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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 (수)

70세이상 中企CEO 2만명…"상속세 내려면 지분 절반 팔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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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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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공단에서 부품제조 기업을 운영하는 한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는 "창업주인 선친에게서 2년 전 회사를 물려받았는데 상속세를 내기 위해 지분을 절반 이상 매각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현행 세제로는 정상적인 기업승계가 불가능하다"는 게 그의 토로다.

현재 국내 중소기업계에는 70세 이상 중소기업 CEO가 2만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승계가 원활하지 않으면 폐업이나 매각을 고려하고 있다. 장수 기업이 탄생하려면 원활한 세대교체가 필수지만 과도한 상속세율과 구시대적인 상속세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명목상 일본 최고세율이 55%로 더 높지만 실질세율은 한국이 OECD 최고인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은 상속재산을 시가 수준으로 평가해 과세하는 데다 대기업과 일부 중견기업 최대주주에게는 할증까지 해 최고세율 60%를 적용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소기업계는 가업승계 시 최대 어려움으로 조세 부담을 꼽는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업력 10년 이상인 중소기업 50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98%가 '막대한 조세 부담'이 문제라고 응답했다.

자금이 중기보다 한층 넉넉한 대기업들도 상속세 부담에 허덕이는 것은 마찬가지다. 2020년 이건희 삼성 회장이 별세한 뒤 삼성그룹 상속인들에게는 상속세 약 12조원이 부과됐다. 5년 동안 6회에 걸쳐 2조원씩 나눠 내기로 했는데, 이는 한국 한 해 상속세수 총액에 육박하는 금액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재계는 세율 체계 재검토와 상속세 제도의 부과 방식 개편을 주장해왔다. 해외 주요국에 비해 과도하게 높은 세율과 실질 상속액을 고려하지 않고 상속 총액을 기준으로 누진 상속세를 매기는 유산세 과세 방식 때문에 경영 의지가 꺾이고 있다는 것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지난해 기획재정부에 제출한 '원활한 기업승계 지원을 위한 상속세제 개선 의견'에서 "유산취득세형은 상속인의 개별 상속분을 먼저 분할하고, 각자 상속분에 대한 상속세율을 적용하므로 납세자의 조세부담 능력 측면에서 공평한 과세 방식"이라며 유산취득세 도입을 요구했다.

세제 개편을 담당하는 기재부는 유산취득세를 도입한 일본과 독일 사례 등을 비교하는 연구용역을 발주하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면서 올해 7월 발표할 내년 세제개편안에 유산취득세 도입을 담는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기재부는 올해 안에 상속제 개편은 없다고 발표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8일 관훈토론회에서 "상속세를 현행 유산세에서 유산취득세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올해는 쉽지 않아 보인다"며 내년 이후로 상속세 개편을 미룰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상속세를 주식으로 정부에 납부하며 기재부를 2대 주주로 받아들인 게임회사 넥슨 사례와 관련해서는 "넥슨 (지주회사) 상속세 물납과 관련해 문제 제기가 있지만 그렇다고 상속세를 대폭 낮추자고 말하기에는 아직 여론이 성숙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연구를 더 해야 한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지만 극심한 세수 부족과 총선을 앞두고 불거질 수 있는 부자 감세 논란도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기재부는 상속세 개편이 중요한 만큼 시간을 더 두고 연구한 뒤 개편안을 내놓겠다는 방침이다.

앞서 기재부는 지난해 세법 개정을 통해 가업상속공제를 적용받을 수 있는 중견기업의 범위를 기존 4000억원 미만에서 5000억원 미만으로 확대하고 기존에 7년이던 사후관리 기간도 5년으로 완화했다. 아울러 가업상속공제의 공제 한도를 현행 최대 500억원에서 600억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기재부는 "야당의 일부 반대에도 불구하고 가업 승계의 숨통을 터주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상속세의 근본적인 틀을 바꾸지 않으면 과도한 납세로 인한 경영 부담이 쉽게 개선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기업 상속만 문제가 아니다. 일반 국민의 상속세 납부도 급증하는 추세다. 과거에는 상속세가 부의 상징으로 인식됐지만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납부 대상자가 크게 늘었다. 사는 집이 주된 상속재산인 경우 세금을 납부하기 위해 집을 처분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 것이다. 상속세를 내야 할 피상속인 수는 2011년 5720명에서 10년 만인 2021년 1만2749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총결정세액은 1조5545억원에서 4조9131억원으로 3배 이상 급증했다.

일본은 유산취득세를 도입했으며 부모가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줄 때 매년 110만엔까지 증여세가 면제된다. 부모 사망일로부터 3년 이내에 받은 증여는 사망 후 물려받은 재산과 합쳐서 상속세를 물린다. 일본 정부는 이 기간을 7년으로 늘려 부의 이전을 촉진하기로 했다.

유산취득세

상속세 과세 방식의 일종으로 상속재산 총액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는 유산세 방식과 달리 유산 분배 후 상속인별 분할 재산에 과세표준을 적용해 상속세를 매기는 방식.

[홍혜진 기자 / 이희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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