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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이슈 이태원 참사

‘아비규환’ 된 수내역 등굣길… ‘제2의 이태원 참사’ 될 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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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행 에스컬레이터에 14명 부상…3명 입원

10초간 거꾸로 내려가…노후·보수 미비 도마에

10년 전 야탑역선 39명 중경상…‘짝퉁’ 부품 탓

대전·안산역 에스컬레이터도 잇단 안전사고

2014년 ‘역주행 방지장치’ 의무화…실효성↓

2만6000여대 ‘사각지대’…정부 대책 절실

전문가 “정밀하고 촘촘한 안전 규정”

“갑자기 멈춰선 에스컬레이터가 뒤로 밀리더니 앞사람부터 뒤엉켜 넘어졌어요.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리면서 아수라장으로 변했어요.”

8일 오전 8시20분쯤 경기 성남시 분당구 지하철 분당선 수내역에서 등굣길 사고를 당한 고교생 남모(17)양은 당시 상황을 이처럼 떠올렸다. 약 10초간 역주행한 상행 에스컬레이터가 곧바로 멈추지 않았다면 ‘이태원 참사’를 연상시키는 압사까지 벌어질 수 있는 상태였다. 남양은 “중간에 있다가 앞으로 넘어졌는데 당분간 에스컬레이터를 타지 못할 것 같다”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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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지하철 분당선 수내역 2번 출구 상행 에스컬레이터가 뒤쪽으로 역주행한 사고 현장에 119 구급대원 등이 출동한 모습. 경기도소방재난본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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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이날 사고는 수내역 2번 출구에서 작동 중이던 9m 길이의 상행 에스컬레이터가 뒤쪽으로 역주행하면서 벌어졌다. 이 사고로 지하철 이용객 3명이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다. 다른 11명은 비교적 가벼운 상처를 입어 치료를 받고 귀가한 것으로 파악됐다. 골절 등 중상자는 없었지만 출근·등굣길에 발걸음을 재촉하던 시민들은 갑작스레 일어난 사고에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지하철역과 백화점, 상가, 아파트 단지가 밀집한 수내역은 유동 인구가 많아 사고 당시 에스컬레이터에는 빈 곳이 없을 정도로 탑승객이 꽉 찬 상태였다. 100명 넘는 이용객 가운데 다수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거나 에스컬레이터 손잡이를 잡고 있지 않아 피해가 커졌다.

소방재난본부가 공개한 폐쇄회로(CC)TV 영상에는 지상으로 이동하던 에스컬레이터가 작동하던 중 갑자기 정지하고 수 초간 뒤로 밀리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겼다. 이용객들은 에스컬레이터가 점차 빠른 속도로 역주행하자 도미노처럼 줄줄이 넘어졌고, 일부는 하단부에 겹겹이 쌓였다. 난간을 넘어 반대 방향으로 떨어지는 등 아비규환을 방불케 했다.

경찰은 현장에서 누군가 에스컬레이터의 수동 조작 장치 등을 임의로 작동시켰을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기계적 결함이나 노후화에 따른 사고일 것으로 추정한다.

사고가 난 에스컬레이터는 2009년 설치됐다. 2014년 7월 이후 설치된 에스컬레이터에는 역주행 방지 장치가 의무화됐는데, 해당 기기에 추후 설치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 에스컬레이터는 설치 후 15년이 지나 받는 정밀안전검사 대상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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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지하철 분당선 수내역 2번 출구 상행 에스컬레이터가 역주행 사고 현장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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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위탁업체를 통해 실시한 지난달 10일 월 단위 정기 점검과 한국승강기안전공단의 지난해 9월 연간 안전 점검에선 모두 이상이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코레일 관계자는 “정밀 분석을 통해 원인을 파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안전 점검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 아니냐는 지적도 일고 있다. 주민들은 동요하고 있다. 수내동 주민 A씨는 “지난 4월 인근 정자교 붕괴로 시민 1명이 숨졌는데 다시 사고가 났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지역 온라인 게시판에는 “믿을 수 없는 일이 잇달아 일어난 만큼 안전점검을 강화해야 한다”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이번 사고는 10년 전인 2013년 7월 인근 분당선 야탑역에서 39명이 중경상을 입은 에스컬레이터 역주행 사고와 닮은꼴이다. 당시에도 상행 에스컬레이터가 아래로 역주행하며 혼란을 키웠는데, 보수정비업체 직원이 감속기와 모터를 잇는 기어를 정품이 아닌 ‘짝퉁’으로 교체해 일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2017년과 2018년에도 안산역과 대전역에서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던 에스컬레이터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각각 9명, 28명이 다치는 사고가 일어났다. 당시 정부는 지하철역과 버스터미널, 공항, 철도 등의 에스컬레이터를 대상으로 긴급 점검을 벌였지만 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 2014년 이후 설치된 에스컬레이터에는 역주행 방지장치 부착이 강제됐지만 이전에 설치된 에스컬레이터만 전국에 2만6128대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2014년 이전 설치된 에스컬레이터에도 역주행 방지 장치를 추가로 설치해야 한다”며 “정확한 규격에 맞는 부품을 써야 하는데 싼값에 품질이 낮은 부품을 쓰거나 관리가 부실해 사고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성남=오상도 기자 sd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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