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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3 (수)

세계 최고 상속세가 만든 진풍경…정부가 게임사 대주주, 세금 탓 경영권 매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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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기획재정부는 게임 업체 넥슨의 지주사인 NXC의 2대 주주에 올랐다. 지난해 별세한 故 김정주 넥슨 창업자 유가족이 수조원대에 달하는 상속세를 NXC 주식으로 납부(물납)하면서다. 우리나라 상속세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현재 한국 최고세율은 5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일본(55%)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OECD 국가 평균(25%)보다 2배 높다. 최대주주 할증(20%)까지 붙으면, 60%까지 올라간다. 상장주식을 상속한 경우, 우리나라 실효세율이 58%로 가장 높고, 일본(55%), 미국(40%), 독일(30%), 영국(20%) 순이다(한국경제연구원). 시가총액 20조원이 넘는 대형 게임 회사 주요 주주 지위를 정부 부처가 꿰차는 진풍경이 펼쳐지면서 무거운 한국의 상속세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기재부가 넥슨 2대 주주

중견기업은 경영권 위협

2006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넥슨그룹 지배구조는 NXC → 넥슨재팬 → 넥슨코리아로 이어진다. 비상장 지주회사인 NXC가 넥슨재팬 지분 47%를, 넥슨재팬이 비상장 기업인 넥슨코리아 지분 100%를 보유한다. 지배구조의 최상단에 위치한 NXC는 故 김정주 회장(63%)과 부인 유정현 이사(34%)가 사실상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었다. 김 회장이 미국에서 유명을 달리하면서 NXC 주식을 물려받은 가족들은 최근 상속세로 NXC 지분 29%를 물납했다. 평가 가치 4조7000억원에 달하는 주식을 세금으로 거두면서 정부는 단번에 넥슨그룹의 2대 주주에 올랐다. 기재부는 이번에 상속받은 주식을 국세청 가치평가가 확정되는 대로 매각할 예정이다. 상속·증여세 명목으로 받은 부동산이나 유가증권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위탁 관리한다. 게임업계는 유족 지분율이 높아 지분이 매각되더라도 단기적으로 지배구조가 흔들릴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하지만 경영상 주요 의사 결정에 관한 주총 특별결의사항 요건을 유 이사 측이 안정적으로 유지하기는 힘들 수도 있다. 주총에서 다루는 결의는 크게 보통결의와 특별결의가 있다. 경영상 중대한 사안은 대부분 특별결의로 다룬다. 정관변경, 이사 또는 감사의 해임, 회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영업의 전부 또는 중요한 일부의 양도 등이 모두 특별결의 사항이다. 가령, 주요 사업부를 물적분할해 자회사로 만들어 상장할 경우 기업가치에 큰 변화가 생기므로 주총 특별결의를 거쳐야 한다. 특별결의 정족수는 3분의 1 이상 참석과 참석 주식 수의 3분의 2 이상 찬성이 필요한데, 현실적으로는 대략 67%(지분율 3분의 2)의 지분율을 확보해야 안정적으로 통과시킬 수 있다. 유 이사 측은 특별결의 통과에 필요한 지분율을 유지했지만 향후 증자 등으로 지분율이 희석될 경우 효율적인 의사 결정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상속세가 도마에 오른 것은 넥슨뿐 아니다. 삼성가(家)에서도 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2020년 별세한 후 12조원 넘는 사상 최대 규모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등 삼성 오너 일가가 최근 2조원이 넘는 추가 대출을 받았다. 이재용 회장 등 삼성가 상속인들은 계열사 지분 매각, 보유 주식 담보대출, 배당으로 상속 재원을 마련한다. 구광모 ㈜LG 대표를 비롯한 LG그룹 상속인도 9000억원이 넘는 상속세를 주식담보대출 등으로 분납한다.

상속세를 내기 위해 경영권을 매각한 중견기업도 적지 않다. 콘돔 업체 유니더스, 밀폐용기 업체 락앤락, 종자 업체 농우바이오, 손톱깎이 업체 쓰리세븐 등이 상속세를 내기 위해 경영권을 매각했다. 모두 특정 분야에서 국내외 점유율 1위를 달렸던 강소기업이다. 당장 경영권을 매각하지 않고는 도저히 납부할 수 없는 수준의 상속세를 부과하는 것이 타당한지 논란이 드센 배경이다.

매경이코노미

넥슨 창업자 유족이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NXC 지분 30%가량을 상속세로 물납하면서 정부가 국내 최대 게임 업체 넥슨의 지주회사인 NXC의 2대 주주가 됐다. (매경DB)


‘코리아 디스카운트’ 심화

이중과세·부의 재분배 효과 논란

상속세를 둘러싼 논란은 크게 3가지다.

첫째, 높은 상속·증여세는 적극적인 주주환원을 가로막아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심화시킨다는 지적이 비등하다. 상속·증여세가 높다 보니 대주주는 주가가 오르는 것이 달갑지 않다. 주가 부양에 도움이 되는 배당 등 주주환원에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대주주와 소액주주 간 이 같은 이해관계 불일치는 시장 전반의 활력을 둔화시킨다. 국내 상장 종목 주가순자산비율(PBR)은 외국과 비교해 턱없이 낮다. PBR은 주가를 주당순자산가치(BPS·Book-value Per Share)로 나눈 비율이다. PBR이 1이라면 해당 기업 주가와 1주당 순자산이 같다는 의미다. 이 수치가 낮을수록 기업의 자산 가치가 저평가돼 있단 의미다. PBR이 1 미만이면 주가가 청산 가치에도 못 미친단 뜻이다.

