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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페트로 위안’ 꿈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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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탈 달러’ 행렬 주도…중국, 사우디서 추진 선언

미·중 ‘쩐의 전쟁’ 본격화 속 기축통화로선 한계 관측도

[주간경향] 중국 위안화를 찾는 국가가 늘고 있다. 러시아는 미국 등 서방국가들의 경제제재에 맞서 위안화를 중심으로 한 ‘탈(脫)달러’ 행렬을 주도한다. 중동과 남미 국가들도 미·중 패권 경쟁 구도에서 달러 의존도를 낮추고 있다. 높아지는 위안화 위상을 두고 중국 안팎에서 “달러 패권에 대한 위안화의 도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위안화가 과연 달러를 대체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위안화의 부상이 달러 패권에 균열을 가져온 건 맞지만, 당장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를 흔들 만큼의 위세는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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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8일(현지시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수도 리야드에서 회담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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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을 파고든 중국


지난해 12월 7~9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9일 걸프지역 국가 지도자들을 만나 “석유와 가스의 무역에서 위안화를 사용할 것”이라고 했다. 중국이 오래전부터 추진한 ‘위안화의 국제화’가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중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외환시장 변동성에 대비하고 국제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위안화의 국제화를 추진해왔다.

시 주석은 위안화 결제 외에 중동지역 안보 문제도 거론했다. 그는 “중국은 걸프협력회의(GCC·사우디, UAE, 쿠웨이트, 카타르, 오만, 바레인 6개국) 국가들이 자체 안보를 유지하는 데 계속해서 굳게 지지하며, 걸프 지역을 위한 집단 안보 체제를 구축할 것”이라고 했다. 사우디 실세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도 “중국과 관계에서 역사적인 새 시기”라고 화답했다.

국제사회는 ‘페트로 달러에 대한 위안화의 도전’이 본격화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내놨다. 이는 1974년부터 미국이 사우디의 안보를 책임져주고, 사우디는 국제 원유시장에서 오직 달러로만 원유를 결제하도록 한 이른바 ‘페트로 달러’ 체제의 균열을 의미한다. 세계 각국에 원유를 판 중동 산유국들은 거둬들인 달러를 미 국채와 금융시장 등에 다시 투자하는 이른바 ‘페트로 달러 리사이클링’을 구축했고, 이런 과정을 거쳐 페트로 달러 시스템은 더욱 공고해졌다. 달러가 세계 기축통화로 자리 잡은 가장 큰 배경도 여기에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시 주석과 GCC 국가 정상들의 만남에 대해 “위안화로 원유를 거래하는 방안을 추진해온 중국이 결실을 눈앞에 뒀다. ‘페트로 달러’ 체제가 중대한 기로에 놓였다”고 평가했다.

중동의 대표적인 친미 국가이자 페트로 달러의 중심에 섰던 사우디가 미국과 패권을 두고 경쟁 중인 중국과 손잡은 배경도 주목된다. 미국과 거리를 두려는 사우디의 행보는 미국이 2010년대 셰일가스 생산으로 최대 산유국이 되면서 본격화됐다. 미국은 더 이상 사우디 원유에 의존할 필요가 없어졌고, 양국은 협력관계에서 경쟁관계로 바뀌었다.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격 철군한 것 역시 사우디의 탈미국 행보를 부추겼다. 2018년 사우디 반체제 언론인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 이후엔 감정의 골이 더 깊어졌다. 미국 정부는 암살의 배후로 빈 살만을 지목했고, 인권을 강조한 조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사우디 왕정에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도 했다. 지난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치솟은 국제유가로 인해 국내적으로 수세에 몰린 바이든 정부가 사우디에 증산 요구를 했을 때도 사우디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비OPEC 산유국들로 이뤄진 OPEC 플러스의 감산 결정을 주도하면서 미국과의 갈등을 피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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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3월 21일(현지시간)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 크렘린궁 내 그라노비타야궁에서 열린 공식 만찬에서 건배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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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패권’에 맞서는 국가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엔 미국 등 서방세계의 제재를 받는 러시아가 위안화를 비롯한 비달러화 결제를 주도하고 있다. 일부 중동 산유국들은 이에 동참하는 분위기다. 러시아는 국제 은행들의 달러 결제망인 스위프트(SWIFT)에서 배제된 이후 미국에 보유 중인 자국의 달러 자산이 묶여 있는 상태다. 또 유럽 금융시장에 대한 접근이 차단되면서 석유 등 에너지 대금의 달러 결제 채널도 원천 봉쇄됐다.

