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KBS아트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김의철 KBS 사장(가운데)은 "수신료 분리징수 추진이 철회되는 즉시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며 대통령실을 향해 수신료 분리징수 추진을 철회해줄 것을 요구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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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수신료 분리징수 추진에 직면한 김의철 KBS 사장은 “공영방송의 근간을 뒤흔드는 수신료 분리징수 추진을 즉각 철회해달라”며 “분리징수 추진이 철회되는 즉시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이 유관 부처에 TV 수신료 분리징수를 위한 법령 개정을 권고하면서 29년간 유지됐던 통합징수 방식이 변경될 기로에 놓이자, 본인의 사퇴를 내거는 배수진을 친 것이다.
김 사장은 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KBS 아트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은 입장을 밝혔다. 그는 대통령실을 향해 “이처럼 성급한 결정을 내리게 된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면서 “만일 전임 정권에서 사장으로 임명된 내가 문제라면, 내가 사장직을 내려놓겠다”고도 했다. 대통령실이 수신료 분리징수를 추진하는 배경에는 전 정권에서 임명된 자신에 대한 불만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내비친 대목이다. 앞서 지난 5일 대통령실이 TV 수신료 분리징수를 방송통신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부에 권고하자, 야당에선 “수신료를 무기로 공영방송을 길들이겠다는 선포”(강선우 더불어민주당 대변인)라는 비판이 나왔다.
김의철 KBS 사장이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 아트홀에서 수신료 분리 징수 권고와 관련한 KBS의 입장과 대응 방안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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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사장은 “정부가 수신료 분리징수 추진을 통해 공영방송의 근간인 수신료 재원을 흔들고 있다”며 “KBS 사장으로서 지금 가장 중요한 임무는 수신료 분리징수를 막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해 이런 결심을 하게 됐다”고 사퇴를 내건 이유를 설명했다. 김 사장은 또 “KBS의 미래와 발전을 위한 방안을 전달하기 위해 대통령과의 면담을 정식으로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방송법에 명시된 수신료 징수의 실질적인 주체는 KBS”라며 방통위·산자부에 더해 KBS가 함께 참여하는 협의체 구성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는 이번 수신료 분리징수 이슈에 불을 붙인 대통령실 ‘국민참여 토론’의 절차상 문제부터 거론했다. 대통령실은 지난 3월 9일부터 한 달간 국민제안 홈페이지에서 진행한 공개 토론 결과, 분리징수를 지지하는 입장인 ‘추천’ 수가 총 투표의 약 97%에 해당한다는 것을 주요 근거로 분리징수를 추진하고 있다.
대통령실은 지난 3월 9일부터 한 달 동안 TV 수신료 징수방식을 국민참여 토론에 부친 결과, 총 투표 수의 약 97%가 분리징수에 찬성하는 '추천'을 눌렀다는 것을 근거로 분리징수를 추진 중이다. 사진 대통령실 국민제안 홈페이지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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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김 사장은 “대통령실은 국민제안 토론의 배경을 설명하면서 통합징수의 정당성과 효율성을 인정한 헌법재판소 결정과 대법원 판례를 누락했다”며 “세금으로 대체되는 프랑스의 수신료가 마치 대안도 없이 폐지된다는 식으로 해외 수신료 제도에 대해 오해를 유발하는 정보까지 제공했다”고 말했다. 이어 “중복 투표 가능성 등의 문제점도 있었다”며 “이처럼 부정확하고 불충분한 여론 수렴 절차로 인해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수신료 분리징수 권고안에 대해 심히 유감”이라고 덧붙였다.
김 사장은 현재의 통합징수 방식은 “최저의 징수비용으로 최고의 징수 효율을 실현하는 이상적인 방식”이라며 “분리징수가 현실화될 경우 고품격 콘텐트 제작에 투입돼야 할 수신료는 막대한 징수비용 지출로 의미 없이 낭비될 것”이라고 말했다. TV 수신료는 징수에 필요한 비용 등을 고려해 1994년부터 한국전력에 위탁하는 방식으로 전기요금과 통합해 징수되고 있다. TV 수상기를 보유한 가구당 월 2500원, 연 3만원을 걷어 모이는 징수액의 약 91%를 KBS 재원으로 활용하는데, 이 수신료 수입(지난해 기준 6935억원)은 KBS의 1년 전체 수입(1조5300억원)의 약 45%를 차지한다.
김의철 KBS 사장이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 아트홀에서 수신료 분리 징수 권고와 관련한 KBS의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KBS 최선욱 전략기획실장, 김의철 사장, 오성일 수신료국장.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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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사장은 “징수비용을 제외하고 6200억원 정도인 수신료 수입은 분리징수 시 1000억원대로 급감할 것”이라 전망하며, “이는 국민이 KBS에 부여한 다양한 공적 책무를 도저히 이행할 수 없는 상황으로 직결된다. 결국 분리징수로 인한 피해는 국민들께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만약 분리징수가 이뤄진다면 부족한 재원을 어떻게 충당할 것이냐’는 취재진 질문에도 “분리징수가 실제로 이뤄지면 현실적인 (재원 조달) 방안은 없다”고 단언하며, “그렇기 때문에 분리징수는 단순한 징수 방식 변경이 아닌 KBS의 존폐를 가르는 문제라고 얘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방만 경영, 타 방송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콘텐트 품질 등 KBS를 향한 고질적인 비판에 대해서도 적극 반박하며 통합징수 유지를 호소했다. 그는 “KBS 경영이 방만하다는 지적에 대해 겸허한 자세로 돌아보고 개선해나가고 있다. 2019년 4726명이던 직원을 지난해 4151명으로 3년 만에 12% 이상 감축했고, 인건비는 15% 이상 감축시켰다”며 “고정관념과 다르게 KBS는 낮은 비용과 적은 인력으로 세계 유수 공영방송사와 대등하게 경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제방송·장애인방송 등의 공영 채널, 교향악단·국악관현악단 운영, 소외계층을 위한 난시청 해소와 수신환경 개선 등 KBS의 각종 사업을 열거하며 “KBS는 단순히 TV 화면으로만 보여지는 일개 방송사가 아니다”라며 존재 가치를 피력하기도 했다. 그는 “(KBS는) 민주주의와 문화 창달, 국민 복리 증진에 이바지하도록 법에 의해 다양한 책무와 권한이 부여된 사회적 제도”라며 “이러한 KBS의 근간을 와해시킬 수 있는 사항이 단지 인기투표 같은 추천수와 댓글들을 근거로 결정된다는 것은 결코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말했다.
남수현 기자 nam.sooh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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