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사진은 지난해 7월 자신의 재판에 출석하고 있는 모습.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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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시작될 때만 해도 ‘세기의 재판’이 될 거란 평가 있었고 실체진실·소송경제·적법절차 원칙이 조화롭게 조율돼 법학도에게도 본보기가 될 재판을 기대했는데 (...) 재판 과정에서 소송 지연을 초래하는 피고인들의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들이 있었습니다.(호승진 검사)”
“검사께서 왜 갑자기 감정적으로 대응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 정치적이고 감정적인 얘기 하시는 것은 형사소송법에서 가장 중요한, 소송 절차에서 예단을 형성하면 안 된다는 부분을 검사님께서 무책임하게 어기고 있는 것 아닌가.(고영한 전 대법관 변호인 고일광 변호사)”
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1부(이종민·임정택·민소영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 266차 공판에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증인석에 앉힌 채 검사와 변호인 간 설전이 오갔다.
임 전 차장은 이 사건의 핵심 인물이자 양 전 대법원장 재판에서 현재 예정된 마지막 증인이다. 검찰은 3년 전에도 그를 증인으로 부르려 했지만 당시 본인도 재판을 받는 사정 때문에 무산됐다. 이날은 나오긴 했으나 같은 이유로(임 전 차장 재판은 208차례 열렸으며 1심 진행 중이다) 증언을 거부했다.
“1회 피의자 신문조서 제시합니다. 증인이 진술한 대로 서명·날인한 조서가 맞습니까?” “증언을 거부하겠습니다”를 19회까지 반복하고 있는 걸 듣다 못 한 박병대 전 대법관 변호인이 일어났다. “모든 진술 거부한다고 하는데 검사님도 수고스럽고 소송경제상으로나 여러 면을 고려해 재판부께서 지휘를 해 주셨으면 합니다.(노영보 변호사)”
검찰은 지금까지 재판을 지연시켜 온 피고인 쪽에서 소송경제를 말하느냐며 반발했다. 호승진 부부장검사는 “갱신과정조차도 소송지연의 일환으로 활용된 듯한 느낌”이라며 2년 전 재판부 교체 당시 공판갱신절차를 문제삼았고, “제가 2018년에 수사 참여하고 다른 검찰청 전보된 지 4년이 지나도록 1심 진행 중인데 증인에 대해 질문하는 것도 소송경제 해한다고 하는 게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피고인 쪽에선 재판 장기화의 책임은 검찰에 있다고 본다.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 이상원 변호사는 “공판절차갱신은 형사소송법상 직접주의 원칙을 덜 훼손시키기 위해 불가피한 것”이라며 “검찰에서는 동일 증거로 여러 명을 증인으로 다시 신청하고, 피고인 쪽에서 동의한 서류 증거에 대해서도 17 기일에 걸쳐 조사가 필요하다고 해 4개월 넘게 진행했다”고 했다.
재판부는 10여분간의 공방을 지켜본 뒤 “원칙대로 하겠다”며 “검사는 물어볼 것 물어보고, 증인은 거부할 것 거부하고 답변할 것 답변하라”고 정리했다. 그렇게 임 전 차장은 이날 “증언을 거부합니다”를 220번 외치게 됐다.
그렇다고 이 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임 전 차장은 “증인은 30년 간 법관으로 재직했느냐” “2015년 8월부터 2017년 3월까지 법원행정처 차장으로 근무했느냐” 같은 질문에도 “증언을 거부합니다”로 일관하다가도 “결국 증인이 바란 건, 외교부 의견서 제출 계기로 강제징용 재상고심 결론이 바뀌는 것 아니었나” “정부 요청 사항을 대법원 재판에 반영한 걸 지렛대 삼아 양승태 대법원장의 숙원사업이었단 상고법원 도입을 요청한 것 맞느냐” 등 질문에는 “검찰의 상상력에 불과한 질문이다” “플리바게닝에 익숙한 검찰의 주관적 생각이라고 말하겠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이날 재판은 변호인들이 “검찰 주신문에서 증인 진술이 없어 반대신문 할 게 없다”고 해 약 2시간 만에 종료됐다. 임 전 차장에 대한 증인신문은 이날 포함 12차례에 걸쳐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재판부는 “전면 증언 거부하면 12회씩 할 이유가 없을 것 같다”며 조정 가능성을 내비쳤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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