입각해 해야하고 정치나 다른 고려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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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드바(sidebar)는 미국 법정에서 판사가 재판 진행에 대해 할 말이 있을 때, 또는 검사나 변호인이 배심원들을 피해 판사에게 직접 얘기하고 싶을 때, 법대 앞에 모여 논의하는 것을 말합니다. 신문업계 용어로는 메인 기사 옆에 붙는 ‘해설 박스’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화제의 법조인들을 열심히 만나고, 열심히 해설하겠습니다. 2주 뒤 목요일에 뵙겠습니다.
박성우 기자 bla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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