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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0 (월)

[스프] 김정은은 왜 회의장에서 자리만 지켰을까…몇 가지 의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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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통한 보고'라는 희한한 방식 택한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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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지난 16일부터 18일까지 노동당 전원회의를 개최했습니다. 군사정찰위성 발사 실패를 '가장 엄중한 결함'이라고 질타했고, '인민경제계획을 무조건 수행하는 엄격한 규율을 확립하지 못했다'며 일부 경제 부문의 부진도 인정했습니다. 당 경제부장을 전격적으로 교체해 경제성과 부진에 대한 책임도 물은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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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총비서가 참석한 가운데 지난 16일부터 18일까지 노동당 전원회의가 개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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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에 참석한 김정은 총비서는 연설을 하지 않았습니다. 과거의 전원회의를 보면, 김정은이 여러 가지 주요 정책에 대해 평가와 지시를 하고 참석자들은 열심히 받아 적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이번에는 주석단의 자리를 지킨 채 연단에 오르지 않은 것입니다.

김정은, 전원회의서 연설 안 한 건 사실상 이번이 처음



김정은 집권 이후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김정은이 연설을 하지 않은 것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입니다. 2016년 5월의 제7기 제1차 전원회의와 2021년 1월의 제8기 제1차 전원회의에서 김정은의 연설이 있었다는 보도가 없는데, 당시 전원회의들은 직전 당대회가 끝나자마자 열렸기 때문에 김정은이 별도로 연설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당대회 내내 김정은이 연설을 통해 할 말을 다 했기 때문에 전원회의에서 다시 연설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또, 당시의 전원회의들은 김정은이 연설했다는 직접적인 표현만 없을 뿐 김정은이 실질적으로 회의를 진행한 것으로 보입니다. 2016년 5월 전원회의의 경우 '김정은이 회의를 지도'했다는 표현이 나오고, 2021년 1월 전원회의의 경우 김정은이 회의에서 언급한 내용들이 여러 가지 소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전원회의의 경우 북한 매체들은 "김정은 동지께서 전원회의에 참석하시었다"고만 보도했습니다. 조선중앙 TV 영상을 봐도 김정은이 연단이나 주석단 자리에서 참석자들에게 말을 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당의 중요한 회의를 열어놓고 최고 지도자가 연설도 하지 않다니 무슨 일일까요? 구병삼 통일부 대변인은 "대단히 이례적"이라며, "위성 발사가 실패했고 경제 성과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내세울 성과가 없다는 점에서 직접 나서기가 좀 어려웠던 측면이 있지 않았을까 추정"한다고 밝혔습니다.

통일부도 전원회의 평가 자료에서 "난관의 원인을 외부, 하부 단위에 미루는 것으로 보아, 5개년 계획 이행이 부진하며 만회에 대한 자신감도 감소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밝혔습니다. 야심 차게 추진했던 정찰위성 발사가 실패하고 경제성과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김정은이 자신 있게 연설할 내용이 별로 없었다는 취지입니다.

조선중앙TV 영상 보니



이상과 같은 평가에 큰 무리는 없어 보입니다. 김정은이 집권 이후 사실상 처음으로 전원회의에서 연설하지 않은 것을 최근의 정세와 연관 지어 보면 이런 분석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조선중앙TV를 통해 방송된 전원회의 영상을 살펴보면 조금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부분이 관찰됩니다.

북한 조선중앙TV를 보면 이번 전원회의에서의 보고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당초 노동신문이나 조선중앙통신 같은 활자매체가 주요 안건에 대한 보고를 "참가자들은 보고를 청취하였다"와 같이 발언자 없이 보도했을 때, 김정은이 아닌 누군가가 대신 보고를 했을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참석자들을 대상으로 안건 보고를 누군가는 해야 할 텐데 김정은이 직접 나서지 않았다면 김정은의 측근인 조용원 조직비서나 김덕훈 총리 같은 사람들이 하는 것이 자연스러웠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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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안건에 대한 보고를 듣고 있는데 연단에서 발언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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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조선중앙TV 영상을 보면 주요 보고가 이뤄지는 동안 연단에는 아무도 서 있지 않습니다. 연단에서 발언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김정은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듣고 있는 것을 보면, 보고는 장내의 스피커 시설을 통해 방송된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아나운서가 사전에 녹음한 것을 장내에 방송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기서 의문이 제기됩니다. 여러 가지 실적 부족으로 김정은이 전면에 나서기 부담스러워 연설을 하지 않은 것이라면 보통 아랫사람들에게 대신시키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평소 부장이 하던 일을 사유가 생겨 부장이 하기 어려워졌다면, 부장 바로 아래에 있는 선임차장이 일을 대신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김정은 주변에는 김정은 다음으로 핵심 권력 서열에 속하는 4명의 정치국 상무위원들(조용원, 김덕훈, 최룡해, 리병철)도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이들에게 보고를 맡기는 대신 장내 방송을 통한 보고라는 다소 희한한 방식을 택했습니다.

혹시 다른 이유 때문에?



북한이 이런 희한한 방식을 택한 것에 혹시 다른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아직은 가설이지만, 김정은의 장시간 연설을 피하기 위해 이런 방식을 택한 것이 아닐까 하는 추론도 가능합니다. 당대회나 전원회의에서의 보고문은 매우 깁니다. A4 용지로 출력하면 빡빡한 글씨로 짧게는 몇 쪽에서 길게는 10쪽을 넘어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과거에는 이 많은 분량을 김정은이 몇 시간씩 연단에서 낭독했는데, 몇 시간씩 대중 앞에서 연설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상당한 체력이 필요합니다.

만약, 김정은이 장시간 연단 앞에서 연설을 하는 체력적 부담을 덜기 위해 '방송을 통한 보고'라는 방식을 도입한 것이라면, 이는 김정은의 건강 문제와 연결될 수 있습니다. 단순히 회의에 참석해 표결을 하는 정도의 행동은 가능하지만, 장시간 서서 연설을 하는 정도의 행동은 이제 부담스럽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다만, 이번 전원회의에서도 김정은이 회의장에 입장할 때나 퇴장할 때 특별한 이상 징후는 보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같은 추론은 아직 가설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겠습니다.

한 가지 더 살펴볼 부분



전원회의 영상에서 한 가지 더 살펴볼 부분이 있습니다.

조선중앙TV 영상을 보면, 주요 안건에 대한 보고가 이뤄질 때 김정은만 유독 이어폰을 끼고 있는 모습이 관찰됩니다. 회의장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모두 이어폰 없이 보고를 청취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장내 스피커의 볼륨은 작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는데, 김정은만 유일하게 이어폰을 이용한 것입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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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식 북한전문기자 cs7922@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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