키움증권에 따르면, 지난 5월 31일 종가 기준 코스피 12개월 선행 PBR은 0.9배 수준이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3.7배), 나스닥(5배), 유로스탁50(1.7배), 니케이(1.8배), 상하이종합(1.2배) 등 세계 주요 증시와 비교해 PBR 1배를 밑도는 건 코스피뿐이다. 신한투자증권·대신증권·신영증권에 따르면, 국내 상장 종목 중 PBR 1배 미만인 종목 비율은 42%에 달한다. S&P500과 독일 DAX에서 이 비율은 각각 12%, 25%에 불과하다. 특히, 북한과 대치 중인 우리나라처럼 중국의 상시적인 위협에 노출된 대만 증시 PBR이 2배를 웃도는 것은 상속세 외에 달리 설명할 요인이 없다는 지적이 거세다.

둘째, 이중과세 논란이다. 기업을 경영하면서 이미 최고세율 45%의 소득세와 법인세 등을 내고 마련한 자산에 다시 상속세까지 부과하는 것은 이중과세라는 지적이다. 상속세와 소득세의 최고세율 합계를 비교하면, 한국은 95%로 일본(100%) 다음이지만 기업승계 시 최대주주 할증평가를 적용하면 105%로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 임동원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이중과세 측면에서 상속세가 높으면 소득세가 낮든지, 아니면 그 반대여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상속세 2위, 소득세 7위로 모두 높다”고 지적했다.

셋째, 부의 재분배 효과에 관한 논란이다. 당초 상속세는 유산을 상속인의 불로소득으로 간주하고 세금을 부과해 부의 격차를 줄이겠다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상속세 부담을 줄여가는 추세다. 막대한 상속세를 걷는 것보다 지속 가능한 기업 경영을 보장함으로써 법인세를 안정적으로 걷고 양질의 일자리를 통해 소득 세원을 탄탄히 다지는 것이 빈부 격차 완화에 더 도움이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우리와 같은 방식(유산세)으로 상속세를 부과하는 나라는 미국, 영국, 덴마크 등 3개국이다. 19개국은 우리보다 세 부담이 덜한 유산취득세 방식이며 7개국은 비과세다.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스웨덴 등 4개국은 자본이득세로 가업승계만으로는 세금을 물리지 않는다.

과도한 상속세가 기업의 자원 배분을 왜곡한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상속세를 마련하기 위한 목적에서나 혹은 이를 회피하려는 목적으로 비효율이 발생한다는 것. 상속세를 마련하려 ‘일감 몰아주기’ 등 꼼수가 동원되는 것이 이런 예다.

물론 이런 논란에는 반박도 따른다. 이중과세 논란을 두고는 ‘당초 상속세는 소득세의 불완전한 부분을 보완하자는 취지므로, 이중과세 논란은 이치에 맞지 않다’는 반론이다. 부의 재분배 효과를 두고서도 OECD는 2018년 “세계적으로 자산 불평등이 심각해 상속세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매경이코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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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취득세 전환 속도 내야

자본이득세 검토, 장기 과제

그럼에도 2000년 이후 과세표준과 세율을 23년째 그대로 유지하는 상속세제를 환경 변화에 맞춰 대대적으로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상속세 개편 논의는 크게 두 갈래다.

첫째, 상속세율 인하다. 일본을 제외한 G7 국가들처럼 상속세율을 소득세율보다 낮춰야 한다는 의견이다. 상속세가 있는 OECD 회원국의 평균 최고 상속세율(27%)과 비슷하게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두 번째는 윤석열정부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던 유산취득세 도입이다. 유산세 방식의 현 상속세와 유산취득세는 과세 방식이 전혀 다르다. 유산세는 사망한 사람(피상속인)이 물려준 전체 자산(상속자산)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긴다. 유산취득세는 물려받은 사람(상속인) 각자에게 간 자산에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이다. 과세 대상 자산 규모가 클수록 세율은 계단식으로 올라가므로, 상속인별로 세금을 매기는 유산취득세가 현 유산세보다 세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OECD 회원국 가운데 유산세 방식인 나라는 한국을 포함해 미국·영국·덴마크 등 4개국에 불과하다. 독일·프랑스·일본 등 19개국은 유산취득세 방식이다.

올 2월 기재부는 조세개혁추진단을 설립했지만 상속세 개편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세수 감소 우려에 상속세제 개편과 맞물려 있는 유류분 제도 위헌 여부에 대한 헌법재판소 판단을 앞둬 정부 안팎에서는 신중한 시각이 힘을 얻은 분위기다.

중장기적으로는 상속세를 자본이득세로 전환하는 것이 부의 재분배 효과가 더 크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자본이득세는 다른 상속재산과 달리, 창업자 가문 지분을 사업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미실현 ‘자본’으로 봐야 한다는 인식을 깔고 있다. 대주주 지분을 물려받을 땐 세금을 물리지 않고 이 지분을 처분해 이익을 실현했을 때 양도소득세처럼 세금을 물려야 한다는 것이다.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스웨덴 등 OECD 주요국은 상속세를 자본이득세로 전환했다. 2021년 한국세무학회 추계학술발표대회에서 최기호 서울시립대 교수는 ‘상속세의 자본이득세 전환 검토’를 주제로 발표하고 부의 불균등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상속세보다 자본이득세의 재분배 효과가 크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황승연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자본이득세로 변경하면 높은 상속세를 피하기 위한 기업의 각종 편법과 모순적 행위의 원인을 제거할 수 있다”며 “징벌적 상속세가 존재하는 한 기업 경영의 정상화는 요원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13호 (2023.06.14~2023.06.2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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