중국과 러시아 교역 규모는 크게 늘었다. 러시아는 석유와 가스 등을 중국에 수출하고, 중국은 서방세계 제재를 우회한 러시아의 값싼 에너지를 들여왔다. 러시아 타스 통신 보도(5월 10일)에 따르면 올 1~4월 러·중 교역 규모는 731억4000만달러(약 96조84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41.3% 증가했다. 위안화 결제 비중도 큰 폭으로 늘었다. 로이터 통신은 지난 5월 11일 보도에서 러시아 중앙은행을 인용, 지난해 러시아의 수입 결제에서 위안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전년의 4%에서 23%로 증가했다고 전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앞서 지난 3월 21일 시 주석과 정상회담에서 “러시아 연방과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국가 간의 합의를 통해 중국 위안화를 사용할 것”이라며 반미 결속과 위안화를 중심으로 한 달러 패권 대응을 천명했다. 러시아의 값싼 원유를 필요로 하는 인도와 파키스탄 등도 위안화나 루블화로 결제를 하고 있거나 사용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남미에서도 위안화 등 비(非)달러화의 결제 비중이 늘고 있다. 브라질은 지난 3월 중국과의 무역·금융 거래에서 달러 대신 위안화 또는 자국 통화인 헤알화를 쓰기로 중국과 합의했다. 아르헨티나와 볼리비아도 중국과의 거래에서 위안화로 결제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을 포함한 남미 12개국 정상들은 5월 30일 브라질리아 이타마라치 궁전에 모여 달러 대신 지역 공통 화폐를 도입하는 방안도 논의했다. 지난 3월에는 중국해양석유(CNOOC)와 프랑스 에너지기업 토탈에너지의 액화천연가스(LNG) 계약도 위안화로 했다.

중국의 대외 무역 거래에서 위안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처음으로 달러를 앞서기까지 했다. 4월 26일 중국 국가외환관리국 자료를 분석한 로이터 통신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지난 3월 중국의 대외거래에서 위안화의 결제 비중은 48.4%인 반면 달러화 비중은 2월 48.6%에서 3월 46.7%로 줄었다.

오정석 국제금융센터 전문위원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최근까지의 ‘탈달러’ 흐름은 서방국가들의 경제제재로 비달러화 결제가 절실한 러시아가 주도하고 있다. 과거에도 이러한 탈달러 흐름이 있었지만, 국제사회에 유의미한 영향을 주진 못했다. 하지만 사우디의 위안화 결제 논의와 남미 국가들의 비달러화 결제 등이 겹치면서 국제 원유시장과 글로벌 금융시장, 세계경제에 일정 부분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페트로 위안은 가능한 시나리오일까. 러시아를 비롯해 중동과 남미 등 국가들과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중국의 위안화 위상이 높아진 건 사실이다. 외신 등에선 사우디와 이집트가 중국으로부터 무기를 구매하면서 달러 대신 위안화로 결제하리라는 관측마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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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위안화 지폐.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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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로 위안’ 가능할까


하지만 페트로 달러를 흔들 정도는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세계 기축통화 달러를 대체하기엔 위안화의 위상이 아직까진 미미하다는 의미다. 기축통화 영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경상 적자를 감수하면서 위안화를 세계 각국에 퍼뜨려야 한다. 수출 의존도가 높으면서 무역 흑자국인 중국이 이런 조건을 달성하기는 쉽지 않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달러는 2022년 약 6조6000억달러(약 8750조원)에 달하는 전 세계 외환 거래의 약 90%를 차지했다. 지난 3월 스위프트(SWIFT) 결제망에서 사용된 달러화와 유로화의 비중은 각각 39.5%와 35.8%를 차지한 데 반해 위안화는 2.5%에 그쳤다. 자본시장의 신뢰 역시 기축통화가 갖춰야 할 조건이다. 그러나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과 자본통제를 우려하는 시각이 많다.

오건영 신한은행 WM본부 팀장은 “미국과 러시아, 미국과 중국의 갈등 구도에서 벌어진 틈을 중국의 위안화가 메우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중국을 비롯한 외신 등에서 사우디의 위안화 결제를 점치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하지만 (기축통화 조건 등 여러 여건을 감안했을 때) 위안화의 위세가 페트로 달러 체제를 흔들 만큼은 아니다. 지난해 12월 사우디에서의 시 주석 발언도 선언적인 의미로 봐야 한다. 사우디의 위안화 결제도 불가능할 것으로 본다. 달러 패권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유지될 것”이라고 했다.

위안화의 부상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있다. 오정석 위원은 “국제유가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 달러 가치 변동에 따라 국제유가 변동성이 커지는데, 여기에 위안화 등 비달러화 결제가 늘면 (위안화 환율 변동 등으로) 국제유가 시장에 또 다른 리스크가 추가될 수 있다. 만약 페트로 위안으로 거래가 된다고 가정했을 땐 달러에 비해 상대적으로 투명성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원유를 전량 수입하는 우리 입장에선 수급이나 가격 등 불확실성이 커지는 것을 의미한다. 원유 수요를 줄이는 방법을 강구하면서 중장기적으로 대체 연료를 개발하는 방안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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