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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학원 앞
윤석열 대통령의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관련 발언이 수능 출제기조를 넘어 교육계와 사교육업체의 '카르텔' 논란으로 번지며 학교뿐 아니라 학원가도 뒤숭숭한 모습입니다.
대치동 학원가에서는 공교육을 보충하는 내신 사교육뿐 아니라 코로나19에 따른 학습 공백, 재수생 관리 등 공교육이 뒷받침하지 못하는 영역에 대한 교육서비스 수요도 존재하는데, 사교육업체만을 탓하는 것은 억울하다는 반응도 흘러나옵니다.
어제(20일) 교육계에 따르면 대통령실과 여당 관계자들은 윤 대통령의 수능 관련 발언과 관련해 연일 사교육업체를 정면으로 질타하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유상범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이날 라디오에 출연해 "이미 작년부터 대통령께서 국정과제로도 이야기했고 올해 초 킬러문항 삭제 기본 계획을 발표했음에도 전혀 반영이 안 됐다"며 "교육계 내부에 대통령 국정철학을 반영하지 않겠다는 강한 카르텔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강민국 수석대변인도 논평에서 "사교육 이권 카르텔이라는 왜곡된 교육 현실을 바로잡아 무너지고 있는 공교육을 정상화하는 것이 교육 개혁의 본질"이라고 밝혔습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지난 16일 교육부가 대입담당 국장을 대기발령 조치한 것과 관련해 "대통령이 (수능 출제와 관련해) 몇 달간 지시하고, 장관도 이에 따라 지시한 지침을 국장이 버티고 이행하지 않았다"며 "강력한 이권 카르텔의 증거로 경질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도 말했습니다.
다만, 교육부는 이런 '카르텔'이 구체적인 사안을 뜻한다기보다는 그동안 잘 고쳐지지 않은 수능 초고난도 문항(킬러문항) 출제 관행을 지적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일각에서는 대치동 일부 대형학원이 수능 출제 경험이 있는 교육계 관계자들을 통해 사설 모의고사 문제를 만들어 수험생들에게 판매한 것이 '카르텔' 발언을 불러온 것으로 추측합니다.
교육당국은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손쉽게 변별력을 확보하고자 킬러문항 출제를 계속 눈감았기 때문에 사교육업체와 함께 '카르텔'로 엮여 비난의 화살을 맞았다는 해석입니다.
실제로 대치동의 일부 대형학원은 수년 전부터 자체적으로 수능 출제경향과 비슷한 킬러문항이 포함된 사설 모의고사를 만들어 수강생을 대상으로 판매해 왔습니다.
2018학년도 수능 영어에서 절대평가가 도입된 뒤 국어·수학 영역의 난도가 높아진 것과 맞물려 이런 사설 모의고사는 더 인기가 높아졌다는 후문입니다.
한 입시학원 관계자는 "사례비를 주고 (출제 경험이 있는 교사·교수에게) 문제를 받아오기도 한다"며 "물론 수능 출제위원으로 참여했는지는 원래 공식적으로 밝힐 수 없어서 사실 여부는 본인들과 평가원만 알 수 있다"고 귀띔했습니다.
하지만 수능 출제위원이 되면 수능 직전 한 달 이상 합숙에 들어가고 개인 휴대전화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본인이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입소문'이 난다는 게 교육계 관계자들의 전언입니다.
다른 입시학원 관계자는 수능 출제 경험이 있는 교육계 관계자들이 학원 모의고사 출제위원으로 있냐는 질문에 "최근 출제 경험이 있으신 분은 없는 것 같다"며 "그러나 수능이 나온 지는 오래됐고, 찾아보면 있을 수도 있다"고 확답을 피했습니다.
또 다른 입시학원 관계자는 "(일부 학원은) 문항당 출제비가 100만 원 정도로 상당히 세다고 들었고, 유명한 학원 강사들을 대거 영입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중·고교 시절 사교육 없이 최상위권을 유지했다는 수도권의 한 고3 학생은 "여름방학이 다가오면 수업시간에 모의고사를 각자 푸는데 최상위권 모의고사 자료는 학원에서 직접 나눠준다"며 "그 문제를 받으려고 대치동 학원을 어쩔 수 없이 끊었다(등록했다)"고 털어놨습니다.
일각에서는 공교육이 제 역할을 못 하는 현실이 문제지 수능 킬러문항이 사교육의 근본 원인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어차피 수능은 상대평가이므로 초고난도 킬러문항으로 등급이 갈리느냐, 그보다 다소 쉬운 '준킬러문항'으로 갈리느냐, 혹은 누가 실수를 적게 했는지에 따라 갈리느냐가 달라질 뿐이라는 것입니다.
한 대형학원 대표는 "지금까지 공교육 문제에 대해서는 인정을 못 하다가 사교육에 대해서만 지적하는 것은 선후가 바뀌었다"며 "출제위원은 대부분 현직 교사·교수이고, 사교육에서 초고난도 문제를 출제해 달라고 부탁한 것도 아니다"라고 억울해했습니다.
대통령실과 정부가 사교육 경감을 내세워 '킬러 문항 출제 배제'를 공언했지만, 학원들이 발 빠르게 '준 킬러문항 대비' 마케팅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는 등 사교육 수요는 여전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학원가의 뒤숭숭한 분위기는 유명 '일타 강사' SNS 상에서도 관찰됩니다.
유명 한국사 강사인 이다지 씨는 지난 17일 SNS에 "학교마다 선생님마다 가르치는 게 천차만별이고 심지어 개설되지 않는 과목도 있는데…"라며 학교 수업에서 배운 내용 가운데 수능을 출제하라는 윤 대통령의 발언을 비판했다가 논란이 커지자 해당 글을 삭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씨의 유튜브에는 누리꾼들이 '이 강사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혹은 '성급하게 반응했다' 등의 찬반 댓글을 달며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유영규 기자 sbsnewmedi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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