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립박물관, '박물관 속 작은 전시-재봉틀' 오는 7월 25일까지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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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님이 시집갈 때 ○○○ 미싱"
1960년대 히트를 쳤던 광고 CM송.
지금의 재봉틀을 뜻하는 미싱(Machine의 일본식 발음)은 1960~1970년대 혼수품 1위를 차지할 정도로 혼수 품목에서 빠질 수 없는 물건이었습니다.
이처럼 60~70년이 흐른 오늘날 우리네 가정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게 된 재봉틀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전시회가 대전에서 열립니다.
대전시립박물관은 최근 올해 세 번째 '박물관 속 작은 전시'로 소장 중인 '재봉틀'을 선정해 오는 7월 25일까지 전시합니다.
전시되는 재봉틀 브랜드는 '재봉틀 전성기'인 1920년대부터 1960년대 국내외에서 생산된 싱어, 드레스, 아이디얼입니다.
먼저 재봉틀의 표준화와 대중화를 이끈 브랜드 '싱어 재봉틀' 중 1923년 제작된 제품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과거 손으로 돌리던 재봉틀 회전 방식을 개선해 테이블 아래 페달을 밟아 얻은 동력으로 바늘을 움직이게 한 것이 특징입니다.
평소에는 테이블 아래에 뒤집어서 재봉틀을 보관하다가 상판을 열어 꺼내 고정한 뒤 사용하는 방식인데, 20세기 초반 생산된 테이블 형태 재봉틀의 전형적인 모습을 띕니다.
1923년 제작된 싱어 재봉틀. (사진=대전시립박물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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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 테이블 재봉틀'은 여닫기 가구 형태의 재봉틀로 가구 전체에 붉은색을 칠했고 자개로 무궁화 · 봉황 · 구름 등 우리나라 전통 문양을 새긴 고급형 재봉틀입니다.
여닫이문을 열면 발판과 수납 공간이 나타납니다.
드레스 테이블 재봉틀. (사진=대전시립박물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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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 '아이디얼 재봉틀'도 만나볼 수 있는데 해당 제품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재봉틀을 생산 · 수출한 신한미싱제조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정교한 국내 재봉틀 제작 기술을 보여줍니다.
'바느질 혁명' 재봉틀, 소 한 마리 값에도 '60·70년대 혼수 품목 1위'
지금이야 공장에서 대량으로 옷을 만들어내지만 수십 년 전만 하더라도 간단한 옷과 생활용품은 집에서 만들고 낡은 옷은 직접 수선하며 입었습니다.
이처럼 '바느질 혁명'으로 불리며 등장한 재봉틀은 고된 바느질 노동을 덜어주는 각 가정의 필수품이었습니다.
1970년대 당시 재봉틀 가격은 소 한 마리 값을 호가할 정도로 워낙 고가였는데, 이렇다 보니 결혼할 때 마음먹고 장만하지 않으면 사기 어려워 혼수 품목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빠질 수 없는 물건이었습니다.
대전시립박물관 관계자는 "가난했던 시절 한 푼이라도 아끼고자 재봉틀로 옷을 직접 만들어 입고, 낡은 옷을 수선했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지금은 보기 힘든 재봉틀을 보고, 그 시대에 살았던 분들은 옛 향수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대전시립박물관 상설전시실에서 진행되는 이번 '박물관 속 작은 전시-재봉틀' 전시회는 재봉틀의 형태와 발전 그리고 재봉틀이 근현대사에서 차지하는 의미와 역할 등을 자세히 만나볼 수 있습니다.
김성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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