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브뤼셀 유럽연합(EU) 본부 건물 앞에 유럽연합 깃발이 걸려 있다. 브뤼셀/로이터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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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이 사상 처음으로 ‘경제 안보 전략’을 발표했다. 미-중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유럽연합이 최근 정한 대중 노선인 ‘디리스킹’(위험 완화)을 어떻게 정책화할지 ‘밑그림’을 그린 셈이다.
20일(현지시각)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외교·안보 정책 고위대표와 공동으로 첨단 반도체 등 민감 기술의 제3국 수출 통제 등을 핵심 내용을 하는 ‘유럽 경제 안보 전략’이라는 통신문을 발표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이 지난 3월 말 중국과의 ‘디리스킹’을 하겠다는 유럽연합 차원의 대중 노선을 채택한 뒤 구체적인 움직임이 나온 것이다. 3월30일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유럽-중국 관계에 대한 연설에서 “중국은 자국 내에서는 더 억압적으로 해외에서는 독단적이 되고 있다”라면서 유럽이 “새로운 방어 도구”를 개발할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통신문은 유럽연합 집행위가 추진하고자 하는 정책 구상을 담은 문서다.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이 통신문 채택을 시작으로 27개 회원국과 유럽의회는 정책 추진을 위한 논의, 입법 작업에 들어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집행위는 이날 발표한 전략에 대해 “지정학적 긴장이 높아지고 기술 변화가 가속화하는 상황에서 특정한 경제적 흐름으로 인해 발생하는 위험을 최소화”하고, “경제적 개방성과 역동성을 최대한 유지”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략은 코로나19 대유행,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등으로 인해 첨단 기술, 에너지 등 각 경제 분야에서 중국, 러시아와 같은 특정 국가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이 유럽의 경제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에 기반해 탄생했다.
이번 경제 안보 전략의 핵심 중 하나는 양자 기술, 첨단 반도체, 인공지능 등으로 대표되는 ‘민감 기술’을 가진 유럽 기업의 해외 투자를 제한할 가능성을 시사한 부분이다. 유럽연합은 이들 기술이 군사용으로 전용될 수 있는 ‘이중 용도’ 기술이라고 보고 연말까지 수출 통제 규정 개선안을 제시하기로 했다. 사실상 민감 기술을 보유한 역내 기업이 중국 등 제3국에 공장을 짓는 등 투자에 제동을 걸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유럽연합은 회원국과 공동으로 해외 투자에 따른 위험을 확인한 뒤 후 연말까지 관련 이니셔티브 마련하기로 했다. 2020년 10월부터 시행된 외국인 직접투자(FDI) 감시제도를 평가해 내년 말까지 개정하자는 제안도 담겼다. 유럽의회의 국제통상위원회는 26일 이번 공동 통신문에 대한 의견을 교환한다. 이달 말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유럽연합 정상회의에서 구체적 논의가 이뤄질 예정이다.
통신문에서 유럽연합은 보다 더 포괄적으로 위험을 관리하기 위해 경제 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4개 분야 위험에 대한 철저한 평가를 하자고 제안했다. 유럽연합이 제시한 4가지 위험은 △에너지 안보를 포함한 공급망 복원력에 대한 위험 △핵심 기반시설에 대한 물리적·사이버 보안 위험 △기술 보안 및 유출 위험 △경제적 의존의 무기화 또는 강압 위험 등이다. 일단 경제 안보에 주요한 영향을 미치는 기술의 목록을 마련하고 이들의 위험을 평가해 완화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위험을 완화하기 위한 3가지 접근 방식으로는 △유럽연합 단일시장 경쟁력 강화 △기존 정책을 통한 유럽연합 경제안보 보호 및 신규 정책 도입 △세계무역기구(WTO) 등과의 대외 협력 강화 등 방안이 제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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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략에 대해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기술에 대한 경제적 상호의존성을 ‘분리’하는 게 아니라 위험을 완화하기 위한 것”이라며 “우리가 함께 행동하지 않으면 우리는 (제3국의) 놀이터가 될 것이고 함께 행동하면 우리는 플레이어(행위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제프 보렐 외교·안보 고위대표도 “우리는 종속성이 어떻게 무기화될 수 있는지 배웠다”라며 이 전략을 통해 “개방되고 규칙에 의거한 글로벌 무역 시스템을 유지하면서도 과도한 의존을 줄이고자 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러한 유럽연합 차원의 경제안보전략이 구체적인 정책으로 구현되는 데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중국과 무역 관계가 깊은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등 일부 국가들은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한 유럽연합 관계자를 익명으로 인용해 회원국들이 역외 투자 심사 등 조치에 대해서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이러한 유럽연합의 조치가 “또 다른 보호무역주의를 위한 도구”로 사용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번 전략이 발표되기 전 수주 동안 논의 과정에서 회원국은 유럽연합이 핵심 기술에 대한 수출 통제를 보다 강화해야 하는지, 민간 부문에 대한 역외 투자를 규제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유럽연합이 위험에 대한 더 많은 증거와 분석을 내놔야 한다는 의견을 제기했다고 전해진다.
한편, 이날 유럽연합의 핵심 국가인 독일과 중국 간 경제 관계 발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발언이 나왔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베를린을 방문한 리창 총리와 만난 뒤 기자회견에서 “중국과의 경제적 분리(디커플링)에 관심이 없다”라고 말했다. 다만 숄츠 총리는 중국 시장에 대한 접근성, 공정한 경쟁 조건 등을 여전히 ‘도전과제’라고 지적하며 중국 정부를 향해 구체적인 개선안 마련을 촉구했다.
베를린/노지원 특파원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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