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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이번 세기 '금강의 기적'으로 한강의 기적 이어가야 [중원 르네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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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인력·자본 집적해 일군 압축성장
'한강의 기적' 폐해 속속...균형발전 필수
작년 국내 인구감소에도 충청권만 '증가'
금강 통과 4개 시·도 결속다져 성과 내야

편집자주

국가 균형발전을 선도하는 중원 자자체와 기관들의 혁신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한국일보

전북 장수에서 발원해 충북과 대전을 거쳐 온 금강이 세종시 행정중심복합도시(신도시)를 가로질러 흐르고 있다. 강물은 이어 공주와 부여 등 충남을 포함한 충청권 4개 광역 시도를 지난 뒤 서해를 만나면서 397km의 여정을 마무리 짓는다. 사진은 ‘금강의 기적’ 주무대가 될 예정인 곳으로, 강 남쪽(사진 왼쪽)으로 세종시청과 시의회, 북쪽으로 정부세종청사와 중앙호수공원 등이 자리를 잡고 있다. 세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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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금강(錦江). 나이는 모른다. 전라북도 장수에서 시작해 충북과 대전, 세종, 충남을 거쳐 서해와 합쳐지는 한국 3대 하천이다. 397km 여로에 있는, 지금은 ‘중원’으로 불리는, 충청과 동고동락 중이다.

억겁의 세월 동안 스친 장면과 소식은 헤아리기 힘들다. 충남 공주 석장리에선 돌칼을 쓰는 이들이 마을을 이뤘고, 고구려에 밀린 백제는 웅진에서 나를 병풍 삼아 부흥했다. 그곳에선 특히 문화가 찬란하게 꽃피었다. 어느 날 낙화암을 지날 땐 꽃잎처럼 떨어지는 궁녀들을 품어야 했고, 어디쯤에선 황포 돛배들에 몸을 내어주기도 했다.

적벽강, 차탄강, 웅진강, 백마강, 진강…. 굽이쳐 닿는 곳마다 나를 부르는 이름. 사연만큼이나 많은 시인과 묵객이 나를 노래했으나 뭇사람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격동의 세월, 위로는 한강의 서울이 흥하고, 아래로는 낙동과 영산에서 물결을 이루니 점잖고 이름마저 곱디고운 비단강이 눈에 쉬 들진 않았을 것이다. 원망은 없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내 주변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지난해 주민등록인구가 5,143만9,038명을 기록, 전년보다 19만9,771명 감소했을 때 내가 품은 충청권만 인구를 늘렸다. 6,928명. 적다면 적은 것이지만,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전체 인구가 줄고 영남과 호남 사방에서 소멸 위기 운운, 비명과 신음이 들릴 때 이룬 성과라 의미는 작지 않다.

어디 이뿐인가. 4년 뒤 2027년 나는 세계의 청년들을 이곳에서 품을 예정이다. 과거 유니버시아드대회로 불리던 스포츠 축제, 하계세계대학경기대회가 금강을 끼고 열린다. 한강과 낙동강, 영산강에선 진즉 비슷한 규모의 세계스포츠대회가 열렸지만, 충청에선 처음이다. 이는 상생과 협력의 결과물. 150개국 1만 명 선수단이 달굴 중원의 염천, 상상만으로도 설렌다

요즘엔 잠까지 설친다. 이런 대회가 처음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세계대학경기대회 조직위원회 구성을 놓고 잡음은 있었지만, 충북 충남 대전 세종은 경제 파급효과 2.7조 원에 달하는 이 대회를 함께 준비하고 치르면서 우애 깊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대회가 열릴 즘이면 대통령 집무실과 국회의사당도 세종에 들어선다. 중원에 이런 큰물이 들었던 적이 있었던가.

한강으로부터 듣고 있다. 한강의 기적으로 한국이 눈 깜짝할 사이 세계 속에 우뚝 서는 데 기여했지만, 후유증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동시에 낙동강과 영산강으로부터도 듣는다. 사람과 돈을 한강으로 모두 올려주고 나니 살 수가 없다고. 내가 봐도 국토 12% 면적에 50% 인구가 몰린 상황은 비정상적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청년들은 불나방처럼 수도권으로 몰린다.

나는 각지 각계각층으로부터 요청받고 있다. 그들이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공부하고 취업해서 잘 살 수 있도록 해달라고.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 국가 균형발전의 표상이 될 금강의 기적을 만들어 달라고. 지난 세기 한강의 기적으로 나라 경제를 세웠다면, 이번 세기에는 균형발전으로 더 오래 달릴 수 있도록 하자고. 부산과 울산 경남이 메가시티 간판 아래 한강의 기적에 버금가는 일을 꾀하다 좌절한 터, 양어깨가 무겁다.

중원의 노젓기는 이미 시작했다. 인구 유출을 유입으로 반전시켰고, 충청을 세계에 알릴 스포츠대회를 유치했다. 충청권 특별지방자치단체 합동추진단은 수도권에 필적할 플랫폼 구축 작업을 착착 진행하고 있고, 실수 하나 있을세라 행정안전부까지 나서 거드는 중이다. 행정수도의 시간도 세종의 편이다. 지방시대, 균형발전은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방의 문을 열어젖혀 오는 이들을 뜨겁게 맞는 일, 그리고 그들과 덩실덩실 춤을 추는 일.
한국일보

‘금강의 기적’ 주무대가 될 세종시 구간의 금강 풍경. 강남에는 세종시청과 시의회가 있고, 강북에는 정부세종청사와 중앙호수공원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세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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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승 기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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