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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장기집권 굳힌 에르도안의 ‘몽니’... 스웨덴 나토 가입 또 늦춰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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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나토 외무장관 회의 불참 선언

핀란드와 함께 지난해 5월 동시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신청했다 홀로 뒤처진 스웨덴의 나토 가입 문제가 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스웨덴의 나토 가입 여부를 사실상 결정 지을 수 있는 튀르키예가 돌연 나토 외무장관 회의 불참을 선언하면서, 7월 나토 정상회담에서 스웨덴을 포함, 총 32개 회원국의 ‘위세’를 보여주려던 미국과 유럽 동맹국들의 계획이 꼬이게 됐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대선 승리로 장기 집권을 확정 지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자신의 국제적 영향력을 과시하려 ‘몽니’를 부리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조선일보

대선 결선투표에서 재선에 성공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이스탄불 크스클르 구역 관저 밖에 모인 지지자들을 향해 연설하고 있다. 이번 연임으로 에르도안 대통령은 사실상 종신집권의 길을 열었다.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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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언론에 따르면 메블뤼트 차우쇼을루 튀르키예 외무장관은 지난 31일부터 1일까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개최되는 나토 외교장관 회의에 불참하겠다고 전날 노르웨이 정부에 통보했다. 스웨덴의 나토 가입 문제를 논의할 튀르키예와 스웨덴 양국 외무장관 간 회동이 불발된 것이다. 현지 매체 스벤스카 다그블라데트는 “이번 회의가 7월 나토 정상회담 전 회원국 간 마지막 공식 회의임을 감안하면, 스웨덴의 나토 가입이 다시 한번 늦춰질 가능성이 커졌다”고 보도했다.

스웨덴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인 지난해 5월 핀란드와 함께 나토 가입을 신청했다. 19세기 이래 약 200년간의 중립 정책을 깬 역사적 결정이었다. 그러나 기존 회원국인 튀르키예가 테러 단체인 쿠르드노동자당(PKK) 관련자 송환(범죄인 인도) 및 자국에 대한 무기 수출 금지 철회 등을 선결 조건으로 요구하면서 두 나라의 나토 가입은 계속 지연돼 왔다. 나토는 유사시 조건 없이 자국의 군대를 타국에 파견해야 하는 ‘상호 방위 조약’을 바탕으로 한 다자간 안보 체제다. 따라서 새 회원국을 받아들이려면 기존 회원국 의회로부터 모두 비준을 받아야 한다. 튀르키예가 비준을 거부하면 스웨덴의 나토 가입은 계속 미뤄질 수밖에 없다.

앞서 핀란드는 PKK 관련자 범죄인 인도 문제를 해결하고, 튀르키예에 대한 무기 금수 조치까지 철회하면서 가입 신청 10개월여 만인 지난 3월 30일 나토 정식 가입에 성공했다. 하지만 스웨덴은 현재 이 두 가지 문제를 놓고 튀르키예와 계속 갈등 중이다. 스웨덴에는 15만명에 달하는 쿠르드 난민이 거주하고 있다. 이 중 상당수는 스웨덴 국적을 획득했고, 쿠르드족 출신 국회의원도 6명이나 된다. PKK 관련자라 해도 스웨덴 국민은 함부로 넘겨줄 수 없는 상황이다.

스웨덴 내 여론도 중동 무슬림 국가들의 박해를 받아온 쿠르드족에게 온정적이다. 덴마크 극우 정당이 지난 1월 21일 스웨덴 스톡홀름의 튀르키예 대사관 주변에서 이슬람 경전(쿠란)을 태우는 시위를 벌일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당시 스웨덴 경찰은 ‘집회의 자유’를 이유로 이 시위를 허용했다. 튀르키예 정부는 스웨덴 정부에 강력 항의하면서 “스웨덴의 반(反)튀르키예 정책이 철회되기 전에는 나토 가입 비준은 불가하다”고 천명했다. 여기에 나토 가입국이면서도 집권 빅토르 오르반 정권이 푸틴 정권과 돈독한 관계를 맺어온 헝가리도 스웨덴의 나토 가입 비준을 미루고 있다.

튀르키예는 스웨덴의 나토 가입 문제를 외교적 지렛대로 활용해 서방의 ‘당근’을 얻어내겠다는 심산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29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통화에서도 스웨덴의 나토 가입 대가로 약 200억달러 규모의 F-16 전투기 추가 판매가 필요하다고 했다. 튀르키예는 당초 미국의 5세대 전투기 F-35를 도입하려 했으나 지난 2019년 러시아의 S-300 방공 미사일을 사들이며 미운털이 박혔고, 이후 F-35 프로젝트에서 완전 배제됐다. 로이터는 “현재 F-16의 튀르키예 수출은 미국 의회의 반대로 막혀 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대선 승리로 자신감이 커진 에르도안이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7월 나토 정상회담을 눈앞에 두고 서방을 상대로 “우리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경우 스웨덴 나토 가입은 없다”며 ‘벼랑끝 전술’에 나선 모습이다. 나토는 스웨덴 관련 사안이 내부 불화로 비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튀르키예 외무장관이 불참하는 건 이번 주 튀르키예가 의회 구성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라며 “튀르키예 당국과 계속 접촉 중이며, 나토 정상회의까지 해결책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파리=정철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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