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제 밀 가격 하락을 이유로 라면업계의 가격인하 압박에 나선 가운데 라면기업들은 여전히 높은 원재료 비용을 치르고 있다고 주장한다. 밀 가격이 하락한 것은 맞지만 라면의 주원료인 밀가루 가격은 변동이 없고, 다른 비용이 오르고 있음에도 소비자가 인하를 단행하는 것은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실제 밀 가격은 라면가격 논란을 촉발시킨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의 주장대로 정점을 찍은 후 크게 하락한 모양새다.
시카고선물거래소(CBOT) 기준 국제 밀 가격은 2020년 6월 1톤당 188달러에서 2년만인 지난해 5월 419달러로 2.2배 올랐다. 하지만 이달 기준 233달러로 고점 대비 44.4% 하락했다.
라면업계는 2021년 8~9월에 이어 지난해 9~11월 두차례에 걸쳐 라면가격을 16~23%를 인상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정부의 가격인상 자제 요청에도 밀가루, 팜유, 물류비 등 생산비 급증으로 원가부담이 커졌다며 10% 안팎으로 가격을 올렸다.
올해 1분기 농심 오뚜기 삼양식품 등 라면 3사의 영업이익은 대부분 증가했다. 라면가격 인상이 업계 수익성 개선에 영향을 준 것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이익 증가는 해외 영업의 호조 영향이 더 크다. 농심은 미국시장에서 전년동기보다 7배를 더 벌었고, 국내시장에서는 52% 이익이 늘었다. 삼양식품은 64%를 차지하는 해외사업의 순항에도 불구하고 원가부담 등으로 오히려 이익이 줄어들었다.
(서울=뉴스1) 이동해 기자 = 지난해 사상 최고로 치솟았던 국제 밀 가격이 최근 큰 폭 하락해 절반 수준으로 내려간 19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한 시민이 컵라면을 고르고 있다. 국내 주요 라면 업체들은 지난해 하반기 원가 부담과 인건비 등을 이유로 라면 가격을 10% 내외 인상했다. 이에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해 크게 오른 라면 값에 대해 "밀 가격이 내린 것에 맞춰 (라면 값도) 적정하게 내릴 필요가 있다"며 압박에 나서자 라면 제조사들이 가격 인하 검토에 돌입했다. 2023.6.19/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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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국제 밀 시세가 내렸으니 라면가격도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지만 라면기업 입장에선 공급받는 밀가루 가격에 변화가 없다. 아직까지 제분사로부터 공급받는 밀가루 가격이 지난해 인상된 후 그대로다. 제분사들은 밀을 수입해 제분해 밀가루로 만들어 라면회사에 공급하는데 보통 6개월에서 1년 단위로 계약을 맺는다. 제분사의 공급가격 영향을 직접 받는 구조다. 농심 등 라면기업들이 소비자가격을 인상한 지난해 9월 국제 밀 가격이 고점 대비 24.8% 하락한 시점이었던 이유도 이같은 시차 때문이다.
다른 원재료도 소비자 가격을 인상한 지난해 9월 대비 변동폭이 커졌다. 국내 1위 라면기업인 농심의 경우 공급받는 팜유 가격은 14% 낮아졌지만 전분은 65% 올랐다. 전분은 라면의 면을 생산할 때 찰기를 만들기 위해 쓴다. 감자전분과 초산전분을 섞어 쓰는데 모두 가격은 60%대 상승했다. 분말스프 제조비용도 8%가량 인상됐다. 이대로라면 연말까지 팜유에서 100억원 정도 비용이 절감되지만 다른 원재료에서 550억~600억원의 원가가 더 들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농심의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은 633억원이다.
식품기업 관계자는 "식품업계의 영업이익률이 2%에 불과한데 소비자가격 인하만 요구하는 것은 원가 구조를 들여다보지 않은 영향"이라며 "식품기업들도 소비자 부담을 완화를 위한 원가 인하 노력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지영호 기자 tellm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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